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자마자 과학의 역사가 보이는 원소 어원 사전
김성수 지음 / 보누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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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은 실생활과 연계해서 배워나가다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학문이지만 안타깝게도 화학은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꽤나 좌절을 안겨준 과목이다. 내 기억 속 화학시간은 정말 지루하고 재미 없었다. 게다가 화학선생님은 무섭고 깐간한 학생주임에, 별명이 마녀였고 암기를 좋아하지않는 나는 원소주기율표에서부터 낯선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꽤 오래도록 화학에 대해 보이지않는 벽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다행히 많은 시간이 흐른 후 화학을 이런 저런 모양으로 접하게 되면서 나름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좀 더 알고싶다는 마음도 든다. 그러다 접하게 된 이 책은 화학원소들과 나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상당히 좁혀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선택하게 되었다.


저자 김성수씨는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최우수 졸업(숨마쿰라우데)을 했다. 지금은 다양한 고분자 물질이 탄소소재로 전환되는 과정과 결과를 연구하고 있다. 머리말에서는 그가 사용하는 이메일 아이디가 flourF인 이유가 나온다. 원자번호 9번인 플루오린F은 전기 음성도가 가장 높아 어떠한 경우에도 전자를 받아들이는 원소인데 이런 특성을 가진 플루오린처럼 어떤 지식이든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그런 열망에 걸맞게 저자는 화학자로서 연구를 하면서도 여러 외국어를 공부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거쳐서 화학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분야를 엮어가는 창의적인 시도들을 계속해가고 있다. 이 책은 그 결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어가다보면 저자의 배경지식이 다방면으로 넓고도 깊을 뿐 아니라 그 다양한 내용들을 읽기쉽게 풀어내는 글재주 또한 있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쉬운 내용만은 아니지만 술술 잘 읽힐 뿐더러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를 주기 때문에 나처럼 과학, 특히 화학에 거부감이 있는 독자라 해도 겁먹지 않고 도전해볼 만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의 편집을 특히 칭찬해주고싶다. 화학교양서를 이만큼이나 산뜻하고 보기좋게 만들다니 '보누스'라는 출판사는 처음 접해보지만 호감도가 상승하고있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장 원소의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2장 인간의 역사를 만든 7가지 금속

3장 '소'가 붙지 않는 금속

4장 '소'가 붙는 금속

5장 염을 만드는 원소

6장 고귀하신 기체원소

7장 잿물과 양잿물: 두 이름을 가진 원소

8장 트랜스페르뮨 전쟁

부록 언어별 원소이름목록 / 함께 읽어볼 만한 자료


그리고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잠깐! 화학자 상식>이라는 코너가 있어서 화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이 꽤 재미있다.


그 중 일본의 난학자인 '우다가와 요안'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 그는 네덜란드를 통해 수용한 서양의 과학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다양한 화학용어(결정, 분산, 용해, 기체 등), 생물학 용어(세포, 속 등)를 한자어로 바꾸었다. 우다가와 요안의 이러한 수고로 인해 한자문화권에 속한 화학자들이 훗날 서양문물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원소의 명칭에 대한 내용 중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황은 오래전에 석류황으로 불렸는데 황이 포함되어 있는 성냥은 이 석류황이 변해서 된 이름이라는 것이다. '석류황'을 빠르게 발음하면 '성냥'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납과 비슷한 아연의 이름이 '아연'이 된 사연도 재미있었다. 납은 한자어로 '연'인데 아연은 납과 비슷해보이지만 훨씬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이 마치 중국대륙에 출몰하는 일본해적, 즉 왜구처럼 맹렬하다고 해서 중국 명나라 과학자인 송응성이  '왜연'이라고 표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용어가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스스로 '왜'로 불리기를 꺼려하는 일본인들이 '왜연'을 '아연'으로 바꾸어 소개하였고 한국에도 그렇게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러더포듐, 노벨륨, 로렌슘, 시보귬 등은 사람의 이름을 딴 원소이름이라는 것과 그렇게 명명되기까지의 과정도 흥미롭게 전해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화학의 주인공들인 화학원소들의 이름과의 낯가림이 좀 해소된 느낌이 든다. 원소들의 이름이 친숙해지다보면 그 특성과 쓰임을 이해하는데에도 수월해질 것이다. 그러다보면 화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벽도 허물어지리라 기대하게 된다. 화학을 좋아하는 사람 또는 화학을 좀 더 재미있게 입문하려는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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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릴 수 없는 미래 - 사라진 북극, 기상전문기자의 지구 최북단 취재기
신방실 지음 / 문학수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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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체에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이 가해졌을 때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변형이 일어나는 현상, 바로 '히스테리시스hyteresis'다. 우리말로는 '이력현상'이라고 한다. 

