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을 떴다. 사방이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귀에 들리는 것은 나방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고요가 빚어내는 정적뿐이었다.
그 외침을 만들어내는 정적의 깊이를 헤아리기란 불가능했다. 그것은, 마치 대지가 스스로를 텅 비어낸 듯한 그런 정적이었다. 흐느낌조차, 맥박 뛰는 소리조차 허용치 않는 그런 정적이었다. 소리를 느끼는 것마저 허용하지 않는 정적 그 자체였다. - P54

"······새벽은 온통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로 가득 찬단다. 초석이며, 옥수수며, 수수깡이며, 도처에서 짐들을 싣고 오는 소달구지 소리로 말이다. 사람들은 창문을 뒤흔드는 수레바퀴 소리에 잠이 깨고, 마을에는 장작불 위에서 갓 구워낸 빵 냄새가 진동하는데, 저만치 아침 하늘이 열리는 거야. 하지만 어떤 날은 달라. 느닷없이 천둥 소리가 들리면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거든. 봄이 온 거야. 얘야, 너도 거기 있다 보면 ‘느닷없다‘는 말에 익숙해질 게다." - P75

날이 밝고 있었다. 빛이 사물의 그림자들을 거둬 가고 있었다. 그림자들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눈꺼풀 사이로 새벽의 여명이 닿고 있었다. 어렴풋이 빛이 감지되고 있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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