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부활한 구세주를 몰라본 도마를 질타하겠지만, 기독교에서 그는 뜻밖의 대접을 받고 있다. 도마가 없었더라면 예수의 부활은 증명받지 못했으리라. 그러니까 도마의 의심은 예수의 신성을 확인하는 도구였다. 그렇다면 나의 의심은 사람들이 흔히 진심이라고 말하는 그 마음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다. 용의자들, 피해자들, 중인들, 구경꾼들, 또 역사의 영웅들과 악당들, 배신자들, 매국노들과 애국자들, 부자들과 가난뱅이들, 친구들과 가족들 등등······ 나는 가능한 거의 모든 인간들의 진심을 나의 저울에 올려본다. 이 저울의 반대편에는 사실의 세계가 놓여 있다. - P75

제가 공책에 받아 적은 끔찍한 글을 읽고 난 뒤에도 저를 이해해준 사람은 아빠뿐이었어요.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다는 선생님도 저를 이해하려고 애썼을 뿐이지 이해하진 못하셨잖아요.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그동안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면서 그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글을 써대는 저를 보고는 이상한 애야, 라고 간단하게 이해해버렸겠지요. - P85

질문이 있습니다.
뭔가요?
아까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 P88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어요. 이해만 있었죠.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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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단계들, 자유의지를 잠들게 하라. 해야 한다‘는 이제 그만.

병상 일기였을까? 카뮈가 자주 아팠을 것 같긴 한데. 나는 한두 가지 고질병을 거의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그 병이 주는 지겨움과 통증의 새로움을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궁금했다. 누군가에게 ‘아프다‘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지겨워지는 그 기분을, 일이나 약속을 취소하면서 그만큼 아픈 게 맞는지 검열하는 자신이 지긋지긋 해지는 마음을, 병명이 변명이 되는 순간의 쓸쓸함조차 떳떳하지 못한 기억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동시에 매번 새롭게 아프고 낯설게 아픈, 통증의 타자성을 어떻게 견디는지. - P154

병원에 갔다. 처방전을 기다리다 가 옛 슈퍼바이저 전화를 받았다. 병원이라고 했다가 자연스레 잔소리를 들었다. 아픈 것에 대해서는 꾀병이 아님을, 힘든 것에 대해서는 엄살이 아님을 증언해주는 그가 내게 하는 잔소리는 언제나 같은 맥락 속에 있다. 자신에게 매몰차지 말 것, 휴식과 게으름에도 명분을 줄 것, 무엇보다 죽음을 잊을 것. - P155

화를 따뜻하게 내는 사람이고 싶어. 남에게 밧줄을 던질 때는 반드시 한쪽을 꼭 잡고 있어야 한다는 걸 너도 알아 둬. 그래, 네가 기지개를 켤 때 앞발에 힘을 딱 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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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긴 세월 동안 헤어지는 중인 사람들이 있다. 그가 나를 이곳으로 불렀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건 내가 인간이란 종의 어떤 점을 제일 못 견디는지 알게 하는 경험이다. 나는 내게 제일 불편한 존재이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누구도 내가 나를 싫어하는 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미움은 쉽게 포기된다. 버겁다. 다른 사람까지 미워하는 건. 그래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궁금해진다. 그때 잘못 살았던 건 내 탓이었을까. 이 곳에서 다시, 혼자 내가 잘살 수 있으면 내 탓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 P144

몸의 존재방식이 달라지면 그것을 억압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취소에 의지해 살아가는 몸을 억압하기란 너무 쉽다. 시선과 한숨소리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 취소의탁자는 때에 따라 유의미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친한 이들과도 능숙하게 거리를 둔다. 일종의 자멸 메커니즘이다. 결코 아무도 믿지 못함으로 자멸이다. 약속이 취소되고 마음이 낙낙해진 김에 하는 고백이 고작 자멸 어쩌고라니. 취소는 언제나 환영이라는 고백이면 충분했을 텐데. 반복한다. 취소는 언제나 환영이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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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비트겐슈타인의 책에서 ‘그러나 당신은 실제로 눈을 보지는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고 그 혜안에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은 볼 수가 없죠.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지요.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책을 편집 하다보면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의 안쪽에서만 나오죠. 그래서 모든 책은 저자 자신이에요. 그러니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 P26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 P29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의 세상이 내게는 가장 선명하다고. - P30

"얻어맞아 텅팅 부은 얼굴이 미워서 내가 ‘이딴 짓 하지 말고, 하던 대로 글이나 열심히 써‘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글쓴다고 인생이 가만히 놔둘 것 같니?‘라면서 흘겨보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그래도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잖아. 해도 안 되는 일, 질 게 뻔한 일을 왜 하고 있어?‘라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어요.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무슨 바람이냐고 물었더니 ‘세컨드 윈드‘라고 하더라구요. 동양 챔피언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흉내내서 젠체하는 거였는데, 나중에 그 ‘두번째 바람‘이라는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지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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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떴다. 사방이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귀에 들리는 것은 나방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고요가 빚어내는 정적뿐이었다.
그 외침을 만들어내는 정적의 깊이를 헤아리기란 불가능했다. 그것은, 마치 대지가 스스로를 텅 비어낸 듯한 그런 정적이었다. 흐느낌조차, 맥박 뛰는 소리조차 허용치 않는 그런 정적이었다. 소리를 느끼는 것마저 허용하지 않는 정적 그 자체였다. - P54

"······새벽은 온통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로 가득 찬단다. 초석이며, 옥수수며, 수수깡이며, 도처에서 짐들을 싣고 오는 소달구지 소리로 말이다. 사람들은 창문을 뒤흔드는 수레바퀴 소리에 잠이 깨고, 마을에는 장작불 위에서 갓 구워낸 빵 냄새가 진동하는데, 저만치 아침 하늘이 열리는 거야. 하지만 어떤 날은 달라. 느닷없이 천둥 소리가 들리면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거든. 봄이 온 거야. 얘야, 너도 거기 있다 보면 ‘느닷없다‘는 말에 익숙해질 게다." - P75

날이 밝고 있었다. 빛이 사물의 그림자들을 거둬 가고 있었다. 그림자들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눈꺼풀 사이로 새벽의 여명이 닿고 있었다. 어렴풋이 빛이 감지되고 있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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