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울면 가슴부터 미어졌다. 혼자 우는 눈물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가끔 무방비가 되어 버린다.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 우는지가 중요했다. 나도 누군가 왜 우는지 물어봐줬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 P98

산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 여인도 내 눈에서 산 사람의 독기를 봤을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형제들은 가난은 대물림되는 거라 노래를 했지만 가난한 건 그들의 의식이었다. - P120

내가 당당하게 밥을 얻어먹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비겁한 나는 부자 친구가 사주는 밥은 주눅 든 얼굴로 얻어먹었다. 왜 가난한 자가 주는 밥은 양심의 가책도 없이 얻어먹었을까? 몇 배로 돌려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을까?
나는 돌려주지 못했다. 앞만 보는 직진형인 내게는 돌아볼 얼굴이 없었다. 이제 고개 돌려도 그녀는 없다. 동네 친구였던 그녀는 동네처럼 사라졌다. - P122

나는 내가 살아온 것이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술집 여자의 밥 한 공기 같은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고 살았다. 내가 사람의 직업이나 계층을 보지 않고 인간성을 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 P128

연애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햇빛이 있는 강변이나 숲 속에서 광합성을 하고 싶었다. 베개처럼 편한 남자의 팔이나 배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누워서 책을 읽고 싶었다. 햇빛은 나뭇잎에 어른거리고 바람이 내 볼을 만지고 지나가는 꿈 말이다. 이룰 수 없으니 판타지인 것이다. - P132

소녀가 된 쪼깐이는 어느 날 닭장에서 훔친 계란 몇 알을 들고 면사무소를 찾아갔다. 면서기에게 ‘풍양 조씨, 쪼깐입니다.‘ 공손하게 말하고 계란을 올려놨다. 꼬마 같은 소녀가 나이배기라는 것에 놀라고 영민함에 놀라고, 면서기는 여러 번 놀랐다. 한문의 뜻을 물어 흡족한 이름을 지었으니 ‘조조간‘이었다. 이를 조에 가릴 간이었으니 팔삭둥이에 어울렸다. 할머니는 ‘남들보다 일찍 사물을 가렸다‘는 영재로 자가 해석했는데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도 쪼깐이는 쪼깐이였다. 혼인하는 날 쪼깐이를 처음 본 할아버지는 신부의 행방을 물었다고 한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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