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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의 시대 - 초연결 세계에 격리된 우리들
노리나 허츠 지음, 홍정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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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휩쓸고 간 이후, 세계는 심각한 외로움의 후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018년 - 영국 총리는 외로움부(Minister of Loneliness)의 장관을 임명한다. 국가에서 외로움이 새로운 종류의 재난임을 인정한 것이다. 영국인의 4명 중 3명이 이웃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영국인의 60%가 직장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고 1/3은 외로움을 토로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응답했다. 영국만 그럴까? 우리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고립과 소외의 시대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시대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외로움은 우리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까? 외로움은 단순히 심리적인 고통만이 아니다. 외로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조기사망률이 30% 증가한다. 외로움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장기적으로 면역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이 외롭다는 것은 만성질환을 하나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외로움은 우리의 몸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외로움은 마음상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유대가 끊어지게 될수록 사람은 더 배타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결국 사람은 외로워질수록 혐오적인 생각에 더욱 취약해진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은 이 굴레를 더욱 확대하고 재생산한다. 전세계적으로 극우 정치의 몸집이 커지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외로움은 우리의 몸에도, 마음에도, 나아가 사회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도대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가 도시로 모이고 있다.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사연으로, 각자의 이야기로 사람들은 도시로 향한다. 하지만 도시는 외롭다. 도시의 모든 것은 빠르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촘촘하게 짜여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스케쥴을 소화하기 바쁘다. 누군가와 교류할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또한 도시는 한 곳에 오래 살기 어렵다. 전세계적으로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요즈음은 더욱 그러하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주하기 어려우니 나의 동네, 우리 동네라는 개념은 희박해진다. 노마드가 되어버린 도시의 주거형태, 누군가와 만나고 어울리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나아가 도심지로 갈수록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간다. 각종 자동화기기와 키오스크들이 사람을 대체한다. 이제는 자동화를 넘어 무인편의점과 무인카페가 들어서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은 더욱 적어진다. 도시는 편리를 선택한 대신 소통과 환대 그리고 만남의 가능성을 잃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소통이 이루어지다보니 사람의 어조와 표정을 읽지 못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현실에서 소통능력은 떨어진다. 온 세상의 정보를 방안에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온 세상의 증오와 혐오도 방안에서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사이버불링과 사이버스토킹이라는 단어가 새로 생겨났다.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사람이 더 불행해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스마트폰 안에서 사람들은 모두와 연결되어 있지만 모두가 혼자이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래도 상황은 좋아지게 될까? 저자의 생각은 비관적이다. 디지털화는 더욱 더 심화될 것이 자명하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던 많은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온라인으로 대체될 것이다. 일자리는 갈수록 세분화되어가고 전문화되어 간다. 얼굴을 마주 볼 필요도 없이 재택근무로도 처리가 가능해져 간다. 일자리들도 알고리즘으로, 로봇들로 대체되어 간다. ​정규직은 갈수록 사라져가고 긱경제가 늘어간다. 파트타임 직종과 프리랜서가 늘어갈 수록 사람과 사람의 접점은 더욱 줄어든다. 미래의 인간에게는 더 외로워지는 길밖에 남지 않은 듯 하다.

저자는 말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외로움이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외로움 경제라는 새로운 과제가 우리에게 닥칠거라고.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결국 새로운 공동체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만남과 모임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새로운 공유주거형태가 나타나야 한다. 로컬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지역문화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마음맞는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각종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협업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결국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는 온라인을 통해서 오프라인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만나야 한다. 그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당면한 재난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맺고 있다. 외로운 시대의 해독제는 결국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있어주는 그것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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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 과학이 우정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로빈 던바 지음, 안진이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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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바의 수로 유명한 로빈 던바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우정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책 제목만 보면 친구 사귀는 방법에 대한 책 같지만 사실 진화심리학자에게 그런걸 기대하긴 어렵다.

이 책은 인간이 왜 우정을 필요로 하며, 우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우정이 생기는 원리는 무엇이며, 우정은 어떤 사람들 간에 생기게 되며, 우정은 어떻게 쇠퇴하게 되며, 우정은 어떻게 애정으로 발전하는지 등등 우정에 관련된 갖가지 주제들에 대한 연구를 요약해놓은 책이다. 그러다보니 읽다보면 교수님이 열심히 준비하신 연구발표회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말하는 사람은 매우 즐겁지만 듣는 사람은 따라가기 힘든 그런 책이다.