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않는 '비가역성irreversibility'과 같은 의미로 모두 물리학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이다. 그런데 최근 기후위기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히스테리시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비롯한 자연현상이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진행되고있기 때문이다.

되돌릴 수 없는 미래/ 신방실 p.153


꽤 오랫동안 많은 과학자들, 환경운동가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소리 높여 경고하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그 속도를 늦추기란 쉽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일회용품 사용 등으로 나 또한 탄소배출에 한 몫하고 있으리란 죄책감에 그린피스를 후원하며 무언가, 누군가 이 기후위기의 속도를 줄여주고, 방향을 돌려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서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에 접어들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제목이 더욱 마음에 무겁게 다가온다. [되돌릴 수 없는 미래]


저자 신방실씨는 KBS의 기상전문기자로 지난 해 북극에 다녀와서 <시사 기획 창> 다큐멘터리 '고장 난 심장, 북극의 경고'를 제작하였다. 이 책은 그 다큐멘터리의 제작 과정을 자세히 담고있다. 

1장에서는 입사 15년만에 북극 취재 기획을 성사시키며 우여곡절 끝에 노르웨이의 스발바르제도에 도착하기까지를 기록한다. 시작부터 항공사 파업이라는 예상치 못한 난항에 부딪히며 계획에 수정과 조율을 거듭하며 진행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긴장과 막막함, 부담감을 느끼며 지켜보게 되었다.

2장에서는 스발바르 제도에서 빙하와 피오르, 해빙 등을 취재하는 과정과 인터뷰 내용들을 담고있다.  이어서 3장에서는 니알슨과학기지촌에 있는 각 나라의 기지를 방문 취재하는 과정을 담고있다. 기자답게 꽤 상세하게 전달하는 내용 속에서 함께 관찰, 취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4장에는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완성해가는 과정이 들어있고, 5장에는 기상전문기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저자 개인의 삶에 대해 좀 더 들려주고 있다. 


대기과학을 전공한 기상전문기자답게 북극의 기후와 지구전체의 기후의 관계성을 상세하게 조목조목 알려주고 있어서 기후위기에 대해 한층 더 깊은 이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북극에 있는 빙하들 가운데 노르덴스키올드 빙하는 여름이면 가장 많이 녹아내리는 빙하로 꼽히고 있고, 발렌베르크 빙하는 하루 최대 9미터를 후퇴하는 추세로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폭주기관차'로 불릴만큼 현재 그 변화가 급격한 상태이다. 이러한 빙하의 변화는 북극곰의 생태환경에 영향을 주게 된다. 북극곰의 주 서식지 및 활동지는 해빙인데 빙하가 녹게되면 연쇄적으로 해빙 또한 녹거나 부실해지기 시작하자 먹이사슬에 변화가 생긴다. 해빙 주변에서 물범을 주 먹이로 사냥하고 순록과는 공생하던 북극곰이 점차 물범을 사냥할 수 없게된다. 먹이가 사라진 북극곰은 살아남기 위해 순록을 사냥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궁여지책으로 새알을 먹기 시작하는데 그 먹는 양이 어마어마하다. 이대로 가면 북극의 새들이 멸종에 이를 수도 있겠다. 또 북극의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눈이 아니라 비가 오는 횟수가 증가하고 내렸던 비가 얼면서 육지의 풀 또한 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순록이 먹이를 얻지못해 굶어죽는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순록은 해초를 먹이로 삼아야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처럼 지구의 기온상승이 북극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단순하지 않고 연쇄적이다. 


또한 북극의 이상고온현상은 북극상공을 감싸면서 북극의 차가운 공기를 가두고 있던 극제트기류를 약화시킨다. 그렇게되면 극지방에 갇혀 있어야 할 찬 공기가 흐물흐물해진 극제트기류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게되고 이는 연쇄적으로 지구 곳곳에 이상한파를 몰고온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북극의 바렌츠-카라해의 해빙이 우리나라의 기후, 폭염과 폭우, 미세먼지 등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한다. 


