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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평점 :
슬픔을 느꼈다. 무슨 일이, 사건이, 잔혹하고 계획적인 범행이 시작되는 선상의 출발에는 동기라는 것이 있고, 그 동기가 아주 인간적일 경우에는 더욱 비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먹고 살기 위해서, 잘 살아 보기 위해서, 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라는 이유에서라면 범행이 합리화 될 수 있고 이해되어 질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지금 당장 손에 쥔 것이 없으니 일을 하여 벌 수 밖에 없는데 몸 까지 아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좀 더 가진 사람에게서 빼앗아야 살 수가 있다는 이 생각은 거의 대부분의 생계형 범죄가 그러하듯 범죄의 이면은 딱하고 불쌍하고 슬프다.
마치 원시인의 삶의 논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먹으려고 사냥하고, 더 가진 놈에게서 빼앗아서라도 살기 위해서. 배가 고파서 진열된 빵에 손을 대었다가 그 빵을 다 먹어 보지도 못하고 감옥으로 잡혀갔던 쟝발쟝이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일상 속에 들어온 범행의 동기는 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였다.
저자는 범죄의 이면을 다루기 위해서 죽인 자와 죽은 사람을 만들어 냈다. 죽인 자는 부모 없이 동생과 살아가던 청년이었고, 죽은 사람은 아들내외와 손주까지 있는 가정의 돈 많은 할머니였다. 무조건적으로 범죄를 저지려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동생을 위해 돈 만 훔쳐내려던 것이 결국 살인 강도를 저지르게 되었다.
잔인한 범죄의 양상만 계속 서술해 가고 있었다면 독자의 마음까지 닿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일상은 존재하고 그 일상 또한 평범하지 않은 놀라운 시작, 그리고 이어지는 고뇌와 고통, 그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평온했던 순간으로 되돌아 가려고 찾아가는 그 과정 묘사가 잘 그려지고 있다. 별 얘기 아닌 듯 하지만 형과 단 둘이 살아가던 평온하고 행복했던 일상 속에 찾아 든 벼락 같은 소식, 형이 살인을 저지렀다, 이후 동생이 치뤄내야 할 그 일상들은 범죄자 가족이 겪어야 할 가족의 위치는 어떤지 잘 보여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게 되는 동생의 생활, 주변의 태도, 그들의 시선 등이 사실감있게 잘 나타나 있어서 그 어떤 말로도 힘을 내라, 기운내라, 너 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라는 말로 결코 회복되지 않을 상황을 아주 서서히 이겨내고 극복해 가는 그 과정을 더욱 빛나게 했던 것 같다. 뜻밖의 사건이 우연히도, 아니,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마침내는 다다르고 말아야 할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밀어 준 계기가 아니었을까도 싶게 한다. 편안한 일상 속에서 머무르고 있었다면 어디를 향해 나아갔을지 알 수 없었던 그 지점을 형의 사건을 계기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 고통의 시작이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로 이끌고 갔다.
얼마 전 일어났던 어이없던 진주 아파트 사건, 드물게 범인의 신상 정보까지도 모두 드러내게 했었던 범행은 5명을 죽게 하고 다수의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 이런 범죄의 이면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들어진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흘러가야 할 것인지, 사건 후 사죄한 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아무리 징역을 산다고 하지만 모두 상쇄되어질 수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만을 바라보지만 그 이면의 상관없던 사람들에게 까지 보이지 않는 고통들이 새로 생겨남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도 남겨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