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파리행 - 조선 여자, 나혜석의 구미 유람기
나혜석 지음, 구선아 엮음 / 알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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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에 뭔지 모를 슬픔이 일었다. 약소국 조선 여자로 태어나 그것도 그림 재주를 타고 나서 그녀가 느꼈을 온갖 답답함과 좌절이 이 책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한꺼번에 올라오는 까닭이어서 그랬을까.

1920년대 한창 핍박받고 고생하던 시절의 조선을 떠나 1년 8개월 동안 유럽과 미국 등지를 돌아 다녔던 나혜석의 눈에는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 가방을 끌고 이웃집 드나 들듯이 하는 유럽과 어떻게 다르게 들어 왔을까 사뭇 궁금했더랬다.


조선 여인, 한 집안의 아내요 며느리요, 노모가 계신 세 아이의 엄마였던 그녀가 얽매여 있던 그 곳을 벗어나고, 자신을 옭아 매던 사회적인 지위, 며느리의 입장, 엄마의 역할을 떠나 그 먼 타국을 돌아 다닐 수 있었다는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도 않았을 뿐 더러 결국에는 실행에 옮겨서 <꽃의 파리행>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심경을 토로한다.


그녀가 발 디뎌 지나간 흔적을 따라 다닌 부산진을 출발하여 경성, 중국 곳곳, 하얼빈으로 만주로 둘러둘러 시작한 곳은 모스크바였다. 그 후 폴란드를 살짝 지나치며 본격적으로 유럽에 들어선다.



:::금강산을 보지 못하고 조선을 말하지 못할 것이며, 일광을 보지 못하고 일본의 자연을 말하지 못할 것이오, 소주나 항주를 보지 못하고 중국을 말하지 못하리라는 것 같이 스위스를 보지 못하고 유럽을 말하지 못하리라. (43쪽)


나혜석은 유럽 뿐 아니라 영국, 미국에 까지 도달하여 그들의 삶과 문화를 접하며 그녀 관심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그림과 예술에도 심취했다. 영국과 프랑스 처녀들의 교육과 가정생활, 부인네들의 삶 등을 조명할 때에, 군데군데 유럽 여러 나라에서 느꼈을 그들의 자유로운 삶 속에서 보며, 느끼며 행복해 했다. 상대적으로, 삶에 허덕이며 고생하고 있을 조선의 동포와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못할 우리 네 삶을 불쌍하게 여기고 쓸쓸한 마음을 갖는 것도 피할 수가 없었다.


네덜란드, 벨기에, 파리, 베를린,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보며 한껏 만끽해 오면서 천재들의 발자취를 그녀 자신도 밟고 있구나, 생각하며 환희를 느끼기도 했다. 요즘 우리도 여행을 떠나 새롭고 낯선 곳에서 느낄 법한 그런 느낌이랄까, 다빈치, 미켈란젤로가 걸어갔을 그 골목길을 나도 지나가고 있는건가, 하는 그런 느낌 같은.


그렇게 여행기 다운 이야기로 각 나라들의 특색과 느낌, 문화와 행사 등을 기록해 온 책이기도 하지만 그녀 자신만의 생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쪼그라드는 현실 앞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시어른들, 아이들, 돈에 대한 생각등이 괴롭혀 오기도 한 것을 보면 마냥 각 나라들을 돌아다녔다는 그 뿐 이었을까, 하는 단순하고 소비적인 느낌도 따라 붙었다. 그녀는 이 여행의 목적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남녀간에 어떻게 살아야 평화로울지, 그리고 신여성으로서, 화가로서 그림에 대한 느낌 같은 것을 얻고 싶어서 떠난 것이라고.


우리가 살고 있던 한정적인 나라에서, 고향에서, 나를 둘러싼 기본적인 모든 조건 속에서 떠나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니고 긴 세월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가 되돌아 왔을 때의 그 느낌을 나혜석 또한 비슷하게 느끼고 있음을 보았다. 자유롭고 널찍한, 여유있던 분위기에서 올망졸망, 시시각각 고민 덩어리로 다가오는 동시대의 다른 장소의 그 차이, 그것이 그녀를 슬프게 했고 힘빠지게 했음을, 시대를 막론하고 제한된 지위의 사람이 느낄 수 밖에 없는 감정은 공통적일 수 밖에 없는 걸까, 싶기도 한 그런 느낌.



::: 조선에 오니 길에 먼지가 뒤집어 쓴 것이 자못 불쾌하였고 송이버섯같은 납작한 집속에서 울며 나오는 다듬이 소리는 처량하였고 흰옷을 입고 걱정없이 걸어가는 사람은 불쌍하였다.      (214쪽)



책을 덮으며 드는 느낌은 그저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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