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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의 검 ㅣ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평점 :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자면 범죄 수사 이야기가 흔히 줄 수 있는 긴박감, 긴장 등이 가미되지 않은 채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예상 밖이기도 하다. 의도적으로 긴장감을 추가하지 않기로 한 채 이야기 전개 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그 기술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싶었다. 당연하게도 경찰서와 형사, 살인 사건이 시작점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범죄가 발생한 현장에서 범인을 쫓아가는 도입 부분으로부터 이야기가 차츰 진행해 나가는 자체에서 전혀 긴박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이 자체가 어떻게 표현하면 예상했던 것 보다는 싱겁다고 할 만 한데 결코 싱거운 맛이 나지는 않는다. 범죄 사건을 쫓는 형사들, 은퇴를 앞둔 노련한 형사와 파트너를 이룬 풋내기 와타세, 그들이 이뤄낸 결과물이 검찰로, 그것이 다시 법정으로 퍼져가는 그 과정은 어찌 보면 그럴 수 있는, 그들 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만 나카야마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독자에게 그 자체만을 선사하고 있지는 않다. 작은 물방울이 그려낸 동그라미 파문 하나가 일파만파 흩어져 나아갈 때의 그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아, 그 다음 순서는 뭐가 되는가, 그리고 선택은?, 이런 의문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면서 앞으로 전진하게 한다. 그래서 그 뒤가 더욱 궁금해 지고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테미스의 검,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는 여신, 법원 같은 곳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고 인테리어 식으로 (얼마 전 종영된 변호사 드라마에서도 보여졌던) 놓여 있는 이 여신은, 정의가 무엇이고 권력은 무엇인지, 어떻게 둘을 잘 버무려 사용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제목만큼이나 주인공 와타세 형사의 고민, 그리고 줄줄이 이어져 온, 업무상 과실이라는 실수가 가져온 결과들, 그런 것에서 보여지는 엉뚱한 현실들, 이런 것들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아, 이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들도 방울방울 생겨난다.
현재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여기에서는 부동산 업자 부부 살해 사건에서부터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발생한, 늘 있을 수 있던 행태들, 관행들, 심문하는 과정에 강압적인 행동과 태도등이 있었고 그것이 피의자에게 내려질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련의 일들, 이 현재가 곧 과거 일이 되고, 다시 가까운 미래에 뜻하지 않은 결과로써 다가 왔을 때의 해결 방법은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한 권의 이야기 만으로 결론 내릴 수 없는 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독자로서는 이런 방식으로 도출해 내는 검찰과 경찰이라는 조직,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 등이 어떤 파장으로 이끌어지는지도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형사 와타세를 통해 바라본 사회적인 문제와 이로써 벌어지는 또 다른 살인사건, 이 모든 연결 고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도 대입시켜 보게 한다.
"형사라서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의 의무죠. 아무리 오래전 일이더라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과오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잡지 않으면 또다시 새로운 부실과 죄가 만들어 집니다." 418쪽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지만 마치 현재 속에 고뇌하는 인간처럼 표현하고 있는 점도 독자에게 현실감을 주는 이유이다. 경찰은 실수하지 않는가, 따지던 피의자의 부모, 손에 쥔 권력은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마치 자신들의 힘으로 가지게 된 것 인 양 정의의 이름 아래에서 휘두르는 검찰과 경찰, 그리고 결국 제도의 이름으로 시행했던 그것이 잘못이었음이 드러났을 때 어떻게 판단하는가에 따라 갈려지던 사람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거대한 조직체를 뒤흔드는 칼이 되어 돌아왔다. 그 중심체에 서 있던 와타세 형사를 통해 독자의 판단과 공감을 유도한다. 조직생활에서 개인의 역량과 표현은 어디까지여야 할 지도 자못 생각할 거리이다.
또 다른 나카야마만이 보여 줄 수 있었던 부분은 다른 작품에서의 등장인물들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현재와 과거를 함께 해 왔다는 점이다. 예전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현재 와타세의 주변에서 함께 자신의 일을 해 오면서 이 작품에서도 그 분야의 인물들로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일관성으로 돋보였다. 그러지 않아도 그가 조금이라도 언급해 온 이름들은 다 자신들만의 역할이 있다는, 존재의 이유가 꼭 드러나게 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즉, 나카야마의 작품은 한 작품으로 읽고 끝낼 일은 아니라는 의미도 되겠다. 폭넓게 접하고 나야 비로소 머릿 속에 반짝 들어오는 느낌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면.
정의로운 선택을 했던 판사의 손녀가 와타세와 헤어지는 인삿말로, 형사님도 계속 형사님으로 계셔 주세요, 라는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한 손을 들어 올리며 걸어가던 와타세 형사가 너무 멋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마지막 끝 페이지까지도 끝까지 읽어내게 하는 그 힘은 바로 이런 멋짐 폭발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