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위의 역사 - 역사학자, 조선을 읽고 대한민국을 말하다
이덕일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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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성토 대상이 된 을사오적은 공동으로 상소를 올려 , 독립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사는 안전하고 황실은 존엄한데, 다만 외교에 대한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 나라에 맡겼으니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면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조정의 대신으로 있으면서 을사늑약을 체결한 후 이런 상소를 올렸다.

을사오적, 그들은 두뇌가 비정상적이었거나 바보에 가까운 사고를 하고 있던 자들이 아니었을까?

인지 능력이 모자라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 자들, 이런 자들에게 정치권을 맡겨 둔 백성들의 미래는 말 하지 않아도 뻔한 것이다. 무뇌, 저능, 무능력, 무기력으로 일관한 자들이 정치 권력을 잡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역사 속의 그 날을 되짚어 한 토막씩 회상해 보는 방식으로, 그 때는 그런 일이 있었다, 지금 현재는 어떤가, 라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역사 속 한 장면 대 현재의 모습은 놀랄만치 비슷하거나 반복되고 있어서 가슴을 치며 파고 든다.

현재 상황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다가오는 느낌이 달라져 보여서 일까, 그 시대 속에서 그 백성으로 살고 있었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운이 좋았다, 이 생각으로 가득찬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생각만 분주해 진다.

 

28쪽.  21세기 대한민국의 조세 정책은 어떤가? 소득세나 법인세 인상 등의 부자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할 생각은 안 하고 담뱃값 인상, 주민세 인상, 자동차세 인상 등 서민의 호주머니만 털어가는 행태는 양반 사대부들을 군역 의무에서 면제 시켰던 과거 군적수포제와 얼마나 다른가.

 

신년이 되자마자 (지난 1월 5일) 대통령 및 고위 공무원, 공무원들의 월급 인상 발표가 있었다. 밀려있는 국정 처리 속도를 본다면 비교할 바가 없는 초고속이었다. 3% 인상이라는 발표에 눈으로 보이는 수위인 3%가 누구에게는 몇 만원이 되고 대통령에게는 700만원 인상이라는 차이에, 최저 임금, 회사 월급을 생각하는 일반 네티즌들에게 분노의 댓글을 쏘아대게 했다. 이것이 민심이라는 것이다. 이 기사가 나간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아 더욱 기가 찬 기사가 나왔다. 일반 시민들이 내는 세금이 OECD 국가에 비해 너무 낮다고. 복지 실현을 위해서 세금을 증액할 필요가 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그들의 월급 인상 발표 후 또 다시 민심은 요동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만 귀 먹고 눈 멀어 있는 것 같다.

 

142쪽.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은 학문으로 쌓은 정당성을 목숨을 걸고 실천했다. 그래서 백성은 조광조의 정치를 자신들의 것으로 여겼다. 이것이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사림이 현실에서는 패배했어도 역사에서는 승리한 근본 원인이었다. 지금 국민은 야당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여당의 잇단 실정에는 고개를 돌리지만, 그렇다고 야당을 대안으로 보지도 않고 있다. 지금 야당에는 조광조처럼 목숨 걸고 그릇된 지배 구조와 맞서 싸우는 인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패배자의 길이었지만 그 길이 정당하면 역사에서는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조광조는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지금 야당에는 손톱만큼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으려는 계산법만 난무한다.

 

정치권의 어리석음과 잘못된 선택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 출처를 궁금하게 한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가 그 첫 번째 목적이겠지만 그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가 넘어지는 것은 보지 못하는지.

국가가 존재하지 않을 때 자신들의 권력이 지속될 수 있을지, 그런 앞을 보는 생각에는 머리 회전이 절대 될 수 없는 것인지, 의아할 뿐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최우선 과제인지, 머리 맞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해야 제대로 굴러 갈 국가로 설 지, 못 설 지 알 수 없는 판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른다. 국론을 모아야 할 때는 어김없이 분열하고, 국민을 위하는 정책을 일 순위로 두어야 함에도 머리 둔하고 눈 어두운 자기네들끼리 결정해 버린다. 이것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행동의 결과물인지 뒤져서 뿌리를 뽑아 버리지 않고는 국가라는 커다란 사회는 바퀴 빠진 수레가 힘겹게 서 있는 꼴로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혼돈 그 자체이다. 벼슬 길을 향해 오로지 글공부 만을 위해 살아오던 위인(?)들 이어서 앞 뒤 꽉 막힌 사고를 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일지도 모르겠다. 머리 회전 잘 되고 융통성있는 사람들이 벽 보고 수행하듯이, 한 곳만 구멍 파면서 살아오기는 답답하기도 했을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서 난제를 풀어가고 개혁을 시도했던 진정한 위인들은 사회적인 변화를 기꺼이 받아 들이고 수행했었다. 임난 때의 유성룡이 신분제를 타파해 가며 양인을 늘려갔고, 양반에게도 세금을 물었던 대원군 등도 혁신을 위한 몸부림을 보였다. 그러나 지속될 수 없었던 분위기, 기득권들의 귀환과 더불어 다시 예전으로 고스란히 돌아가던 그 사회가 다른 옷을 입고 같은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 이란 이름의 차별로.

 

 

저자 이 덕일 님의 책, 칼날 위의 역사는 바로 역사를 통해 바라 본 현재의 우리를 비판하고 있다. 가슴이 답답한, 어찌 보면 잘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반복되지 않는 역사를 써 갈 수 있으면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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