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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더 레터 - 편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영선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편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라는 부제에 걸맞게 편지에 관련한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편지가 무엇이던가. 편지지에 글을 써서 우표 붙여 부치고 난 후 며칠을 기다려야 상대편에 도착하는 아날로그적 행동의 대표격이 아니던가. 속도감이 넘치는 세상에서 결코 속도가 나지 않는,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그들만이 알고 싶은 내용으로만 채웠던, 대단히 개인적인 내용일 수 밖에 없는 주제를 다루기 시작한 저자에게 첫 출발을 하도록 만들어준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다소 궁금했다. 오로지 재미있는 것들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저자의 삶의 방식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인생을 다채롭게 할 만한 뭔가 색다른 아이디어를 건져 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전해져 오기도 했다. 경매에 부쳐진 옛 편지들 속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건져 올리고, 그 날의 느낌과 감정을 되살려 내는 작업을 하는 동시에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 내는 안목이라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구시대적인 유물일 수 밖에 없었고, 케케 묵어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편지들을 하나 씩 들추어 낼 때 작가의 심정은, 땅 속에 파묻혀 발굴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진귀한 보물을 건져 올린 느낌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키케로,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철학자들의 편지도, 시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의 사적인 편지들도, 나름대로 그들만의 성격과 상황들이 이루어낸 글귀로써 편지는 이루어져 있었다. 다소 교훈적이기도 한 것이 있었던가 하면 그 날의 소회와 어느 역사책에도 쓰일 수 없었던 화산 폭발의 순간같은 역사적인 순간들도 아주 상세히 드러나 있었다. 특히 사랑에 빠진 그 순간에 쓰여진 나폴레옹, 헨리 8세의 연서는 조제핀을 향해, 앤 불린을 향한 군주의 탄식과 기다림 같은 것들이 표현되어 있다.
편지의 발달사 같은 느낌의 자세한 기술은 이 책의 페이지 수를 장장 5백 여 페이지 넘게 차지하도록 만들었고, 편지에서 느낄 수 있는 달달한 감동과 그 때의 이야기만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길게 이어지는 편지사를 읽는데에 그것을 빼앗길 수 밖에 없게 했다. 이 점에서, 15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전편을 10장 정도로 추려 주었더라면 좀 더 말쑥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남기며 전자 메일을 주고 받는 시대로 진입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책을 마치면서 남아있는 기억은 어차피, 긴 시대를 거쳐오며 변화를 거듭해 왔던 편지의 변천사 보다는, 당사자들이 주고 받았던 편지 내용 중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남긴 열정 쪽이 더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양했던 편지쓰기의 발달과 전달 과정에서 생겨난 에피소드등, 특히 사람이 직접 우표 값을 지불하고 스스로 배달되어지던 그 실험적인 이야기 같은 것은 초기 우편 시대의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 편지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페이지가 길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