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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평점 :
참혹한 모습이다. 제목에서 보여주는 단어 때문보다도, 차라리 제목에서는 심오한 추적이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하지만 전반적으로 흘러가는 흐름은 그것만이 아니다. 단순히 송 자, 라는 청년이 겪는 황당하고 불공평한 이야기가 전반부를
차지하면서 마냥 인생 극복기나 종국에는 마침내 우뚝 서서 성공하는 모습으로 비치기 보다는 참 고난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한다.그렇게 이
청년이 걸어 온 길로 부터 시작한다.
살인사건이 났고 살인범을 찾는 과정에서 시신이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을 읽으며 유추해 가는 구성이
한 사람의 인생 전반에 차근차근히 쌓아 올려질줄이야, 그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면서 끝에 만나지게 되는 그 구조가 이 소설을 돋보이게 했다.
첩첩산중 쌓여가는 괴로움은 청년의 가족 구조에서도 이미 드러나 있다. 완고한 아버지, 혼자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으로 분노에 차 있는 형, 약 값이 많이 들어가며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는 여동생.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조건 윗사람,
나이별, 지위별로 높은 사람의 말에 따라야 했던 사회 분위기와 가난하고 불결한 주변 환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 아버지와 형의 말이라면
머리 숙여 따르는 자, 학구열이 대단하고 영민한 그는 도시에 나가 하던 공부를 계속하고 싶지만 집 안 형편상 형의 논에서 일 할 수 밖에 없다.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그대로 농사 지으며 동네 처녀와 결혼하고 평범하게 살아갔을 것이지만 자에게는 그런 인생이 허락치 않는다.
송 자의 삶이 참 답답하고 암울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미래까지 막는 가족이라니, 인생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면 그런 장애물도 없어 보인다. 계속되어지는 불행과 결국 도망자 신세로 쫓겨 다니는 송 자의 인생 행로는 대체 어떤 결과가 있으려고
이토록 불운하기만 할까 싶었다. 도움을 주는 쪽이 있다 싶으면 배신이 기다리고, 이런 삶을 견뎌내야 할 만한 이유는 무엇일까 싶기도
했다.
송나라 시대 법의학자 송 자의 삶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꾸며서 인지 마치 송 자의
전기문 같은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잔인하다. 몸이 약한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은 돌보지도 않았던 그
모습, 특히 약값을 벌기 위해서 자신의 몸까지 칼로 찌르는 내기를 걸어야 했던 장면은 끔찍하고 눈물겨울 정도였다. 훌륭한 판관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 쳐 온 한 소년의 기구한 운명, 까닭도 모르며 가족을 잃고 힘든 삶을 살았던 그의 궤적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아버지 같았던
펭판관이 그의 인생 시작점과 최대 고비점의 정점에 놓여 있던 인물이었고, 가혹한 고생을 하는 송 자가 얼른 펭판관을 찾았으면 하던, 의지했고
기대했던 내 마음조차 함께 당혹스러웠다.
천신만고 끝에 시체 판독가로 공부를 하게 되지만 송 자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한 가지 역할만
끝내고 사라지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황궁 살인 사건을 조사하게 된 것도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결국 함정 같은 모습으로 송 자에게로 달겨든다. 그나마 통증을 못 느끼는 질병이 있다는 소설 설정이 있어서 그 수많은 고난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송나라 시대에 앞섰던 문물, 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재판을 거쳐서 벌을 내리려는 모습, 화약과
폭탄 제조에 얽힌 살인의 동기, 이런 것들이 모두 소설의 좋은 소재였기도 하다. 전편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모두 하나로 귀결되고 등장 인물들의
예기치 못한 행동들로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반전 투성이로 가득 찬 이야기이다. 독자로서는 흥미로웠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