내용 자체는 대단히 흥미롭다. 몇 가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사교활동은 건강과 대단히 밀접하다. 외로움은 각종 질병의 발병률을 크게 증가시키고 고립된 인간의 사망률은 크게 증가한다. 사교생활은 삶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2. 인간이 맺을 수 있는 친구관계의 상한선은 약 150명이다. 이를 던바의 수라고 한다. 이 이상의 인간관계는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3. 일반적으로 사교성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뛰어나다. 던바는 사교성이라는 특징 자체가 여성을 위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4. 던바가 우정의 원이라고 명명한 바에 따르면, 소위 베프는 1.5명, 절친은 5명, 친한 친구는 15명, 좋은 친구는 50명, 아는 친구는 150명 안팎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새로운 사람이 이 범위에 들어오려면 한명이 나가야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5. 우리는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인 18시간의 20퍼센트 정도를 사회적 상호작용에 사용하며 이는 하루 평균 3.5시간 정도이다. 이 중 40퍼센트 정도는 절친 5명에게 할애되며, 20퍼센트는 절친을 뺀 친한 친구 10명에게 할애된다. 결국 절친에게 쓰여지는 시간은 하루평균 약 17.5분이다.

6. 몸이 멀어지면 우정은 급속도로 약화된다. 1년동안 연락이 없어지면 우정은 표준편차 1만큼 감소한다. 이는 3년 동안 연락이 없으면 아무리 친한 친구도 그냥 아는 사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7. 우정의 질은 옥시토신 수용체와 연관이 있으며, 우정의 양은 엔돌핀 수용체와 연관이 있다. 스킨쉽은 옥시토신 수용체를 증가시키므로 부모가 아이를 많이 안아줄수록 그 아이는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커진다.

8. 나아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데는 엔돌핀-도파민 시스템이 핵심 역할을 하며 옥시토신은 연애 관계에만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9.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 '지인'이 됐다가 '가벼운 친구casual friend'가 되기 까지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은 약 45시간이었다. 평균적으로 9주 동안 30시간(하루에 단 15분꼴이다)을 함께 보낸 사람들은 그냥 지인 사이로 남았다. 가벼운 친구에서 유의미한 친구meaningful friend로 발전 하려면 3개월 동안 50시간을 추가로 함께 보내야 했고, 유의미한 친구에서 절친한 친구best friend로 나아가려면 다시 100시간을 더 들여야 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범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 그 사람에게 날마다 2시간 가까이 투자해야 했다. 우정은 싼값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244p에서 발췌한 내용. 결국 우정은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증가한다.

10. 우정에 가장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같이 밥을 먹는 것이었다.

11. 나라와 문화를 막론하고 대화에 4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하면 대화는 둘로 쪼개졌다.

12. 우정을 생기는 조건 7가지 있는데 던바는 이를 우정의 일곱 기둥이라고 부른다. 이는 다음과 같다.

1)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2) 같은 지역에서 자랐다.
3) 같은 학교에 다녔거나 비슷한 직장 생활을 경험했다.
4) 취미와 관심사가 같다
5) 세계관이 일치한다.
6)유머 감각이 비슷하다.
7)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다.

13. 1980년대에 그는 동료인 모니카 헨더슨Monika Henderson과 함께 우정의 토대가 되는 법칙들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편의 광범위한 실험 연구를 했다. 그들은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6가지 핵심 법칙을 찾아냈다.

1)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도 그의 편을 들어준다
2) 그 사람과 중요한 소식을 공유한다
3) 감정적 지원이 필요할 때 지원을 해준다
4) 서로를 신뢰하고 비밀을 털어놓는다
5) 도움이 필요할 때 자발적으로 도와준다
6)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마이클과 모니카는 이 6가지 규칙 중 하나라도 위반하면 관계는 약해지고, 여러 개의 규칙을 깨뜨리면 관계는 망가져버린다고 주장 했다. - 460p에서 발췌.

14. 던바는 온라인에서 형성되는 우정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 외에도 유익한 내용가 가득 담겨 있다. 우정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관련 연구를 총망라해놓은 수준이라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책이다. 교수님 강의같은 구성만 이겨낼 수 있다면 정말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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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 개정증보판
마셜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 한국NVC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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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가장 기본적인 장소는 대화의 장이다. 하지만 그 장소는 때론 거칠고, 투박하며 가끔은 야만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인간과 인간의 소통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대화의 내용이나 대화의 스킬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진짜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또는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잘 모르고 대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화의 기저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한 채 피상적인 언어만으로 서로를 판단하고 대응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공명하는 대화가 아닌, 그저 대화를 위한 대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지도 못한다. 그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사람 사이에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할 뿐이다.


따라서 비폭력대화의 핵심은 대화 그 자체가 아닌 대화의 깊이에 있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있다. 나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화의 이면에 있는, 숨겨진 언어들을 우리는 어떻게 포착할 수 있는가? 이 책은 네가지 단계로 그 방법을 제시한다. 


