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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로망, 로마 ㅣ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19년 6월
평점 :
참 재미있는 책이다. 구성면에서도, 내용면에서도 여늬 로마 여행서를 함께 엮어 연상해서는 안 되는 책이다.
실제로 로마를 여행하기 전에 먼저 읽어 본다면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장소를 찾아서 동전을 던지며 행운을 빌고, 어느 여행자가 갔었어도 하였을 보편적인 여행은 적어도 비중에 두지 않을 것이다.
리비우스 <로마사>, 폴리비우스 <역사>, 키케로 <의무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그리고 <명상록>, <고백록> 등과 같은 고전을 함께 하며 로마 곳곳을 의미있게 만들 여행을 이 책은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다. 재미있다는 말 부터 쓴 것은 상투적으로 하는 표현만이 아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로마는 역사 속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전쟁, 로마 시민이 구성되고 발전해 가는 그 전개를 샅샅이 연결지어 소개할 뿐 아니라 고전 속의 내용과도 함께 상기시키게 한다. 고전이니 그저 읽으라 했다면 쉽지 않을 두께의 고전책을 이 책의 저자와 함께 로마를 이해하고 접하다 보면 이 고전들을 반드시 읽어 보겠노라, 하는 의욕까지도 불태우게 만든다.
<노년을 위하여>, <의무론> 등 많은 저술을 남겼던 키케로가 그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었는지, 그의 딸 역시도 그 운명의 수레바퀴에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코끼리 부대를 앞세우고 알프스 산맥을 돌파했던 한니발 장군의 이야기는 유명하나 그를 무찔러 버린 스키피오의 이야기 또한 역사 속 인생들의 무상함을 느끼게 해 준다. 아버지와 삼촌이 전쟁에서 피를 뿌렸고 로마를 위해 싸웠던 그 자신 조차도 공금 횡령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죄목으로 몰렸을 때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 비정한 조국이여, 그대는 내 뼈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 (59쪽).
로마로 끌려와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역사가, 폴리비우스, 작은 변방 국가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 이유와 그렇게 번창하고 번화했었던 자신의 조국 그리스가 망한 이유, 역사는 왜 변하고 그 주체는 무엇인지 의문을 가졌고 답을 얻기 위해 썼던 작품, 그리고 그것은 고전이 되었다.
로마 대욕장에 얽힌 사연들, 사치와 향락의 근거로만 알고 있었던 그 유적들이 실상은 로마 시민을 위로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음을, 그리고 그 벽면에 걸려있던 그림 한 점이 의미가 심장하다. 풀밭 위에 누워있는 해골 장면이다. 오로지 쾌락에만 열중하라는 장소일 것 같은 욕장의 벽면에 해골이라니, 그 입구에 왜 죽음을 상기시키는 그림이 걸려 있었을까. 전쟁에서 개선한 장군의 행렬 끝에도 전쟁에서 패배한 상대편처럼 승전과 패배의 극적인 교차점을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던 로마인들, 철학자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과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정치 참모였던 철학자 세네카의 글과 죽음 또한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로마라는 국가가 주는 영향력은 전세계에 걸쳐 뻗어있는 만큼 그 생성에서부터 발전과 쇠퇴에 이르기까지 고전이 된 역사책을 통해, 그리고 현장을 밟아가며 느끼는 강도는 남다를 것이다. 이 책이 그 로마의 길을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하고 독자는 스스로 그 안에서 길을 잃어 방황토록 하는 이유도 로마가 가진 진정한 영향과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캐어내게 하는 방편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저자의 뛰어난 이야기 솜씨와 책의 구성 또한 돋보인다. 로마 왕정과 공화정, 제국이 창건되고 결국 쇠퇴의 길로 향하는 구성에서 그들이 남긴 왕들의 성벽, 영묘, 신전과 광장등 이들과 얽혀 있는 에피소드들은 재미도 나지만 주옥과도 같다. 왕과의 절친이었던 우정이 왕보다 먼저 죽은 친구를 왕의 영묘에 안치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 또한 흔하지 않다. 그리고 중세 로마와 르네상스를 소개하는 마지막 구성에서는 걸작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바티칸 박물관을 둘러보며 소개하고 있는 10대 유적들, 작품들, 그 밖의 걸작들이 감상의 시간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옛시대의 고전이 응축하고 있던 폭발력이 후대의 노력으로 재발견 될 때 인간은 얼마나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기와 다른 것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얼마나 개방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1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