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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페스트 (양장) - 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 다른 상황에서라면 우리 시민들은 어쩌면 더 외향적이고 더 적극적인 생활을 통해 탈출구를 발견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페스트로 인해 그들은 일거에 무위도식을 하게 되었고, 음산하고 활기없는 시내를 맴돌거나 매일매일의 맥 빠지는 추억 놀이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적없이 산책을 하면서 그들은 늘 같은 길을 지나가곤 했고, 또 대부분의 경우 아주 좁은 시내에서는 그 길이 바로 과거에 부재자들과 함께 다니던 길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페스트가 우리 시민들에게 맨 먼저 가져다 준 것은 귀양살이였다."
(96쪽)
이 문장에 다다르자, 우리의 도시 몇 군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양살이, 2020년의 희망찬 해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많아졌다. 늘상 이어져 오던 사람들과의 일상이 아주 오래 전 있었던 과거의 흐릿한 이미지처럼, 하지 말아야 하고 조심해야 하고 피해야 할 일로 남아있게 되었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어색하다 못해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는 상황 속에서 책 속 구절처럼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워낙 고전인지라 어릴 적에도 한 번쯤 읽었다는 생각도 든다. 기억 속 어딘가에 그 내용은 쥐가 옮기기 시작한 질병, 전염병의 처참한 상황과 그 대처, 남아있는 자들의 생각과 행동들이 얽혀 있다. 1947년 초판 이미지로 다시 잡게 된 이 책은 현실 속 코로나 바이러스 19 상황과 겹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상황들의 묘사가 두드려져 읽혀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의 페스트라니, 전염병 앞에서의 사람들의 대처는 이렇듯 시대도 시간도 구분할 것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같아지고야 만다.
오랑이라는 도시의 인물들과 의사 르외, 이 사건을 서술해 놓은 수첩의 주인공 등 그들이 보여주는, 전염병을 대하는 그들의 인식과 자세, 대처, 태도는 놀랄만치 침착하고 의연하기까지 하다. 물론 인간으로서의 놀라움과 공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건의 중심 속에 서 있는 이들의 행동과 사고는 프랑스 스타일로 결코 낮지 않은 격조까지 들여다 보이게 한다. 이런 데에서 카뮈의 묘사력이 한층 더 빛나지 않았나 느껴지기도 한다.
아닐거야, 아닐거야, 조심스럽게 마음 한 구석에서의 외침도 소용없이 점점 늘어만 가는 사망자 수의 통계, 급기야 도시는 폐쇄되고 그 속에서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삶, 전염병과의 싸움, 이런 것들이 평화로운 마음 상태로 읽을 수 있을 때의 독자들의 입장과는 다소 다르게 닿아오리라 짐작한다. 너무나 닮아있는 묘사에 마음이 무거워지기까지 하는 역할도, 제 3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내용 전개도 모두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반성과 통찰까지 이끌어내게 할 만 하다.
르외와 함께 페스트 라는 공포와 불행에 맞서 싸우던 그랑, 랑베르, 그리고 타루,이들을 통해 보여준 사람들의 의로운 행동과 어린아이가 죽어가던 모습을 찬찬히, 끝까지 지켜보고만 사람들의 아픔, 그리고 페스트 막바지에 이르러 닿아온 사람들의 죽음 등, 처음부터 끝까지 카뮈의 표현력은 숨도 쉬지 못하고 읽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이 문장에서,
"실제로 도시에서 올라오는 환희에 찬 함성들을 들으면서 리외는 이런 환희가 늘 위협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쁨에 찬 이 군중은 모르고 있지만 그는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스트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어서 방, 지하실, 짐 가방,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그것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날이 분명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410쪽)
쾅쾅 울려대는 경고문마냥 읽혀진다. 이 또한 지금 심각한 상황 속에서 이 책을 읽은 까닭일 것이다.
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까지 한몫 거들며 독자들의 마음을 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