1) 평가를 멈추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2) 느낌을 정확히 인식하기 

3) 느낌이 지시하고 있는 욕구를 받아들이기 

4) 상대에게 구체적으로 요구하기


이렇게 단편적으로 보면 간단해보이지만 실전에 적용해본다면 상당히 난해하다. 일단 내 자신의 평가와 판단을 멈춘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 내 자신이 어떤 평가를 하고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기 일쑤이지 않은가? 나아가 내 느낌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도, 그 느낌이 지시하고 있는 근원적인 욕구를 파악하는 것도 아리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대다수의 분량을 스스로를, 또 상대를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천적인 도구들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전사례와 문답집을 제시하는 것에 할애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 네가지 단계에 대한 내용은 3-6장에 걸쳐 설명되고 있으며, 나머지는 실전적용법과 사례연구 및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점만 빠르게 캐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3-6장만 읽어도 충분할 것이다.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싶거나 실전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면 후반부의 파트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부분은 여러가지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점은 문제해결을 위한 시작점을 내 자신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비폭력대화는 상대의 말을 들을 때에도 해당되지만, 내가 무언가를 말하고자 할 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따라서 상대 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 내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아니, 오히려 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비폭력대화는 불가능하다. 먼저 내 자신의 느낌을 구체화하고 그 이면에 담겨있는 내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상대의 것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시작점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읽으면서 내가 소통에서 겪었던 여러 문제들을 다시 반추해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나의 느낌을, 나의 본질적인 욕구를 잘 바라보고 있었는가? 또 그것을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요청하고 있었는가? 많은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현 CEO인 사티아 나델라는 취임하자마자 이 책을 전 직원에게 선물하고 읽어보기를 권유했다고 한다. 대화와 소통이라는 점에 있어서 관점을 달리 해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 소통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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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Kletos 2022-03-08 23:01   좋아요 2 | URL
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건가 보네요 ㅎㅎ 미니님 감사드립니다 😁

새파랑 2022-03-08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letos님 당선 축!하! 드립니다~!!

Kletos 2022-03-08 23:02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감사드립니다 ㅎㅎ 뭔가 당선됐나보네요 기쁘네요 😅

러블리땡 2022-03-10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letos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Kletos 2022-03-10 05:47   좋아요 0 | URL
땡님 감사드립니다 😄

thkang1001 2022-03-1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letos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Kletos 2022-03-10 10:28   좋아요 0 | URL
thkang1001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thkang1001 2022-03-1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letos님! 감사합니다!
 
나와 너
마르틴 부버 지음, 표재명 옮김 / 문예출판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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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토나오게 어려운 책이다.


종교나 철학에 대해 탐닉하다보면 자주 보이는 구도가 있다. 인식 불가능한 무언가- 로 설명되곤 하는 무언가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이 세상 그 자체 두가지의 구도이다. 전자는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형태로 규정된다. 혹자들은 이 모든 것이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허나 이는 깊게 공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논지를 깊게 살펴보면 외양만 비슷하지 내용은 다 다르다. 


부버가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주제이다. 그리고 부버만의 독특한 관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부버는 이를 나-너 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라고 부른다. 


나-너 의 관계는 인식, 의식, 경험, 이전의 본질적인 형태로 세계와 관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그것의 관계는 해석되고, 판단되고, 경험된 것으로 인식되는 관계형태이다.  전자는 사람을 충만하게 하고, 생명으로 가득차게 하며, 사랑으로 넘치는 인간이 되게 하는 관계이다. 반면에 후자는 사람을 소진시키고, 고갈되게 하며, 파편화하고, 고립시키는 관계이다. 전자는 일치의 관계이고, 후자는 분리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나-그것의 관계로부터 벗어나 나-너의 관계로 회귀하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 되어야하는가?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부버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부버의 관점에서 두가지의 목적은 서로 다르다. 결국 두가지를 모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선한 관점이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디폴트로 가지고 있는 관점이 나-그것의 관계라는 것이다. 나-그것의 관계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형성되며 사람의 생존과 적응, 그리고 생활에 따라 그 양태를 달리 한다. 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특성을 지닌다. 인식대상을 파편화하여 분리된 대상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도구화하는 나-그것의 관계로부터 벗어나 나-너의 관계를 회복하고 양자를 조화시키는 것이 인간의 과제가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나온다. 그걸 어떻게 할 것인가? 무수히 많은 사상과 철학에서 이 주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내놓았고 그것으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곤 했다. 글쎄, 부버의 대답은 다소 애매모호하다. 부버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라고만 설명하지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대답을 하는 순간 그 역시 나-그것의 관점이 되어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소 짧은 분량이라 거기까지 깊게 다루기에는 지면의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독자의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런 애매모호함을 뒤로 하고 부버의 논지는 나-너의 관계를 통해 인간과 신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 도달한다. 하나의 나- 로 돌아옴에 따라 무한한 너- 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인간이 세상에서 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신은 물성이나 객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범신론도 아니고 범재신론도 아닌 독특한 형태의 신비주의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부버는 신과의 관계를 회복함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인간과 관계할 수 있는 언어를 회복하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들었다면 생각나는 것이 있게 된다. 아, 이 책은 아마 바알 셈 토브를 생각하면서 쓰여진 책이겠거니, 역시나 하시디즘을 세상에 소개하신 분 답다. 그렇게 세상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는 요즘 같은 시대에 시사하고 있는 점이 많다. 모든 사람이 세상에 치이고 고갈되어 가는 세태에 비추어보면 더욱 그러하다. 모든 사람이 지쳐있다. 쉼터가 필요하다. 회복할 수 있고 충만해질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점에서 단서를 제시한다. 생명과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 온전한 나- 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해준다.  


