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감으민
멜 떼가 반짝반짝 숨비소리 호이호이

자식들이야 그만허렌 허주만은 그만헤져.
고만 이시민 뭣 헤.
마음이 출렁출렁 허는디.

[…]

이제 여기가 나의 일터다.
여기에선 여기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다
한 아름씩 조물고 싶지만 한숨에 조금씩
그래도 망사리는 몸을 움직인 만큼 차오른다.
돈도 벌고 벗도 만나는 바당이
나는 좋다.

눈을 감으면 곰새기, 거북이 헤엄치는 바다가 선하다고 했다.
바람에 맞춰 물때에 맞춰 평생을 살아온
순옥 할머니는
작년에 물질을 그만두고
고무옷을 나의 할머니에게 주었다
[…]
순옥 할머니는 해녀 식당 가는 길에 해신당에 들른다.

오늘도
물숨 먹지 안 허게 잘 좀 부탁헴수다.

연철을 차도 바닥에 있는 돌을 잡는 게 하나도 쉽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파도가 센 날은 물 밑이 캄캄하고
맑은 날은 물 밑이 투명하다는 걸.

이쪽은 하늘 빛
또 이쪽은 초록빛

일렁이는 물결의 그림자
하얗게 빛나는 멜 떼
길쭉하고 파랗거나
니모를 닮은 물고기
파랗게 평평하게만 보이던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것들.
그리고 물 위에 둥실둥실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

눈을 감고 있는 여름은
잠을 자는 것이 아니구나.
짙어지고 짙어지는
풀 내음을 맡고 있는 거야.
땀을 뻘뻘 흘리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가만히,
그 바람을 맡고 있는 거야.

내가 움직이니까 여름도 움직인다.
초록이 뺨을 때리고
파랑이 출렁인다.

할머니 집엔 에어컨이 없지만
할머니의 북쪽 방엔 하늬바람이 불어온다.
하늬바람이 순하게 불면 물 밑이 고와 우리
할머니 물질하기도 좋고
그냥... 기분도 좋다.

색이 바랜 간판
바래지 않는 상냥함
오픈한지 얼마 안 된 치킨집의
손으로 써 붙인 아귀찜, 김치찌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그러면 나의 마음도
바다 앞의 할머니 마음처럼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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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대든 검열은 역설적으로 역효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 그들이 숨기고자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타키투스는 이렇게 썼다. "검열자들은 당대의 권력으로 후세의 기억마저 지워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들이다. 처벌받은 재능은 오히려 높이 평가되고 가혹하게 처벌한 자는 불명예와 처벌받은 자의 영광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오늘날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는 권력이 금지하는 메시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예술작품이 철거 명령을 받으면 모두가 그것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다. 래퍼가 모욕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다운로드가 급증한다. 책이 금서가 되면 사람들이 서둘러 책을 사려 한다. - P446

타키투스가 언급했듯이, 박해의 가장 강력한 효과는 용기가 없는 사람들을, 그들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데 있었다. 타키투스는 그것 을 "달콤한 관성"이라 불렀다. 즉, 수용적 포기 혹은 갈등이나 우려를 피하기 위해 시행 중인 가치를 위반하지 않으려는 욕망을 말한다. 바로 창작자를 포섭하는 위험한 비겁함 말이다. 타키투스는 반역자조차도 침묵하고 복종하는 시대를 목격했다. 그는 이렇게 쓴다. "우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대단한 인내심을 보여줬다. 만약 우리가 침묵하는 능력만큼이나 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우리는 목소리와 더불어 기억도 잃었을 것이다." 그의 글은 고통스러운 상처를 만지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한다. 어느 시대든 우리는 권력의 검열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 P448

사실 고대의 책은 지금의 책보다 환 영받지 못했다. 고대에는 단어가 구분되지 않고 나열됐으며, 대소문자의 구분도 없었고, 구두점이 엉뚱하게 찍혀 있는, 그야말로 복잡한 정글 같았다. 독자는 글을 의심하고, 돌이켜보고, 길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빽빽한 내용을 헤쳐나가야 했다. 고대인들은 왜 텍스트를 숨 쉬지 못하게 했을까? 우선 그들은 파피루스나 양피지와 같은 값비싼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다. 더불어 초기의 책들은 소리 내어 읽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눈으로 보기엔 기호의 연속이지만 귀로는 그 기호들을 풀어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우월성을 자랑스러워하는 귀족들은 교육에 접근성이 낮은 새로운 독자들이 책의 독점적 영역에 진입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 P450

