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은 눈에 안 띄는 소녀 시절을 벗어나면 페티시의 대상으로 활짝 피어난다. 아시아계 여성이 드디어 눈에 띄게 되면 – 드디어 욕망의 대상이 될 때 – 너무 분하게도 자신을 향한 모든 욕망이 변태로 취급됨을 깨닫는다.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방식은 포르노다. 거기서 우리의 음험한 욕망은 몇 가지 범주로 냉정하게 구분되는데 백인이 디폴트이고 다른 모든 인종은 성적 일탈로 취급된다. 소름 돋는 틴더 메시지("아시아 여성과의 첫 경험을 원합니다")를 비롯해 백인 친구들의 미묘한 공격적 언사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여성은 자신에게 끌리는 모든 상대가 변태임을 매일같이 상기당한다. - P233
나는 누가 나를 원하는 상태를 불신하게 되었다. 나의 섹슈얼리티는 곧 병리학적 판단 기준이었다. 아시아인이 아닌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그 사람은 뭔가 비정상이었다. - P234
차라면 어떻게 답했을까? 가톨릭교도이자 한국인으로 자랐으니 억압은 이중으로 작동했다. 공연 영상 속 그는 항상 흰 옷을 입고 있다. 백색은 한국 문화에서 죽음을 뜻하지만, 무속 문화에서는 평화를 뜻한다. 차의 어머니는 차를 임신한 지 8개월째에 가족과 부산으로 피난했다. 그날 앙고라 토끼처럼 커다랗고 하얗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내렸고, 차의 어머니는 드물게 평화로운 순간을 체험했다. 차는 육체를 육감적으로 현시하기보다는 소거하는 일을 더 흥미롭게 여겼다. 그래서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들에게 매료되었다. 그러나 또 달리 보면, 자신을 혁명에 내맡기는 여성들에게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 P234
당시 언론이 차의 강간 살인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플리터먼 – 루이스에게 의견을 묻자 그가 주저 없이 답했다. "그냥 또 다른 아시아 여자로 본 거죠. 만약 그가 어퍼웨스트사이드 출신의 젊은 백인 아티스트였으면 아마 온갖 뉴스에 오르내렸을 거예요." 뉴스 아카이브를 검색해도 『빌리지 보이스』에 실린 짧은 부고 기사 말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때 나도 즉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아시아 여성인 내가 그렇게 말하면 음모론으로 묵살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가설을 대놓고 시험해보기가 주저되었다. 80년대는 뉴욕 범죄율이 높아서 보도되지 않는 살인 사건이 수백 건에 달했다고 쉽게 반박당할 수 있었다. - P235
「순열」에서 버나뎃의 얼굴 사진 – 얼굴 전면, 후면, 눈 감은 모습, 눈 뜬 모습, 간단한 원형 스터드 귀걸이를 낀 귀가 드러나게 머리를 뒤로 넘긴 모습 몇 컷 – 이 9분 동안 나오다가 다음 소재로 바뀐다. 차는 거기에다 자기 얼굴 사진을 살짝 끼워 넣었다. 언니의 이미지가 화면에 1초 동안 반짝하고 등장했다가 다시 여동생의 이미지로 바뀐다. 눈을 한 번 깜박하면 예술가의 초상을 놓치게 된다. 나는 비디오를 되감아 화면을 정지한다. 똑같이 긴 머리, 그러나 좀 더 각진 턱선, 고르지 않은 피부, 약간 더 넓은 코. 그의 눈동자는 생생하고, 기민하고, 전혀 겁에 질려 있지 않다. - P239
피츠버그에서는 새로 인종 통합된 수영장에 흑인이 입장하자 백인 수영객 한 무리가 돌팔매질을 하고 그들을 익사시키려고 했다. 인종 분리의 폐지를 피할 수 없게 되자 백인들은 교외 지역으로 피신하여 각자 개인 수영장을 지었다. - P244
그때 나는 열세 살이었다. 나는 심해어처럼 수영장 깊숙이 잠수해 숨을 더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버텼다. 내가 수면으로 올라오자 "나와!" 하고 소리치는 어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선헤엄을 치며, 역광을 받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눈을 찡그리고 쳐다보았다. 이 수영장은 주민만 쓸 수 있다고 그가 엄한 어조로 말했다. 그곳은 이모가 사는 오렌지 카운티의 아파트 단지였다. 나는 그에게 이모와 어린 사촌 동생이 여기 살고 내가 아이를 봐주고 있다고 말했다. 사촌 동생과 내 동생은 수영장의 얕은 쪽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우리에게 나가라고 했다. 수영장 문을 닫고 나오는데 그의 말소리가 들렸다. "저것들이 이젠 사방에 깔렸네." - P244
영화 및 소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도입 장면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를 차별하면 우리는 너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우리를 못 들어오게 했던 너의 최고급 호텔을 사버리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로 인종주의를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 백인의 세상이 우리를 포섭하는 방식이 아니던가? 우리가 응징을 하든 은혜를 입든 해서 우리를 파괴한 체제 속에서 저들보다 우월해지면 우리는 누구란 말인가? - P245
폭탄이 터져 파인 땅에 사탕을 심으면 그 사탕 껍질에서 자본주의와 기독교가 자라난다. 시인 에밀리 정민 윤은 조국에 대해 이렇게 쓴다. "현재 우리나라 도시들은 묘지처럼 십자가 불빛으로 가득하다." - P246
부채 의식을 지닌 아시아 이민자가 자기들이 이만큼 사는 것을 미국 덕분으로 여긴다면, 그 자녀 세대는 자기들이 먹고사는 것을 고생한 부모 덕분으로 여긴다. 따라서 부채 의식을 지닌 아시아계 미국인은 이상적인 신자유주의적 주체다. 역사의 무게는 오롯이 내가 짊어지는 부담이고 부모님이 잃은 것을 보상받는 일은 내게 달렸다고 받아들인다. 그러기 위해서 불평은 접어두고 직업전선에서 내 능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 P247
부채 의식은 감사하는 마음과는 다르다. 로스 게이는 자기 시에서 무화과의 "벨벳처럼 부드러운 속살"을 맛보거나 녹슨 빨간 펌프로 끌어올린 차가운 물을 마시는 순간처럼 삶의 소소한 순간에 감사한다. 그는 심지어 못생긴 발에도 감사한다. 맨발일 때 못생긴 것이 너무 신경 쓰여 "스무 마리의 꼬마 타조처럼 모래 속에 발가락을" 파묻을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은 현재의 밝은 빛 속으로 팔다리를 마음 편하게 쭉 뻗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게 행복이다. - P248
