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융합 - 인문학은 어떻게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만나게 했을까
김경집 지음 / 더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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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어떻게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만나게 했을까

 

제목아래 부제가 흥미롭다.

요즘, 하나의 학문만 알지 말고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고 이쪽 저쪽 분야를 넘나들자고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인문학적인 융합,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도 그러하다.

역사, 과학과 예술, 정치와 인권, 신화를 다시 들여다 보기, 자유, 여성의 해방, 시를 통해 만나보는 작가들의 공통점.

이런 분야들을 하나만 보지 말고 총괄하여 시대와 시대를 뛰어넘고 서로 이어가는, 생각을 버무려서

다시 또 다른 생각을 창조해 보는 과정을 가지자고 권하고 있다.

 

인문학은 결국 사람을 다루고 있고, 그 속에서 어떤 분야이든지 얼마든지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항상 질문을 하면서 답을 얻어 낼 수 있다고.

 

첫 번 째 바로 보이는 부분이 시공간을 넘나든다는 것이다.

콜럼버스와 이순신의 만남, 이것은 실크로드로 시작한다.

그들의 시대는 100년의 차이가 있고 그 시대의 간극을 뛰어 넘는 것이 바로 무역과 항로의 개척이다.

중국 명나라 영락제 시대의 정화함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가 서쪽으로의 항해를 했었다는, 함대를 이끌고  무역도 하고 항로를 개척했었다는  이야기는

소설 <한복입은 남자>를 통해서 이미 접했었기에 더욱 반갑게 맞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 함대에 우리 세종 때의 과학자 장영실을 태우고 이탈리아로 건너 갔다는 소설이다.

이 소설도 생각해 보면 생각의 융합으로 얻어진 소설 중 하나라고 생각이 된다.

 

바야흐로 생각을 섞어서 새로움으로 창조해 내는 시대가 이미 도래를 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시대에 앞서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게, 넓어지고 받아들여지고, 가슴과 머리를 열고 정보를 받아들여

종합을 하는 방향으로 먼저 시작이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작은 동양이었는데 결국 콜럼버스에게 장악권을 뺏겨 버린 그 점도 생각해 볼 일이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바위 구멍을 뚫는다.

물방울이 뭐, 어때서, 와 스치고 말 생각들은 그 작은 원인이 돌고 돌아서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몇 백 년이 되었든 결국 맞딱뜨리게 된다는 사실과 진실들.

그냥 스칠 수도 있는 시공간의 간극이었지만 그냥 스칠 수 없는 결과물을 탄생 시켰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역사 속의 진실, 에밀 졸라와 드레퓌스 사건, 그리고 우리나라의 강기훈 사건을 통해

오늘 날 진실을 마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는 시간이 흘러온 만큼 발전이 되었던가?

축구 4강 신화의 히딩크를 매개로 오렌지 색 군단의 네덜란드 팀, 그 오렌지가 의미하는 자유의식,

둑을 터뜨리면서까지 지켜 내 왔던 개인의 자유가 소중함을 넘어서서 다시 보였다.

 

1984년 뉴욕, 파리, 베를린, 서울 4곳에서 동시에 위성 중계쇼를 했었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

그 당시 백남준 이라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예술가가 보여줬던 창작품을, 저게 뭐지? 했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아주 어렸었고, 어리석었고, 흐리멍덩한 생각으로 그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던 것이다.

그 때 당시는 젊었었던 백남중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TV 수상기를 조종했던 그 순간에

TV 를 캔버스 삼아 시간과 동작을 한꺼번에 담아내는 예술을 완성해 내고 있었던 거다.

이렇게 미래를 사유했던 그 역사적인 순간이 아주 희미하게나마 오늘날에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도 가졌다.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나의 의식에 융합의 생각들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창의 라는 단어에 화두를 두고 목표 설정에 따라 쫓기만 할 일이 아니라 융합하는 사고와

기술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만큼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지리라 기대해 본다.

더욱 여러 방면으로 호기심을 놓치지 말고, 한 우물만을 고집하지 않는 자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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