북극의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영구동토층 또한 녹으면서 넓은 웅덩이처럼 무너지거나 기반이 약해져 출렁거리게 된다. 이로인해 북극의 건물들이 무너지기도 하고 무너진 영구동토층 내부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된다. 여기에는 오래전 동물의 사체와 미생물, 바이러스 등이 갇혀있다. 땅속의 미생물들이 깨어나면 매머드 같은 유기물을 먹어치우며 분해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엄청나게 발생하는데 이 둘다 강력한 온실가스라는 것이 문제이다. 영구동토층에 잠재된 이산화탄소의 양의 현재 지구의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의 2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대기중 온실가스의 증가로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게되고 그 과정에서 갇혀있던 온실가스가 대량으로 대기로 방출되면 이는 또 다시 지구의 기온을 높아지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생각만해도 아찔한 악순환의 고리이다. 더구나 한번 대기중으로 배출된 온실가스는 쉽게 사라지지않는데 특히 이산화탄소는 2-300년을 대기중에 체류한다고 하니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니알슨에 있는 노르웨이 과학기지에서는 해발고도 474m에서 북극의 배경대기를 감시하는 제플린관측소가 있다. 지구대기의 기준이자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곳 또한 지구의 온실가스 증가로 인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 충격적인 사실은 2011년 동일본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사고가 있었을 때 유출된 방사성핵종이 북극 제플린관측소에서 검출되기까지는 단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지구는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모든 인간의 활동은 그냥 사라지지않고 지구에 발자국을 남기고 가장 깨끗한 북극상공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북극의 변화가 다시 지구에 미치는 영향의 반복순환을 되짚으면서 지구인으로서 어두운 미래에 대한 걱정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북극에 세워진 각 나라의 과학기지에서 지구의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꾸준히, 한결같이, 진심을 담아 연구하고 관측하고, 감시하는 과학자들을 보면서 고맙고도 든든한 마음이 든다. 그들이 북극의 기후변화 현장에서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수고하는 연구가 헛되지않도록 모든 인류가 뜻을 모아 지구를 위기로부터 지켜낼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람들이 해답을 찾길 바랍니다. 덜 소비하고 덜 이동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막는데 중요할 거예요. 하지만 매우 힘든 일이지요. 사람들은 늘 물건을 사고 성공을 자랑하니까요. 더 큰 차를 사고 더 많은 것을 소비하죠. 하지만 모두가 한 번 더 생각하고 조금씩 노력한다면 큰 도움이 될거예요.

인터뷰/ 오둔 톨프센/ 극지탐험가, 스발바르대학교 기술안전팀장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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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하는 미술관 - 내 삶을 어루만져준 12인의 예술가
송정희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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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조금은 특별한 영어 선생님이 계셨다. 어느날 각 반 반장들에게 선물을 주셨는데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그때 선물을 주신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중 나에게 온 것은 꽤 고급스러운 일기장이었는데 마리 로랑생의 그림들이 중간 중간 지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너무 예뻐서 일기장으로 쓰지도 못하고 마치 전시회 도록처럼 애지중지 아껴보았던 기억이 난다. 시골 구석에서는 처음 접해보는 미술의 세계였고 내가 만난 첫 여성 화가의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미술에 문외한인 나였지만 마리 로랑생의 '키스'라든지, '샤넬의 초상' 같은 작품은 아주 친숙하고도 향수 어린 기억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면 나는 로랑생이 그린 그림만 알았을 뿐 로랑생을 알지는 못하였나보다. 예술가의 작품을 피상적으로 아는 것과 예술가의 삶과 철학을 아는 것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이 책, [매혹하는 미술관]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다.

 


[매혹하는 미술관]의 표지는 조지아 오키프의  <붉은 양귀비 No VI>가 붉은 색 바탕 위에 배치되어 그 붉은 빛깔을 뿜어내고 있다. 한 마디로 강렬하고 아름답다. 책에 담긴 12인의 예술가들의 존재만큼.

제주돌문화공원내 갤러리 '공간누보'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 송정희씨는 12인의 여성 예술가들을 세밀하고도 깊숙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삶과 작품을 따스하게 조명해주고 있다.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그녀의 서술은 유려하고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구석이 있다. 사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리지 않은 나이지만 이 책만큼은 슥슥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빨리 다 읽어버리기가 아까웠다기보다는 각 예술가들의 삶을 마음으로 공감하며 문장을 한번 곱씹어보게되고, 작품을 한번 더 들여다 보느라 시간이 제법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에 겨우 한 두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기에도 마음이 벅찼던 것 같다. 이처럼 오래도록 음미하며 읽은 책은 참 오랫만이다. 송정희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단번에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서평을 슥슥 써내려가기에도 역시나 참으로 쉽지 않은 책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서평은 욕심을 내려놓고 그저 이 책의 한 조각만이라도,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을 한 조각만이라도 나누려는 마음으로 최소한으로 쓰려고 한다.

