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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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일기들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무척 궁금한 책이다. 조선 시대의 시대적, 사회적, 정치적인 사건 사고들, 혹은 가볍고 무거운 이야기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질 것을 생각해 본다면 책장을 얼른 넘겨 보고픈 생각이 들지 않을 리가 없겠다.

문체가 아주 현대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조선적인 냄새는 일기를 썼던 그 사람들의, <계암일록>의 김령, <매원일기>의 김광계 처럼 일기록의 저자들은 분명 당시의 한문을 써서 남겼겠지만 요즘 신세대들의 언어에 가깝게 소개해 둔 점이 그렇게 느끼도록 한 것 같다. 그만큼 읽어가는 속도감도 결코 느리지 않다. 후루룩 읽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내용도, 저자의 글쓰기 방법도 속도감 있게 썼다.

앞서 <계암일기>와 <매원일기>를 언급했던 것 처럼 <노상추 일기>, <쇄미록>, <묵재일기, <양아록>, <남천일록> 등 1500년대와 1700년대를 살아온 그들이 남겨놓은 책들을 통하여 그 당시의 삶을 아주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일기라는 것이 그렇게 개인적인 부분도 있었겠지만 시대와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목표했던 바 대로, "그들과의 공감대" 형성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역사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이라고 책 소개에서도 나와 있듯이, 무슨 드라마 보듯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행동들이 우리 시대의 부정 부패를 바로 연결해 갈 수 있을 만큼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 때 부터 이런 일들이 아주 성행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 만큼.

시험 부정, 공무원들과의 결탁, 훈장들이 미리 알려주는 시험 내용, 직장 생활의 애환, 탐관오리들로 지칭되는 부패 공무원과 정계의 부정부패, 가족과 여인들, 전쟁 중 그리고 유배시에 했던 상황들, 노비와 사회 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일기 속에서 마치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조선 사람들의 삶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읽을 거리들 이었다. 읽어가면서도 어찌나 우리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는지를 느낄 때 혀를 끌끌 찰 지경도 있었다. 땅 투기, 땅 매매와 같은 현상도 그 때 양반들과 소작농, 노비들과의 돈거래, 땅 매매 관계, 그런 것들이 지금 시대에 일어나는 일과 많이 닮았다. 중간중간 풍속화도 소개해 주고 조선 시대에 있었던 여러가지 정치 상황이나 사회 모습을 자세히 설명해 둔 부분도 독자를 위해서 아주 유익하기도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난로회 라며 겨울에 모여서 고기를 구워먹던 모습인데, 오늘날 마당이나 테라스에서 고기 구워 먹는 그런 모습과 겹쳐지기도 한다. 캠핑이나 바베큐 풍속은 서양이 아니라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도 친지, 가족들과 모여서 그렇게 고기를 구워 먹었었나 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서양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그렇게 그들 행동양식을 모방했을 리는 만무할 테고.

유배 가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는 <남천일록>을 통해서는, 유배가는 것도 억울할 텐데 그 경비까지 조달해 가면서 가야 했던 그 당시, 양반이면서도 스스로 일용할 양식을 조달해야 했던,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방 훈장이라는 것과 유배지에서 매일 새벽에 점호를 받아야 했던 것도 새롭게 안 사실이다.

신입 사원의 호된 신고식 이라든지 밀가루 뿌리고 옷 찢는 졸업식을 보면 왜 이렇게 미친 짓거리를 하는거냐고 의아했더니 일기 속의 신입 관원들이 겪어야 했던 것이 그대로 내려온 듯 보인다. 팔불출의 손자 바보 이야기에 부부싸움으로 밥 까지 굶는 양반, 이래저래 살기 힘든 시절의 푸념과 억울함, 사람 사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이 내용들을 현대시 쓰듯 그렇게 제목도 붙였다.

"나는 네가 과거 시험장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이것은 무슨 영화나 소설의 제목으로 먼저 나왔었던 것 같다.

"이 천하에 둘도 없는 탐관오리 놈아", "나의 억울함을 일기로 남기리라.", "그 땅에 말뚝을 박아 찜해 놓거라." 중간중간 소제목도 나름 재미있고 그 속의 내용들은 마치 우리 이야기들이 조선 시대 속에 들어가서 새로 재탄생하는 듯이 읽혀진다.

역시 일기는 한 사람의 과거 기록 뿐만 아니라 그것이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도 남아 이어온다는 것을 이 책에서 소개해 놓은 개인들의 일기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하나하나 참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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