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비트겐슈타인의 책에서 ‘그러나 당신은 실제로 눈을 보지는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고 그 혜안에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은 볼 수가 없죠.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지요.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책을 편집 하다보면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의 안쪽에서만 나오죠. 그래서 모든 책은 저자 자신이에요. 그러니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 P26
"얻어맞아 텅팅 부은 얼굴이 미워서 내가 ‘이딴 짓 하지 말고, 하던 대로 글이나 열심히 써‘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글쓴다고 인생이 가만히 놔둘 것 같니?‘라면서 흘겨보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그래도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잖아. 해도 안 되는 일, 질 게 뻔한 일을 왜 하고 있어?‘라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어요.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무슨 바람이냐고 물었더니 ‘세컨드 윈드‘라고 하더라구요. 동양 챔피언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흉내내서 젠체하는 거였는데, 나중에 그 ‘두번째 바람‘이라는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지요." - P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