이 책에 담긴 여성 예술가들은 조지아 오키프, 마리 로랑생, 천경자, 수잔 발라동, 키키 드 몽파르나스, 카미유 클로델, 판위량, 마리기유민 브누아, 프리다 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케테 콜비츠, 루이스 부르주아이다. 


조지아 오키프

그녀는 또한 직감적으로 꽃이 갖는 낡은 여성성을 어떻게 전복해야 할지를 아는, 붓을 든 전략가였다. 꽃의 '예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쁘다'라는 말이 갖는 고정관념과 범주화를 전복하려고 했다. 멀리서 보이는 꽃의 외형에 머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가까이서 크게 보아야 열리는 꽃의 내면세계. 그때 보이는 낯선 아름다움에 주목한 것이다. 

오키프는 뼈와 뼈 사이의 구멍을 일종의 뷰파인더로 사용해 더 추상적인 세계로 자신의 그림을 밀고 나갔다.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뼈 구멍을 통해 본 그녀의 세상에서는 언제나 땅보다 하늘이 더 컸다.


꽃을 줌인 하듯 확대하여 즐겨 그리던 오키프는 남편 스티글리츠와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고 오랜 고통의 시간을 거친 후 이제는 뼈를 줌인 하듯 확대하여 그 사이의 하늘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오키프의 시선은 남달랐던 것 같다. 시골 학교의 미술교사에 불과했던 오키프를 미국현대미술의 중앙으로 이끌어준 것은 스티글리츠였다. 그러나 스티글리츠와의 관계가 뼈 아프게 끝나고 그 상처를 끝끝내 극복해고 살아남은 오키프는 더 깊은 자신의 예술세계로 들어간다. 그 상처의 과정은 안타깝지만 오키프가 스티글리츠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더욱 깊고 넓게 세워가게 된 것은 오히려 다행이다.오키프는 추상주의라든지, 사실주의라든지 이런 화풍에 얽매일 수 없는 영혼이었다. 그녀에게 지도를 바라는 많은 화가들에게 그녀가 하는 조언은 간단했다. "마음대로 그릴 것" 아마도 이것이 오키프 자신만의 화풍일 것이다. 무언가 특별한 대상을, 특별한 기법으로 그려서 그녀의 그림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재구성하여 그렸기 때문에 특별해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녀의 그림은 이토록 특별하다.


수잔 발라동

발라동이 1927년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화가가 된 후 그녀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되돌려놓는 변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풀리거나 포장하지 않았다. 그녀의 자화상은 강인하고 굴곡진 그녀의 내면을 현실적인 표정으로 살려냈다.


여성 화가가 드물던 시대에 그것도 당대의 내로라 하는 화가들이 모델로 삼았던 여인이 붓을 잡았다. 수잔 발라동, 그녀는 화가가 그리는 피동적인 대상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그리고 표현하는 그림의 주체가 된 것이다. 이것은 화가들의 시선에 자신의 이미지를 맡기듯 삶에 끌려가는 피주체가 아니라 스스로가 당당한 삶의 주체임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려지는 인생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강한 저항. 더구나  그녀는 자화상을 통해 그간 화가들이 바라본 자신의 이미지,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뒤집어버린다. '자화상'이나 '푸른 방'과 같은 작품을 통해 당시 세상이 강요하는 여인의 모습을 깨부수고 '아름다워야할 의무'에 맞서 '아름답지 않아도 될 권리'를 가져도 된다고 당당히 대변해준다. 그녀는 당시에 드로잉 300점, 유화 450점, 에칭 30점에 달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고 르누아르나 드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수많은 전시회를 가졌다. 여성으로서 프랑스 최초로 국립예술협회의 회원이 되었으며, 최초의 국립예술협회 전시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가 지나도록 그녀의 이름은 잊혀졌다. 화가 위트릴로의 어머니로, 르누아르의 뮤즈로만 기억될 뿐. 이 또한 여성 화가로서의 슬픔의 한 단면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게된다. 


판위량

어린 시절 판위량은 몸종이었고 창기였다. 육체는 속박이었고 복종이었다. 나약함이고 굴욕이었다. ... 그녀가 몸종, 창기였을 때 그녀의 육체는 다름 사람을 위한 도구였다. ... 판위량은 누군가에게 소유되고 행위를 강요받는 자신의 육체를 감정과 영혼을 가진 자유의 표상으로 역전시켰다. ... 비로소 자신의 육체를 남을 위한 도구에서 자기 자신을 위한 무기로 바꾼 것이다. 