민족적 다양성과 무관하게 미국인이 아니라 적국인처럼 보이던 미국의 아시아인들이 이 전쟁에 의해 결속되었다"라고 역사학자 케런 이시즈카는 적고 있다. 대릴 J. 마에다 교수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 참전 군인은 동료 병사에게 "국"(gook)이라는 멸칭으로 모욕당하고 비인간화의 대상이 되었으며, 적인 베트남 사람에게는 그들 편으로 오해받는 일이 잦았다. 멜빈 에스쿠에타의 1977년 희곡 『똥통』(honey bucket: 직역하면 꿀통이지만 실은 똥통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옮긴이)을 보면, 늙은 베트남 여인이 미군 병사 앤디의 검은 머리털을 만진다. 여인이 묻는다. "같은–같은 베트남인?" "필리핀 사람이요. 음, 필리핀이요." 앤디가 말한다. "같은–같은 베트남인이네." 그 농부 여인이 자신 있게 되풀이한다. - P253
테레사 학경 차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에 연속적인 굴절을 초래하는 장치를 저지하라"고 적는다. 서구의 가장 파괴적인 유산은 누가 우리의 적인지 규정하는 권력이며, 이 권력에 의해 우리는 남북한이 그랬듯 동족을 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나의 적으로 삼는다. - P257
내가 한국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곳과 그곳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이다. 한때 운동가들이 쓰던 표현으로 바꿔 말하면,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P258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내 조상의 나라를 둘로 쪼개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설픈 중간급 미군 장교 두 명이 1945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놓고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그었고, 결과적으로 이 분단은 우리 할머니의 가족을 비롯해 수백만 가족을 갈라놓았다. 그 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역에서 일본군에게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과 네이팜을 자유의 기치 아래 좁은 우리 땅에 투하했다. - P259
한국전쟁과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기막힌 사실 하나는 당시 한국에서 복무하며 화상 피해자를 치료했던 미국 외과 의사 데이비드 랠프 밀러드가 바로 아시아인의 눈을 서구적으로 만드는 쌍꺼풀 수술을 창시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수술법을 한국 성노동자들에게 시술하여 미군 병사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오늘날 쌍꺼풀 수술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형 수술이다. 내 조상의 나라는 당신이 영구적 전쟁과 초국가적 자본주의를 통해 필리핀, 캄보디아, 온두라스, 멕시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엘살바도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저지른 살상과 자원 착취의 작은 예시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로 미국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배를 불렸다. 그러니까 나한테 은혜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 P259
나는 지금까지 그러한 침묵에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의지해왔으며, 상실의 슬픔이 자칫 단어 몇 개로 축소되지 않도록 늘 여백을 남겼다. 시인 조스 찰스는 "자본 안에서 감지되는 것은 끔찍하다"라고 했다. 나는 내 고통을 소비용으로 쉽게 요약하느니 차라리 여백으로 남겨놓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산문체를 택함으로써, 인종 정체성에 대한 내 감정을 해부하며 그 침묵의 빈자리를 어수선하게 채우는 중이다. 그 감정을 검토할 때면 작가로서 특정 인종 범주에 들어앉아 나를 외부와 차단해버리는 손쉬운 길을 택하고 말았다는 초조함이 어김없이 뒤따른다. - P261
나는 빚진 상태를 통째로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과거에 투쟁한 운동가들에게 빚지고 있다. 나는 학경 차에게 빚지고 있다. 윤리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역사에 책임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는 세상이 자기에게 빚지고 있다고 여기는 부류의 백인 남자가 되느니 차라리 빚을 지겠다. 또한 나는 우리 부모님께 빚지고 있다. 하지만 내 삶을 비밀로 유지하거나 내 것을 챙기는 사유화의 꿈을 뒤쫓는 방식으로 부모님께 진 빚을 갚지는 못하겠다. 엄마는 내게 감사할 것을 거의 매일 요구했다. 엄마는 내가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도록 미국에 온 거라고 거의 매주 말했다. 그러고는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니?" - P266
아시아계 미국인은 무슬림이나 트랜스젠더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다행히 심한 감시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종의 연성 파놉티콘 속에 산다. 이것은 아주 미묘해서 우리는 이것을 내면화하여 자기를 감시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의 조건부 실존을 특징짓는다. 우리가 여기서 4세대째 살았어도 우리의 지위는 여전히 조건부이다. 만족을 모르고 사들이는 물질적 소유물이든 주류 사회에 편입했다는 마음의 평화로서의 소속감이든 빌롱잉(belonging: 이 문장에서 소유물과 소속감이라는 이중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 옮긴이)은 언제나 약속되며, 아슬아슬하게 손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우리가 유순하게 처신하도록 유도한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의식이 해방되려면 우리는 이 조건부 실존으로부터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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