필사본에 삽입된 삽화도 손으로 그려졌다. 이집트의 『사자의 서』에서 기원한 삽화는 장식적 의도보다는 설명적 의도가 짙었다. 텍스트를 읽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텍스트 이해를 보완하는 시각적 보조 장치로 삽화가 태어났다. 과학적인 내용에는 도표가 활용되었고 내용이 문학적이면 서사적 장면이 삽입되었다. 그리스–라틴 전통에서는 저자를 표시하기 위해 작가의 머리나 흉상이 그려졌다. 그 첫 번째 사례는 바로가 쓴 『이미지들』이다. 이 작품은 유실되었으나 플리니우스가 이 작품의 그리스인과 로마인 700명의 삶에 관해 서술한 바 있다. 기원전 39년경에 출판된 이 야심찬 책은 유명인을 서술하면서 초상화를 삽입했다. 이는 로마인들이 책을 팔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보여준다. - P451

『일리아스』의 첫 구절은 "노래하소서, 여신이여!"이다. 첫 구절을 제목으로 활용하여 이야기를 시작하는 고대의 방식은 마치 의도치 않게 마법에 이끌려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아름답다. 이탈로 칼비노는 자신의 소설 중 하나에서 첫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바로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라는 작품이다. - P454

존 포드는 영화와 소설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쓰인 『수색자』라는 작품을 고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익명의 스페인 배급사는 새로운 영감을 얻어 「사막의 켄타우로스」라는 기막힌 제목으로 작품을 개봉했다. 레일라 게리에로는 책 제목은 기발한 단어의 연속체가 아니라 "이야기의 심장에서 뗄 수 없게 접합"되어 있기에 적확한 제목을 찾아낼 때면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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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은 눈에 안 띄는 소녀 시절을 벗어나면 페티시의 대상으로 활짝 피어난다. 아시아계 여성이 드디어 눈에 띄게 되면 – 드디어 욕망의 대상이 될 때 – 너무 분하게도 자신을 향한 모든 욕망이 변태로 취급됨을 깨닫는다.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방식은 포르노다. 거기서 우리의 음험한 욕망은 몇 가지 범주로 냉정하게 구분되는데 백인이 디폴트이고 다른 모든 인종은 성적 일탈로 취급된다. 소름 돋는 틴더 메시지("아시아 여성과의 첫 경험을 원합니다")를 비롯해 백인 친구들의 미묘한 공격적 언사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여성은 자신에게 끌리는 모든 상대가 변태임을 매일같이 상기당한다. - P233

나는 누가 나를 원하는 상태를 불신하게 되었다. 나의 섹슈얼리티는 곧 병리학적 판단 기준이었다. 아시아인이 아닌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그 사람은 뭔가 비정상이었다. - P234

차라면 어떻게 답했을까? 가톨릭교도이자 한국인으로 자랐으니 억압은 이중으로 작동했다. 공연 영상 속 그는 항상 흰 옷을 입고 있다. 백색은 한국 문화에서 죽음을 뜻하지만, 무속 문화에서는 평화를 뜻한다. 차의 어머니는 차를 임신한 지 8개월째에 가족과 부산으로 피난했다. 그날 앙고라 토끼처럼 커다랗고 하얗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내렸고, 차의 어머니는 드물게 평화로운 순간을 체험했다. 차는 육체를 육감적으로 현시하기보다는 소거하는 일을 더 흥미롭게 여겼다. 그래서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들에게 매료되었다. 그러나 또 달리 보면, 자신을 혁명에 내맡기는 여성들에게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 P234

