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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페스트 / 시지프 신화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154
알베르 카뮈 지음, 이혜윤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1년 6월
평점 :
예전 언제던가 이방인을 읽었었던 것 같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문장구절에서 언제던가 한 번 읽었었던 느낌이 들었지만 자세한 기억이 없어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돌입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는 뫼르소 라는 청년은 그가 부양능력이 되질 않는다는 이유로 엄마를 양로원으로 보냈었다. 친구들도 있는 환경이어서 오히려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양로원 원장,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면서 그는, 이제 드러누워 오랫동안 잠을 잘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잠시 기쁨을 느낀다. 장례식의 분위기, 그들 속에 둘러싸여 슬퍼하지도 않고 멀뚱히 식을 치뤄내던 뫼르소, 돌아와서도 여자와 수영도 하고 영화를 본다.
프랑스 현대 스타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소, 분위기가 냉정하다 못해 무심함으로 넘쳐 흐르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일을 열심히 하고 담배 피고 사랑도 하고, 이웃과 우연히 얼굴을 부딪히고 그들 삶에 잠시 끼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주 사소한 일상으로 진행이 되고 있을 뿐이다. 그의 엄마는 인생 이라는 무대 위에서 잠시 뒷문으로 살짝 퇴장이나 한 것 처럼 무대 위의 그는 할 것들 그대로 하면서 살아갈 뿐인 모습으로 일관한다. 어느 날 그는 이웃에 살고 있는 남자와 여자친구, 셋이서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출발을 하게 되고, 그 날 해변에서 그들을 해치려던 아랍인들 중 하나에게 총을 쏘고 만다.
이후에 일어난 일도 그는 당황함 하나 없이,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나 반성, 괴로움도 없이, 감옥이 제 집인 양 적응해 가는 청년은 대체 무슨 마음인지, 평범한 사람의 반응과는 전혀 다른, 마치 남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쳐다 보고만 있는 듯한 태도를 보면서, 제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서 보기 보다는 남들에 의해 흘러가고 있는 듯한 시간을 본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을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를 생각하기에 앞서, 이 문장 자체를 문학적으로 바라본다면야 많은 함축된 의미를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 속에 두고 본다면 상식 밖의 일이라 싸이코 패스 정도 쯤으로 보게 되는 이유이다. 자신의 엄마가 죽고 나서도, 또 그의 형이 확정되고 나서도 그 자신 그대로의 무심함이 그에게는 이 사회에서의 인정 받을 수 없는, 아무도 돌아다 봐 주지 않을 삶의 자세를 대표 한다고 봐야 한다.
인생에서 선을 그은 듯한 무관심은 그 자체만으로 유죄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아가지 않는 태도 쯤으로 보아질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는 결국 다른 것과 결부 되었을 때의 문제가 됨을, 그래서 잘못 살아진다로 귀결 됨을 순서도 대로 착착 흘러가는 것 같다.
인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태도에는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자신의 인생이라 하더라도 무심함으로 일관된 자세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불운과 맞딱뜨리게 되었을 때의 그 결과는 현재에서 상상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예심에서, 변호사에게, 법정에서, 모든 주변의 정황 속에서도 그는 할 말 없습니다 로 일관 했었던 그 결과 말이다.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상식이라는 공통의 생각을 벗어 날 때의 위험성이 커질 뿐이겠지.
과정이 좀 더 현란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결과에서 보여지는, 세상으로부터의 격리 조치, 그는 그 일 뿐인 것이고, 이쪽 세상은 당연한 듯이 오늘도 똑같은 태양이 떠오를 뿐 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