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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책읽기가 힘들까? - 당신의 편견을 깨는 생각지도 못한 독서법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문지영 옮김 / 다온북스 / 2016년 6월
평점 :
난독을 통해 얻는 세렌디피티,
난독과 세렌디피티의 상관관계는 도무지 상상력으로 얻어 낼 수 없을 것 같다.
책읽기에는 정독과 다독, 속독 등 방법이 다양하게 있고, 때로는 독자 개개인의 노하우도 있겠는데
"당신의 편견을 깨는 생각지도 못한 독서법" 이라는 안내 덕분에라도 난독과 세렌디피티는 호기심을 끌 만하다.
영어를 비롯해서 외국어를 익히는 것을 나의 경우는, 공부한다는 표현이 어울리지도 않고 제대로 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듯이 책읽기에도 정독, 다독, 속독 만이 있다고 말하지 못함이겠다는 느낌이 왔다.
책읽기,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한 권을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읽은 책은 모두 다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도 한 몫 거들기도 한다. 나도 그렇다. 특히 고전은 재미있지도 흥미진진하지도 않다. 그래서 더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책읽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는 생각으로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읽을 필수 과목인 양 다른 책이 많이 쌓여 있어도 고전 한 권에 열의를 퍼붓는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일종의 강박적인 프레임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도 처음엔 1권 부터 시리즈 작으로 나온 책 모두를 읽어 댔다고 한다. 그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드디어 난독과 세렌디피티를 이끌어 낸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읽어도 다 못 읽을 책들 속에서 한 권을 붙들고 읽은 기분이 날 때까지, 이해될 때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닌, 난독을 저자는 권한다. 이 책 저 책을 찔끔찔끔 보면서 뭔가를 얻으라는 것인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비슷하다. 우리에게는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읽어야 할 책은 너무도 많기에 얕게 읽는 것 같아도 전혀 접하지 못하고 지나는 것 보다는 낫다는 의미이리라. 같은 분야의 책 한 권을 깊이 읽는 것 보다 더 많은 책을 빨리 접하면서, 분야도 이공계, 인문계 할 것 없이 많은 부분을 접하다 보면 머릿 속에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어느 날 느닷없이 머리를 깨우치는 행운이 다가 올 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렌디피티 이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뜻밖의 행운>
혹자는 비판적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생각에 반대할 지도 모르지만 한 번 쯤은 시도해 볼 만 하다 충분히 생각한다.
세렌디피티는 많은 경험 속에서 확률을 기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읽기로 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 할 뿐 아니라 그 결과물이 무엇이 될 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우연한 행운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가 필요하다. 알파 읽기와 베타 읽기를 선보이는데 미리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독서를 시작하는 알파 읽기 보다는 아무런 선입견이 없는 상태의 베타 읽기 법으로써 종횡무진 책을 접하다 보면 드디어 난독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 느낌, 알 것 같다.
TV 채널도 한 채널에 오래 고정시켜 두고 시청하면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고스란히 놓치겠지만 중요 부분이다 싶은 장면을 조금씩 맛배기로 보면서 여러 채널을 자주 돌려서 본다면 깊이있는 시청까지는 되지 못하겠지만 모든 프로그램을 다 알 수 있고 어떤 내용인지는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이것이 바로 난독의 세계 아닐까 한다.
인제 저자가 말한대로, 특정 분야에서만은 나 만의 난독 세계를 더욱 누벼 볼까 한다. 어떤 시점에 어떤 종류의 세렌디피티가 내게 올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난 기대를 크게 가져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