당시 언론이 차의 강간 살인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플리터먼 – 루이스에게 의견을 묻자 그가 주저 없이 답했다. "그냥 또 다른 아시아 여자로 본 거죠. 만약 그가 어퍼웨스트사이드 출신의 젊은 백인 아티스트였으면 아마 온갖 뉴스에 오르내렸을 거예요."
뉴스 아카이브를 검색해도 『빌리지 보이스』에 실린 짧은 부고 기사 말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때 나도 즉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아시아 여성인 내가 그렇게 말하면 음모론으로 묵살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가설을 대놓고 시험해보기가 주저되었다. 80년대는 뉴욕 범죄율이 높아서 보도되지 않는 살인 사건이 수백 건에 달했다고 쉽게 반박당할 수 있었다. - P235

「순열」에서 버나뎃의 얼굴 사진 – 얼굴 전면, 후면, 눈 감은 모습, 눈 뜬 모습, 간단한 원형 스터드 귀걸이를 낀 귀가 드러나게 머리를 뒤로 넘긴 모습 몇 컷 – 이 9분 동안 나오다가 다음 소재로 바뀐다. 차는 거기에다 자기 얼굴 사진을 살짝 끼워 넣었다. 언니의 이미지가 화면에 1초 동안 반짝하고 등장했다가 다시 여동생의 이미지로 바뀐다. 눈을 한 번 깜박하면 예술가의 초상을 놓치게 된다. 나는 비디오를 되감아 화면을 정지한다. 똑같이 긴 머리, 그러나 좀 더 각진 턱선, 고르지 않은 피부, 약간 더 넓은 코. 그의 눈동자는 생생하고, 기민하고, 전혀 겁에 질려 있지 않다. - P239

피츠버그에서는 새로 인종 통합된 수영장에 흑인이 입장하자 백인 수영객 한 무리가 돌팔매질을 하고 그들을 익사시키려고 했다. 인종 분리의 폐지를 피할 수 없게 되자 백인들은 교외 지역으로 피신하여 각자 개인 수영장을 지었다. - P244

그때 나는 열세 살이었다. 나는 심해어처럼 수영장 깊숙이 잠수해 숨을 더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버텼다. 내가 수면으로 올라오자 "나와!" 하고 소리치는 어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선헤엄을 치며, 역광을 받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눈을 찡그리고 쳐다보았다. 이 수영장은 주민만 쓸 수 있다고 그가 엄한 어조로 말했다. 그곳은 이모가 사는 오렌지 카운티의 아파트 단지였다. 나는 그에게 이모와 어린 사촌 동생이 여기 살고 내가 아이를 봐주고 있다고 말했다. 사촌 동생과 내 동생은 수영장의 얕은 쪽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우리에게 나가라고 했다. 수영장 문을 닫고 나오는데 그의 말소리가 들렸다. "저것들이 이젠 사방에 깔렸네." - P244

영화 및 소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도입 장면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를 차별하면 우리는 너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우리를 못 들어오게 했던 너의 최고급 호텔을 사버리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로 인종주의를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 백인의 세상이 우리를 포섭하는 방식이 아니던가? 우리가 응징을 하든 은혜를 입든 해서 우리를 파괴한 체제 속에서 저들보다 우월해지면 우리는 누구란 말인가? - P245

폭탄이 터져 파인 땅에 사탕을 심으면 그 사탕 껍질에서 자본주의와 기독교가 자라난다. 시인 에밀리 정민 윤은 조국에 대해 이렇게 쓴다. "현재 우리나라 도시들은 묘지처럼 십자가 불빛으로 가득하다." - P246

부채 의식을 지닌 아시아 이민자가 자기들이 이만큼 사는 것을 미국 덕분으로 여긴다면, 그 자녀 세대는 자기들이 먹고사는 것을 고생한 부모 덕분으로 여긴다. 따라서 부채 의식을 지닌 아시아계 미국인은 이상적인 신자유주의적 주체다. 역사의 무게는 오롯이 내가 짊어지는 부담이고 부모님이 잃은 것을 보상받는 일은 내게 달렸다고 받아들인다. 그러기 위해서 불평은 접어두고 직업전선에서 내 능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 P247

부채 의식은 감사하는 마음과는 다르다. 로스 게이는 자기 시에서 무화과의 "벨벳처럼 부드러운 속살"을 맛보거나 녹슨 빨간 펌프로 끌어올린 차가운 물을 마시는 순간처럼 삶의 소소한 순간에 감사한다. 그는 심지어 못생긴 발에도 감사한다. 맨발일 때 못생긴 것이 너무 신경 쓰여 "스무 마리의 꼬마 타조처럼 모래 속에 발가락을" 파묻을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은 현재의 밝은 빛 속으로 팔다리를 마음 편하게 쭉 뻗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게 행복이다. - P248