고아이자, 창기였던 판위량은 어느 연회에서 와세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 공무원 판찬화를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된다. 판찬화는 그녀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의 몸이 되게 하였고 그녀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결혼까지 하였다. 그리고 판위량이 문학과 예술에 눈을 뜨게 돕는다. 이후 상하이미술전문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남편 판찬화의 후원에 힘입어 프랑스로 유학까지 떠난다. 이후 파리의 리옹미술전문학교와 이탈리아의 로마국립미술원에서 배우며 서양화와 중국전통회화를 결합하여 독자적 화풍을 개척한 최초의 중국 화가가 된다. 그러나 그녀의 누드화에 담긴 솔직하고 현대적인 화풍과 창기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중국에서 활동하기 어렵게 했고 결국 프랑스로 떠나 장장 40년을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에술활동을 펼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끝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남편 판찬화의 죽음을 애도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굴곡진 인생이지만 판찬화의 헌신적인 사랑과 후원, 자신을 불사르며 쏟을 수 있었던 미술이 있었기에 판위량, 그녀의 삶은 외롭지만 외롭지 않고, 슬프지만 슬프지않은 아름다운 생이었다 여겨진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마리 로랑생, 천경자, 카미유 클로델, 키키 드 몽파르나스, 마리기유민 브누아, 프리다 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케테 콜비츠, 루이스 부르주아의 삶과 사랑, 예술혼이 가득 담겨있다. 너무나 꾹꾹 담겨있어서 이 책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정도이다. 더 언급하고 싶은 화가들이 많지만 이만 서평을 마무리해야겠다. 때로는 세상의 시선을 벗어던지고자, 때로는 누군가의 뮤즈라는 이름을 부수며, 때로는 육체의 고통을 극복하며 생을 부여잡고자, 때로는 시대가 주는 아픔을 널리 알리고자 그녀들은 예술이라는 용광로 가운데로 걸어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살라내며 예술을 살고, 삶을 살아낸다. 그 삶이 너무나 아름답고 강렬해서 이 책의 표지 또한 그러한가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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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표현의 결정적 뉘앙스들 영어의 결정적 시리즈
케빈 강.해나 변 지음 / 사람in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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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알파벳을 처음 접하고 이후 순수한국식(?)으로 영어를 배워온 나로서는 이따금씩 외국인을 만나 영어로 소통해야할 때마다 조금은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배워 입력된 <상황에 따른 표현>들이 한정적이라서 매우 교과서적인 문장에서 겉돌곤 하기때문이다. 알아듣고 대답하기에 급급하다보니 모국어처럼 자유롭게 구사하기가 어려운데다가 그때 그때의 상황과 대화 상대에 따라 다른 뉘앙스로 반응하기란 참으로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차에 <영어표현의 결정적 뉘앙스들>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친한 사이에선 쿨하게

평범한 사이에선 무난하게

윗사람에게는 매너있게

구어체와 문어체는 구분해서


책표지의 부연설명을 보면서 제법 관심이 갔다. 

한국어는 높임법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에 따른 어법이 명확하기도 하지만 영어에서는 높임법이 없기 때문에 더욱이 뉘앙스가 중요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같은 의미의 표현을 쿨한 영어/ 일상 영어/ 매너 영어로 구분하여 상대와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Chapter1 일상 커뮤니케이션 표현의 뉘앙스들


Chapter1의 13번째 표현은 상대방의 의견에 동참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을 쿨한 영어/ 일상 영어/ 매너 영어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표현에 대한 설명을 하나 하나 부연하여 좀 더 정확한 뉘앙스를 알려주고 있다. 그중 일부를 인용해본다.

# 쿨한 영어

I'm in 나도 낄게요!

I'm down./ I'm game. 콜

I'm cool with that. 좋지!

# 일상 영어

I think so.내 생각도 그래(요).

That works for me. 저는 좋아요!

(That) Sounds good/ fine/great. 좋은 것 같아(요).

# 매너 영어

That suits me fine.그러면 저도 좋습니다.

My thoughts exactly!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It doesn't get any better than this.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는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 헷갈리면

I think so. 


