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 화파의 그림들과 마주친 때가 그런 버릇이 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처음에는 그 그림들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 그림들에서 흔히 보이는 대칭적인 구도와 노골적인 시선이 무례하고 적대적으로 느껴졌다. 그 그림들은 내가 당시에 관심을 두었던 다른 그림들, 예컨대 벨라스케스, 마네, 티치아노, 세잔, 카날레토의 그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낯설었다. 그 시에나파 그림들은 기독교적 관례와 상징이라는 은둔 세계에 속하는 것 같았다. 그 그림들이 기쁨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의 의향을 거스르다시피 하면서 계속 그 그림들을 보러 갔다. 잠깐 보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 그림들을 보면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그리고 해석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잔틴도 아니고 르네상스도 아닌 그 그림들은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조율하는 휴식 시간처럼 악장과 악장 사이의 파격으로서 홀로 서 있었다. - P13
내가 예약한 숙소는 오래된 팔라초의 일부였다.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천장과 완벽하게 균형 잡힌 방들이 있는 팔라초였다. 수수한 건물 외관 덕분에 내밀한 공간의 아름다움이 한층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후로 지내면서, 또 그 집을 나설 때마다, 심지어 뒤돌아보지 않고서도 그 건물의 절제된 외관을 의식할 때가 많았다. 그 모습은 온갖 비밀을 다 털어놓고 싶어질 만큼 듬직한 동지 같았다. 그 장소로 인해 새로 만나는 건물이 새로 만나는 사람처럼 그때껏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던 열정을 일깨울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우리는 건물이 일으키는 그런 변화를 대체로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런 변화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많은 경우 상호적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듯이, 방의 정취도 우리가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표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사라지지만, 아주 작은 그림자 같은 파편이 남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끔찍한 일이 일어났던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아름답고 고운 것에 쏟아진 관심을 오래 담았던 방에서 고요하게 고양되는 일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숙소로 돌아갈 때마다 내 마음은 기대로 부풀었다. 시에나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시에나 어디를 가든 마치 비밀스러운 노래처럼 그 방들이 주는 기쁨을 품고 다녔다. - P18
장식을 삼간 외부와 장려한 내부, 겉에서 보이는 침착한 초연함과 안에서 보이는 극진한 보살핌과 사려 깊음, 열렬한 심장을 감춘 겸손하고 또 절제하는 얼굴의 장난이 시에나의 관습이자 그 도시가 즐겨 펼치는 마술이다. - P19
우리는 흔히 건축물을 인간의 삶이 형성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특정한 기능과 활동을 위한 장소로 생각한다. 시에나는 이에 저항한다. 띠처럼 이 도시를 둘러싼 방벽은 물리적 경계인 만큼이나 정신적 베일이기도 하다. 방벽은 그 자리에서 침략군을 막는 동시에 시에나의 자기감을 지킨다. 여기서 독립은 그저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자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요청이자 자기 본성에 맞게 존재할 권리와 정신의 주권에 결부된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이다. - P20
그 도시에서 보낸 첫날에 다이애나와 나는 시작도 끝도 정해져 있지 않은, 그런 흔치 않은 대화를 나눴다. 시에나라는 도시 자체가 조장하는 듯한 셀 수 없이 잦은 모퉁이 돌기와 온갖 방해를 겪어 가며 대화는 이어졌다. 시에나가 말은 없어도 적극적인 제삼자인 양 우리 대화를 지휘했다. 그게 대도시의 주요 기능이지 하고 생각 했던 기억이 난다. 대도시가 있는 이유는 얼마간은 우리가 서로 더 잘 이해하고 또 더 잘 이해되도록 만드는 데 있으니까.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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