민족적 다양성과 무관하게 미국인이 아니라 적국인처럼 보이던 미국의 아시아인들이 이 전쟁에 의해 결속되었다"라고 역사학자 케런 이시즈카는 적고 있다. 대릴 J. 마에다 교수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 참전 군인은 동료 병사에게 "국"(gook)이라는 멸칭으로 모욕당하고 비인간화의 대상이 되었으며, 적인 베트남 사람에게는 그들 편으로 오해받는 일이 잦았다. 멜빈 에스쿠에타의 1977년 희곡 『똥통』(honey bucket: 직역하면 꿀통이지만 실은 똥통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옮긴이)을 보면, 늙은 베트남 여인이 미군 병사 앤디의 검은 머리털을 만진다. 여인이 묻는다. "같은–같은 베트남인?"
"필리핀 사람이요. 음, 필리핀이요." 앤디가 말한다.
"같은–같은 베트남인이네." 그 농부 여인이 자신 있게 되풀이한다. - P253

테레사 학경 차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에 연속적인 굴절을 초래하는 장치를 저지하라"고 적는다. 서구의 가장 파괴적인 유산은 누가 우리의 적인지 규정하는 권력이며, 이 권력에 의해 우리는 남북한이 그랬듯 동족을 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나의 적으로 삼는다. - P257

내가 한국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곳과 그곳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이다. 한때 운동가들이 쓰던 표현으로 바꿔 말하면,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P258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내 조상의 나라를 둘로 쪼개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설픈 중간급 미군 장교 두 명이 1945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놓고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그었고, 결과적으로 이 분단은 우리 할머니의 가족을 비롯해 수백만 가족을 갈라놓았다. 그 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역에서 일본군에게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과 네이팜을 자유의 기치 아래 좁은 우리 땅에 투하했다. - P259

한국전쟁과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기막힌 사실 하나는 당시 한국에서 복무하며 화상 피해자를 치료했던 미국 외과 의사 데이비드 랠프 밀러드가 바로 아시아인의 눈을 서구적으로 만드는 쌍꺼풀 수술을 창시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수술법을 한국 성노동자들에게 시술하여 미군 병사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오늘날 쌍꺼풀 수술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형 수술이다. 내 조상의 나라는 당신이 영구적 전쟁과 초국가적 자본주의를 통해 필리핀, 캄보디아, 온두라스, 멕시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엘살바도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저지른 살상과 자원 착취의 작은 예시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로 미국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배를 불렸다. 그러니까 나한테 은혜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 P259

나는 지금까지 그러한 침묵에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의지해왔으며, 상실의 슬픔이 자칫 단어 몇 개로 축소되지 않도록 늘 여백을 남겼다. 시인 조스 찰스는 "자본 안에서 감지되는 것은 끔찍하다"라고 했다. 나는 내 고통을 소비용으로 쉽게 요약하느니 차라리 여백으로 남겨놓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산문체를 택함으로써, 인종 정체성에 대한 내 감정을 해부하며 그 침묵의 빈자리를 어수선하게 채우는 중이다. 그 감정을 검토할 때면 작가로서 특정 인종 범주에 들어앉아 나를 외부와 차단해버리는 손쉬운 길을 택하고 말았다는 초조함이 어김없이 뒤따른다. - P261

나는 빚진 상태를 통째로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과거에 투쟁한 운동가들에게 빚지고 있다. 나는 학경 차에게 빚지고 있다. 윤리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역사에 책임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는 세상이 자기에게 빚지고 있다고 여기는 부류의 백인 남자가 되느니 차라리 빚을 지겠다. 또한 나는 우리 부모님께 빚지고 있다. 하지만 내 삶을 비밀로 유지하거나 내 것을 챙기는 사유화의 꿈을 뒤쫓는 방식으로 부모님께 진 빚을 갚지는 못하겠다. 엄마는 내게 감사할 것을 거의 매일 요구했다. 엄마는 내가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도록 미국에 온 거라고 거의 매주 말했다. 그러고는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니?" - P266

