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환야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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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먹이사슬을 연상시킨다. 추악한 탐욕을 가진 인간들이 줄줄이 궤어져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서로 잡아 먹고 또 올라가는 그런 사슬 같은. 


금속 가공 공장을 하던 아버지와 함께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마사야,  결국 견디지 못하고 남은 것은 아버지의 유해와 빚 뿐이다.  그런 그 앞에 빌려 준 돈을 받겠다고 나타난 고모부, 빚의 청산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사건,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때마침,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집이고, 공장이고, 돈이 어떤 의미가 되어 줄까?



:::마사야는 손을 털고 일어섰다. 이제 더는 이곳에 볼일이 없다. 어차피 남의 손에 넘어갈 공장과 집이다. 그런데 그곳을 뜨려는 그의 눈앞에,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거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마사야는 전혀 모른다. 확실한 점은 방금 자신이 한 짓을 이 낯선 여자가 지켜봤다는 것 뿐이었다. (30쪽)




목숨 챙기기 바쁜 틈에 눈이 마주친 두 사람.. 기이하다고 해야 하나, 결정적인 순간을 공유하게 된, 아니 약점처럼 잡혀버린 마사야,  한 고비 지나면 다시 한 고비의 어둠이, 그렇게 하나 씩 치우고 다시 생겨나는 악의적인 사건들, 이런 것들에 사로잡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마사야 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미후유 의 계획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부탁, 애원, 요청, 이런 것으로 자신의 삶까지 휘둘리며 살아가는 사람, 그는 마치 꼭두각시가 된 것 같다. 이런 이야기가 꼭 소설 속에서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랑하니까, 신세를 져서, 미안해서, 그 어떤 여하한 이유로든지 서로간의 관계가 형성되면 한 쪽의 뜻과 의지에 끌려들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마사야 의 삶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끝도 없이 깊게 끌려 들어간다.



그녀는 성공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라는 달콤한 목표를 당근으로, 채찍으로 내 건다. 사람을 잘도 조종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백야행>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만약 <백야행>을 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비교할 것도 없이 아주 흥미롭게 술술 이 전개에 빠져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읽었다 하더라도 <백야행>의 그것과는 구도가 닮아 보인다 생각이 들어도,  전개와 그 알맹이는 또다른 세계 속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여자가 존재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생을 아주 알차게(?) 살아가는 여인을 설정하였다. 아무리 소설 중 인물이라 하여도 이렇게까지 주도면밀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사야의 기술을 써야 할 곳이라면 미리 부터 그녀가 길을 터 놓고 준비해 놓았다. 그녀 스스로도 발판이 될 일이라면 그녀의 미모와 마성을 동원해서라도 또 그렇게 준비된 삶을 산다. 그 길에 방해자가 생기면 또 마사야가 진행하도록 만들어 두었다. 앞을 나아가는 그 계획성, 통찰력, 직감, 사업 수완, 모든 것이 성공과 행복을 슬로건으로 걸고 착착 진행을 하고 있다. 이 여인을 위한 보조자 겸 도우미 역할 밖에 되지 않았던, 마사야의 삶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뒤늦게 그녀의 뒤를 캐는 형사 가토, 마사야를 좋아하던 식당 처녀, 인생길에 누구를 만나 그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따라 그 결말도 많이 달라진다는 것,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고보면 이 여인의 처음 등장부터, 눈이 마주친 그 날 부터 모든 것이 계획된 일인 양 느껴진다. 그리고 그녀의 속셈, 그녀가 향해가는 목표는 어이없는 결말로 나아가고 조금은 가슴 답답함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씁쓸한지도 모르겠다.



"환한 낮의 길을 걸으려고 해서는 안 돼. 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 밖에 없어. 설사 주위가 낮처럼 밝다 해도 그건 진짜 낮이 아니야. 그런 건 이제 단념해야 해." (334쪽)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환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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