이런 좋은 책이지만 이 책은 너~~~무 어렵다. 지옥같은 독일어 복합명사들부터 시작해서 용어정의도 엄격하게 하지 않은 채 논고같은 글이 끝없이 전개되다가 갑자기 잠언같은 글이 튀어나오고 뜬금없는 묵시록같은 글체가 독자의 뇌를 흔들어버린다. 칸트, 괴테,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철학자들부터 쿠자누스나 슐라이어마허 리츨같은 신학자들을 넘어 우파니샤드 불교 도교철학같은 동양철학까지 무수히 많은 내용들이 기본 설명도 없이 마구 튀어나온다. 


용어 자체도 어렵지만 이런 주제들이 보통 그러하듯이 본인의 체험이 없으면 사변적인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기반지식도 어마무시하게 있어야하면서 본인만의 신비적, 또는 형이상학적인 체험이 뒷받침되어야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뇌를 혹사시켜가면서 어찌저찌 읽긴 했는데 내가 뭘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반은 이해했을까? 아니면 반의 반은 이해했을까 싶다. 


달달했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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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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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서로 별 의미없는 이야기를 횡설수설하고, 장면전환은 맥락이 없어서 잠깐만 눈을 놓쳐도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대화는 이 얘기를 왜 하는지 알기가 어렵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마치 극장 밖으로 꺼내어진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는 느낌이다. 노년의 저자가 발견해낸 세상의 결론은 이런걸까. 아무 의미도 없는 세상, 그걸 글로 그려내면 이런 느낌인 걸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장 어려운 파트가 아마 6장일 것이다. 키치가 도대체 뭘 말하는건지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분분하다. 하지만 쿤데라가 본, 키치의 세상에서 벗어나 진실을 본 사람의 눈이 그려낸 세상이 아마 이런 모습인가 보다. 전적으로 부조리하고, 아무 의미도 없고, 아무 가치도 없는 세상. 의미와 이야기 이전의 세상. 존재의 본질에서 만나는 세상의 민낯.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쿤데라의 질문은 작품들 내내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 하다. 가장 최근에 나온 이 책에서 나오는 답변은 '무의미의 축제' 로 정리된다.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것을 껴안고, 그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하고, 더 나아가 사랑해야 한다는 것. 


글쎄, 사견으로는 결국 능동적 허무주의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니체가 그랬듯이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결론이다. 만약 아모르파티만이 답이라면 아모르파티가 가진 한계도 그대로 가져가겠거니 할 수 밖에 없다. 사랑하는게 최종결론이라면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는 것이다. 사랑해야 돼! 라고 한다고만 해서 사랑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왜 아직도 이 지경이겠는가?


전적인 무의미함에서 어떻게 의미를 발견할 것인지. 삶을 추동하는, 삶의 근본이 되는 그 힘은 어디서 가져올 것인지 여러가지 질문이 나온다. 삶 자체에 국한해서 삶의 모든 걸 해결하려는 가정은 결국 물로 물을 닦는 결과 밖에 안 되지 않을까? 결국 쿤데라가 깔고 있는 가정대로라면 사랑의 감정이 나올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결국 그냥 사고실험일 뿐인건가? 사실 조금 시시하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전체적인 느낌은 이렇다. 책이 제시하는 '전적으로 무의미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아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사랑할 것인가?' 질문 자체는 너무나 근사하다. 보고 있기만 해도 뭔가 황홀해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최종결론은 좀 허무했다.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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