아시아계 미국인은 무슬림이나 트랜스젠더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다행히 심한 감시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종의 연성 파놉티콘 속에 산다. 이것은 아주 미묘해서 우리는 이것을 내면화하여 자기를 감시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의 조건부 실존을 특징짓는다. 우리가 여기서 4세대째 살았어도 우리의 지위는 여전히 조건부이다. 만족을 모르고 사들이는 물질적 소유물이든 주류 사회에 편입했다는 마음의 평화로서의 소속감이든 빌롱잉(belonging: 이 문장에서 소유물과 소속감이라는 이중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 옮긴이)은 언제나 약속되며, 아슬아슬하게 손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우리가 유순하게 처신하도록 유도한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의식이 해방되려면 우리는 이 조건부 실존으로부터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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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도 별로 없는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일에 관해 내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다문화적 합일성이라는 안이한 환상이나 도덕성을 과시하는 살균된 언어에 기대지 않고서 쓸 수 있을까?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상처뿐만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관해서도 쓸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죄책감은 상대에게 용서를 요구하고 따라서 이기적이다. 바꿔 말해서 나는 상대에게 용서를 요구하지 않고 사과할 수 있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 P151

나는 재능과 더불어 옛날식으로 땀을 쏟는 노력이 있으면 그것이 작품의 성공과 비례한다고만 믿었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봤자 작품이 좋은지는 내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좋게 평가해줘야 하는데, 그들이 무엇을 좋게 평가하느냐는 작품 그 자체와는 거의 무관했고, 그보다는 연출, 타이밍, 운, 그리고 내가 미술가로서 어떻게 처신하느냐와 같은 요소들이 합쳐져서 작용했다. 결국 나는 시큰둥하고 따분해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법을 배웠다. 내 코르덴 작업복은 점점 더러워졌고 머리도 안 감았다. 진지한 기법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무심하게 싸구려 신문지 지면에다 사방으로 자유롭게 선을 그어댔더니, 마침내 아테나가 내 드로잉을 인정해주었다. - P174

헬렌의 엄마는 헬렌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정신 병원을 들락거리며 보냈고, 헬렌은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친척 집을 전전했다. 아마도 조울증을 앓았던 듯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헬렌이 겪은 고통의 원인이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애의 기질은 확실히 내게 익숙했다. 만약 내가 피부를 지퍼 열 듯 열어 모든 분노를 표출할 수 있었다면, 헬렌은 나일 수도 있었다. 에린이 내 안의 지성(과 알량한 부러움)을 자극했다면, 헬렌은 내 안의 원초적인 부분을 자극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에 대한 내 기억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때를 하나하나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애를 나쁘게 또는 낭만적으로 묘사하기 쉽다. 그 애를 관념화해버리기 쉽다는 말이다. - P177

첫날 교수가 침묵에 관해 강의했는데 그것이 문학사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박살 냈다. 교수는 어떻게 해서 시형(Poetic form)이라는 회로가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에 의해 충전되는지 논했다. 시라는 것은 완벽하게 형성된 구절보다는 더듬거림, 주저함을 잡아내는 그물이라고 했다. 침묵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심문이라고 했다.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유대계 시인으로서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한 파울 첼란의 경우 "그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일의 불가능성과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단을 찾는 작업 사이에서 방향을 잡아갔다"라고 킴은 설명했다. - P190

나는 자신감 부족에 시달리지 않을 때면 걷잡을 수 없이 거만했다. 우리 셋 모두 그랬다. 우리는 백인 남성의 자신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자신감은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가면서 급속히 위축되었다. 그때 우리는 경력을 쌓는 모든 단계에서 매번 과소평가 당했기 때문에 각자 능력을 되풀이해서 증명해야 했다. 그렇더라도 나는 다른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고전했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우정으로 배양된 창의적 상상력에 꾸준히 충실할 수 있었으며, 그 상상력은 우리의 불만족스러운 의식의 진실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엄밀성과 깊이에 의해 다듬어졌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예술가가 되라고 촉구한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우리였다. - P203

