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이도 세트 - 전3권
이상우 지음 / 시간여행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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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대왕님, 멋지세요, 저절로 고개 숙여지고 멋지다는 말로 흠모하게 되는 그 분이시다.

그 옛날 15세기에, 벌써 그렇게, 대단히 위대한 우리의 지도자 자리에 세종 대왕께서 계셨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마음 흠족해 지는 시간을 가졌다.

과학자였고 발명가였던, 동시에 음운 학자 였던 한 사람, 이 도.  백성이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할까, 자나 깨나 그 생각에만 몰두해왔던 사람. 그러다 보니 신분의 차이까지도 염두에 두기까지 했던 양반, 오늘 날 이 도 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 개혁가이자 혁명가였을 것이다. 그 시절에도 그는 온갖 불쾌한 상황에 직면했었음에도 모든 것을 물리치고 토론으로 맞서며 때로는 호통쳤지만 주로 말로 싸워 나갔던 그 사람은 그 모든 것이 백성, 조선을 이루고 있던 근간인 백성을 위주로 생각했던 까닭이었다. 백성을 위해서라면 천민도 양민으로, 백성이 농사에 힘들이지 않게 하려면 농사 기구 제작에도, 살아가는 방식에 윤리적인 개몽을 위해서라면 백성에게 글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가고 고쳐가던 지도자, 백성에게 커다란 그늘이기도 했었지만 한 사람의 남자였고 한 사람의 가장이었으며 아버지, 남편이었다. 그 따뜻하면서도 평범한 모습으로까지 소설에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독자로서는 세종 대왕의 은총을 느끼는 기분도 든다.  그저 말로만, 습관적으로만 위대했던 것 같았던 기분에서 이제는 그 위대함이 명료함으로 다가선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무 살 갓 청년으로서, 아버지 태종의 강력한 왕권 체제 아래에서 출범했던 세종 체제는 연약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아내, 소헌왕후 집안도 지켜 주지 못했고 그로 인해 가슴에 못을 박는 슬픔을 느껴야 했었지만 세종의 입지는 아버지 태종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군사권을 태종이 쥐고 있는 상태에서 왕좌에 앉아 있는 허약했던 세종 이었지만 그의 백성 사랑하는 생각은 이미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의 치세를 통틀어 백성을 위한 정책을 폈다. 며느리, 세자빈을 두 번이나 폐하고 세 번째 며느리에게서 귀한 원손을 얻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며느리를 잃고 마는 시아버지의 슬픔에 빠지게 된다. 대군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로서 글을 창제할 당시에 그들을 불러 발음해 보게 하고 의견도 들어보는, 평범한 것 같지만 한 가정 속에서 대업을 이뤄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가족에게 대하던 다정함으로 신하들에게도 함께 학문을 논하고 활쏘기 대결도 벌이며 잔치상에서는 춤도 추고 음악에는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던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가족, 정치, 모든 것에서 한결같이 마음을 따뜻하게 펼쳐 내었던 세종 대왕의 모습은 인간적이기도 했고, 그 평범함이 있었기에 더욱 위대함으로 나타났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조선 왕종 실록에 쓰여있는 정치 환란이야 셀 수 없어 오히려 익숙한데 소헌왕후 가문의 몰락이 세종 즉위와 거의 동시에 이뤄진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번 소설을 통해서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실록에 입각해서 쓰여졌으므로)  우리 역사에 통틀어 위대한 세종대왕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이 도가 왕이 되자마자 이런 상황이었다니, 왕이 되었다 해서 마냥 좋았던 것이 아니었음에 오히려 가시밭길 위에 맨 발을 올려 놓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아비도 거역할 수 없고 집 안도 건사해야 하고 정승들 눈치도 봐야 하고 제 맘대로 결정을 내릴 수가 있나, 험난한 길 이었다는 생각부터 든다.

 

이런 와중에도 백성을 어떻게 편안하게 해 줄까, 고심한 흔적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던 장영실의 등용, 집현전, 젊은 학자들 양성 같은 것으로 이어진 것 같다. 학문 연구는 바로 농사에 직결된 기후 변화를 읽기 위함이었고 농사는 백성의 삶이 아닌가. 궁궐에서 식사 제공까지 나서며 연구를 뒷받침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나오니 저절로 복된 마음이 가득 차 올랐다. 예전에 들었던 독서 휴가 제도까지도 세종 때 행해졌던 일 임에 이런 맥락에서 더욱 공감이 갔다. 노비들에게도 육아 휴직 제도 같은 것을 취하게 했다는 점과  백성이 법도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 글이 없다 보니 문맹이어서 널리 익히지 못해서 이다, 라는 생각의 출발, 이런 정책과 생각은 인본주의의 실천이었고 진정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북방 국경선 개척에 문신이었던 김종서를 보냈고, 그 김종서가 5척 단신이었다는 점, 여자 두령 홍득희의 등장, 그녀의 능력과 활약상 등이 이 소설에서 여러가지로 흥미롭게 펼쳐진다. 세종 시절이었기에 이런 부분들이 더 드러났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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