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평점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을 정의 하라면 무엇을 근거로, 기준으로 어떻게 결정해야 할 것인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일로, 혹은 심장이 뛰지 않는 것으로, 아니면 뇌사 라는 것으로, 죽었다, 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을 판가름할 때 어린아이인 경우, 하물며 자기 자식인 경우에는 설사 아이가 죽었다손 치더라도 얼마나 믿고 싶지 않을 것이며, 죽고 말았다는 그 기준은 어디에 있나. 당연히, 의사가 죽었습니다, 라고 선고하면 빼도 박도 못하는 선고가 될 것이다만 뇌사의 경우에 그것이 받아들여지기 까지, 믿고 싶지도 않고 부정하는 단계에서 다시 체념의 단계로 넘어가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인어가 잠든 집, 제목에서는 이런 문제를 다루었을 거라는 예상은 전혀 주지 않는다. 인어, 잠들다, 무슨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고 있을까, 궁금했을 뿐인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루는, 아주 애매하고도 심각한 사안을 다루고 있었다.
갑작스런 사고는 잘 자라고 뛰어 놀던 일상 속의 아이가 사촌과 함께 수영장엘 가서 벌어지고야 만다. 그 여자아이는 미즈호, 그 애가 물 속에서 건져 올려 졌을 때에는 이미 축 늘어져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미즈호의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전제로 별거중인 부부이다. 다행인 것은 미즈호의 아빠가 첨단 과학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고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기계를 실험하고 있던 중이었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전개되어도 이미 독자는 미즈호에게 그 첨단 기술을 이식시켜 보려고 하겠다는 예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이야기의 흐름은 어디로 갈 지 예상할 수가 없게 일상은 지속된다.
미즈호의 삶과 죽음을 둘러싸고 부모로서의 간병하는 자세,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그 마음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죽었다고 곧바로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할 수 있는데까지 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태도가 결국에는 끔찍한 현실 속에 던져져서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사고 방식에 따라 갈라지는 의견 차이와 충돌은 소설을 구성하는 의미를 더욱 짙게 해 주었다. 어디까지가 부모의 노력으로써 보아야 할 것이며, 어디까지를 욕심으로 봐야 할 것인가. 뇌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드라마에서만 들어오던 식물인간, 주변에 전선을 주렁주렁 달고 생명을 연장시켜 가는 장치들, 어디까지가 살려는 의지이며 어디까지가 예비 유족들의 만족이 될 지는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거기에다 죽기 일보 직전에 또 다시 던져진 과제, 장기를 기증할 것인가.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아 아연해 하는 부모 앞에서 장기 기증의 부분은 어쩐지 너무 갑작스럽게 달겨드는 갈등 요소임에 분명하지만 그 장기만 받을 수 있다면 다시 살 수 있는 확률이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서 보자면 새로운 삶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지극히 현실적인 요인으로 바라보게 한다.
자, 당신이라면, 미즈호의 부모 입장으로, 그리고 애타게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환자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상대방의 입장을 대신하여 보여 준다. 아울러, 뇌사 판정 과정 뿐만 아니라 각각의 현실에 처한 각 개인의 섬세한 심리 상태 또한 잘 표현해 보여 주고 있어서 감정 이입을 충분히 하여 읽어 볼 만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