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 중국 문화대혁명을 헤처온 한 남자의 일생
옌거링 지음, 김남희 옮김 / 51BOOKS(오일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집 앞 골목에서 막내 딸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데 다짜고짜 잡혀가는 아버지, 루옌스, 그 뒤에 황망하게 따라 나서던 그의 아내, 완위.

우리나라의 비극이었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에서 이념의 경계에 섰던 남편과 아내의 애절했던 헤어짐이 떠오를만큼 한 가족의 가장, 아버지이자 남편, 계모의 아들인 루옌스는 반혁명 분자로 낙인 찍혀 감옥으로 끌려간다.

 

머릿속으로 바둑을 두는 것처럼 활자 기록하는 기억 능력이 비상한 그의 머리 속에 그가 끌려간 감옥에서의 일들이 저장된다.

훗날 그의 손녀 딸이, 우리 할아버지 루옌스가 겪었던 이야기를 읽는 독자가 되어 길고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독자들로서는 중국의 한 때, 혁명기 때의 무조건적인, 무차별 비판과 처형, 감옥으로 보내는 일련의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가 있다. 드라마로 제작한다면 쉽게 막을 내리지 못할 만큼의 분량이 되리라.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이 소설을 원작으로한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단다.

 

처음부터 중간을 넘어서는 부분까지는 감옥과 죄수들의 생활과 그 이전의 삶들이 기억 속에서 오고가며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었다.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되어 하나하나 영화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옌스의 탈옥, 그것은 완위에 대한 사랑이었고, 자수해서 다시 노동개조 농장으로 돌아간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루 집안에 시집와서 애정없이 살아온 완위, 옌스 자신이 스스로 고른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가 데리고 왔다는데에서 옌스는 달가워 하지 않고..  미국 유학으로 서로 떨어져 지내고, 전쟁으로 인해 또 떨어져 살아간다. 그런 환경에서도 세 아이들을 길러내고 루씨 집안을 조용히 지켜 온 완위를 옌스는 혹독한 감옥 생활을 해 가면서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는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도망치지 않는다면 살아 무엇을 하나?   할아버지는 이날 밤 부터 도망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만일 도망쳐서 완위앞에 선다면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소. 눈이 번쩍 뜨여야만, 엄청난 재앙이 닥쳐야만, 무기징역으로 끌려 가야만 자신을 이해하고 과거의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꺠달으니 말이오.  (136쪽)

 

옌스는 박사급 반혁명 분자로 정치범이다. 이렇다할 뚜렷한 죄목도 없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다시 무기징역이 되었다가 총살이 처해지는 무리 속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까지 사람의 처신이라는 것이 순간순간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념에 휩싸여 있던 상태, 그리고 전쟁을 겪었고 반대파와 숙청이 난무하는 가운데 말 한마디 삐끗 잘못 놀렸다가 그의 인생은 방향이 틀어져 버렸다. 살아남기 위해 그는 수감 생활동안 말을 더듬는다.

 

이 길고 긴 이야기의 여정은 가족에 대한 사랑 이었고 그 순간마다 벅찬 감동이 솟아 올라왔다.

수용소에서 상영되고 있는 교육 영화 속에 딸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다 자란 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천신만고 라는 단어가 어울릴만한 일이 있었다. 지도원에게 뇌물로 백금 오메가 시계를 바치고 눈 밭을 거슬러 도착한 본부강당, 떼지은 사람들 틈을 헤치고 마지막 남은 5분 속의 딸의 얼굴을 보자 펑펑 울던 옌스, 아버지의 정이 느껴지던 뜨끈한 장면이었다. 영화관에서 상영 중에 이 장면이 나왔다면 관객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지 않나 싶다.

석방되어 돌아 왔을 때 완위는 이미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었고 노부부에게서 보여지는 사랑이 찬란하게 느껴졌었다.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시종 안구에 습기가 차이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천천히 음미하듯 읽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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