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젠 흔들리지 않아 - 냉정과 열정 사이의 나를 붙잡는 여행
배종훈 지음 / 더블북 / 2016년 9월
평점 :
유럽의 한 부분을 지도상에서 보면 스페인 바로 옆 동네가 프랑스이고, 프랑스 아래 부분에 있는
것이 이탈리아 이다. 지도상으로 볼 때에는 국경만 살짝 넘으면 걸어서라도,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또 이탈리아로 금방 닿을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
이 쉬워 보이는 길을 선택해서 다녀 온 저자는 배낭족도 아니고, 단체 관광객으로서도 아닌, 따로
또 같이 스타일 방식을 선택한 것 같다. 일행과 함께 출발을 했고, 스페인에서 순례자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자동차에 잔뜩 캠핑 용구를 이고
지고 넣고, 걷는 팀과 차 타는 팀으로 나누어 여행을 한다. 캠핑장에서 숙박하며 같이 움직이다가 따로 걷기도 하는 방식이 좋아 보였다. 뭉쳐서
다니려 하면 혼자서 여행하는 맛을 잃기 쉽기 때문일 것인데 혼자 만의 시간 또한 놓치지 않을 수가 있었으니 여행의 좋은 점만 취한 것 같아
보였다. 캠핑장에서의 함께 하는 식사와 차의 분위기, 순례자의 길에서는 혼자 걷다가 만난, 끝이 보이지 않는 해바라기 밭에 앉아서 먼저 하늘로
떠나 버려 가슴에 상처로 남은 동생을 생각하며 목 놓아 울기도 할 수 있었던 시간들 같은. 일러스트이자 화가이기도 한 저자는 가는 곳곳에서
스케치도 해 가면서 사진 뿐만 아니라 자신 만의 결과물도 함께 가져 올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모든 지나 온 여행지의 사진과 함게 그림, 삽화가 어우러져 따로 각각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런 것으로 인해 여행하는 기분 뿐만 아니라 책 여행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요소가 되어 주었다.
스페인의 시간이 가득 쌓인 골목과 궁궐과 그 지역에 서려 있는 슬픈 이야기들, 몰랐었던 배경
지식까지 골고루 접하게 한다.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투우다. 우리가 알고 있던 투우는 한 사람의 투우사가 빨간 천을
흔들고 황소가 콧김을 씩씩 거리며 달려드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 사람이 아니라 창 던지는, 칼 던지는, 빨간 천을 흔드는 각각의
임무가 따로 정해져 있어서 여러 명의 투우사들이 함께 출전한다. 직접 본 저자도 느꼈었다던 그 느낌, 황소가 죽어가는 그 장면을 환호해 가며
관람하는 잔인함이 더 느껴졌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를 만들어 낸 스페인 내전과 누에보 다리의 탐방처럼 화가이자 국어
교사인 저자의 관심을 끄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도시들도 문학 작품과 화가들을 생각하며 돌아본다. 고흐가 살았었던 아를, 알퐁스 도데에게 작품을
쓰게 했던 영감의 도시 퐁비에유, 그리고 100년 전 세잔이 살았던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아틀리에, 냉정과 열정 속의주인공들 처럼 운명의
누군가를 만날 것만 같은 피렌체의 두오모 종탑, 떡갈나무 기둥 위에 세워진 도시 베네치아 등 저자의 취향에 끌려 중세의 모습과 일몰까지
감상하게 된다.
이런 것을 보면 여행자의 직업과 관심도, 목적, 시선에 따라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여행 하느냐,
그 색깔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같은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더라도 20대는 스쳐 지나간 친구들에게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치면 이 책의 저자처럼 화가이고 국어 교사의 눈으로 보는 유럽의 도시는 그림과 문학 작품에 연결지어 둘러 보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좋다. 독자로서는 저자의 이런 호기심과 시선 덕분에 생각지 못했던 부분으로 파고 들 수 있다는
것에.
함께 무리를 지어 여행했었어도 이 분 혼자 가는 그 길에 혼자 가게 두지 않고 이 분을 따라 졸졸
다녔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