이것은 책에 제시된 문장의 절반 정도이지만 동의, 동참에 대한 표현을 이렇게나 다양하게 접하고 구분해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효과적인 영어노출 경험이었다. 사실 이런 표현을 듣고 이해할 수는 있더라도 내가 직접 말해보기는 쉽지않은데 이 책을 통해 자주 접하다보면 실제 상황에서도 나도 이렇게 말하게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QR코드를 통해 원어민의 발음으로 본문의 문장들을 직접 들어볼 수 있게 되어있어 편리하다.


Chapter2 필수 회화 상황에서 표현의 뉘앙스들


Chapter2에서는 재촉, 분노/짜증, 불편/곤란, 불안/걱정, 미안함, 부탁, 날씨 등 구체적인 상황에 따른 표현들을 정리해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쿨한 영어는 파란색, 일상영어는 보라색, Idiom은 노란색, 매너영어는 초록색, 가장 무난한 표현은 검정바탕에 노란색으로 표기하여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구성하였다. 이런 구성도 책을 편하게 활용하는데 한 몫하는 것 같다.여기도 QR코드를 통해 원어민의 발음을 들어볼 수 있다.




Chapter3 문어체 vs.구어체 표현의 차이

Chapter3에서는 구어체와 문어체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주고, 어휘의 차이라든지 구어체 영어의 축약, 생략표현 등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또는, 때문에, 사실 등과 같은 표현에 대해 구어체적 표현과 문어체적 표현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이 부분 또한 하나 하나 다양한 표현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 '사실'이라는 표현에 대해 매우 다양하게 제시해주고 있어서 사진으로 첨부해보았다.



이처럼 다양한 표현을 그 뉘앙스를 파악해가면서 배워갈 수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꽤 재미있었다. 한번 슥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주 자주 복습하며 들추어본다면 외국인과의 영어회화에서 더 자신있고, 더 다양한 표현으로 대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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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말 역사 용어 150 - 다지쌤이 콕 집은 초등 사회/중등 역사 필수 용어 뭔말 용어 200
이다지 지음, 김용길 그림 / 메가스터디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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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얼마전 장풍쌤의 [뭔말 과학용어 200]을 통해 중학교과 과정에서 필요한 과학 용어를 재미있게 습득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뭔말 과학용어에 이어 나온 뭔말 국어용어 책도 유용하게 보았다. 메가스터디 북스에서 이번에는 역사용어에 대한 책이 나왔다. 바로 이다지 쌤의 [뭔말 역사용어 150]이다.먼저 핑쿠핑쿠한 표지가 산뜻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지쌤은 누적수강생 180만명으로 최고의 사회탐구 강사이다.역사 강의와 더불어 인생에 대한 명강의로 수많은 짹짹이(다지쌤 수강생들의 애칭)들을 거느리고 계시다. 역사에 관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다지쌤이 나섰다. 


서로 관련 있는 사건이나 인물, 제도 등을 함께 묶어 그 용어의 배경과 전개과정, 영향까지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셨다. 교과서 곳곳에 흩어져있는 관련 용어들을 묶어서 정리해주어서 역사의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파악하도록 돕고자 한 책이다. 



목차를 살펴보니 초등 사회와 중등 역사의 용어이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나 또한 나름 역사에 관심이 있는 편이지만 목차에 비교 대조되어있는 용어들을 살펴보니 정확한 공부가 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국사 뿐 아니라 세계사까지 다루고 있어서 정말 역사에 관해서는 이 한권으로 기초를 놓아도 충분할 듯 하다.





비교 또는 대조되는 역사용어를 설명하기 이전에 먼저 퀴즈가 있다.질문과 이에 대한 그림, 그리고 단서가 주어져서 헷갈리는 용어들에 대해 궁금증을 일으킨다. 그리고 다음장으로 넘어가면 두 용어에 대해 설명과 더불어 그림설명이 있는데 이 그림설명이 또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요약/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다음장으로 넘어가면 앞서 나온 질문에 대한 정답이 공개되어있다. 마지막으로 두 용어에 대한 비교를 요약정리해서 핵심을 파악하도록 돕는 표와 이다지쌤의 음성이 지원되는 듯한 마무리 멘트가 있다. 퀴즈- 설명- 정답해설 순으로 이렇게 하나씩 재미있게 습득해가다보면 어느새 책장이 슥슥 넘어간다. 그림도 유쾌하고 적절해서 정말 지루할 틈 없이 공부하면서 역사에 관해 자신감이 생기게 될 것이다. 중등역사를 대비하고싶은 예비중학생이나 그동안 배운 역사를 정리해보고싶은 중고생들에게 아주 적절한 역사학습서가 될 것이다. 또 역사에 관심이 많은 초등생들이 보아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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