정신분석학에서는 신경을 자극하는 고통은 일단 그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면 신체로부터 분리된다고 본다. 고통을 명명하면, 일어났던 일에서 아픔이 덜어지고, 한계가 그어지고, 그 일을 감당하고 심지어 소멸까지 가능해진다. 그러나 나는 마치 말이 치유법이 아니라 남을 오염하는 독인 양, 자칫 고통을 언급했다가는 정신적 외상을 또 한번 입을 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입히게 되는 문화에서 자랐다. 이런 비밀과 수치의 문화에서 성폭행을 고발할 만큼 대담한 아시아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실 부정은 항상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되어주지만, 그건 국소적 요법에 불과하다. 겪은 일이 꿈에 나오거나 다른 더 치명적이고 만성적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 P213

플라스와는 달리 차의 개인사는 대부분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았다. 학자들이 역사적 참극에 의해 침묵당한 한국 여성들의 삶을 차가 어떻게 재발견했는지에 대해서는 열심히 논하면서 차의 생명을 앗아간 참극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일레인 킴, 노마 알라콘이 엮은 평론집 『자기 쓰기, 민족 쓰기』와 앤 안린 쳉, 티머시 유 같은 학자들의 논문 등 『딕테』와 관련해 중요한 학술 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딕테』는 해당 학자가 몸담은 학술 분야를 장황하게 인증하는 도구로써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차에 관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그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모르면 모를수록, 차도 결국 아무 설명 없이 사라진 또 한 명의 여성으로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 P214

나는 차가 침묵으로 미학을 다듬고, 생략법을 통해 영어가 동포들이 견뎌낸 역사적 참변을 포착하기에 지나치게 빈약하고 간접적인 매체임을 명백히 한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포의 파편화된 시처럼 그 공포의 일부만 표현하고 나머지는 남겨두어, 차마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독자가 상상하도록 청하는 것이 더 진실했다. 어떤 의미에서 앞서 언급한 학자는 차가 구사하는 침묵의 수사법을 미러링하고 있다. 그 학자는 차의 죽음을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밝힘으로써("1982년 11월 5일, 차는 죽임을 당했다") 그 살해 사건이 작가 약력을 통해 전달하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하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고 암시한다. 하지만 차를 무시하는 침묵이 끝나고 차를 존중하는 침묵이 시작되는 경계선은 어디인가? 침묵의 문제점은 침묵하는 이유를 목청 높여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침묵은 쌓이고, 증폭되고, 우리의 의도 밖으로 자체의 생명을 얻어 무관심이나, 회피나, 심지어 수치심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으며 결국 이 침묵은 망각으로 이어진다. - P222

구체성은 좋은 글의 특징이지만, 지나치게 구체적인 묘사가 천박하고 불필요한 수준에 이르고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이 여러 해 힘들여 수고한 보람도 없이 차를 "오리엔탈 제인 도"로 되돌려 놓을 때는 예외이다. 이 글을 쓰며 자꾸 회의하게 된다. 무엇을 넣지? 무엇을 빼지? 그의 시체가 양탄자에 둘둘 말려 있었다는 얘기, 승합차에서 발견된 지푸라기와 그의 머리카락에 묻어 있던 지푸라기가 일치했다는 얘기를 써야 하나? 시체에 난 긁힌 자국이 승강기 바닥에 난 마모 패턴과 일치했다는 얘기는? 이 경우, 세부 사항은 증거이기도 하다. 불확실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 P224

왜 아무도 차의 친족과 좀 더 일찍 접촉하지 않았을까. 왜 아무도 재판 기록을 살펴보지 않았을까. 찾는 일이 어렵지도 않다. 사실 재판 기록은 인터넷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차의 살인 사건을 더 일찍 찾아볼 생각을 안 했지? 나도 서평을 쓸 때 차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살인 앞에 강간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삭제하지 않았나? 강간이라는 단어는 글에 손상을 가하면서 어떤 주장이든 엎어버린다. 강간을 넘어서 분석을 이어가고 이해를 도모할 방도가 없다. 그것을 직시하든지 아니면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의 죽음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때때로 나는 뉴스 기사에서 범죄 피해자가 아시아인이면 일부러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사건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싫기 때문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관하기 싫다. 왜냐하면 분노 속에 방치되기 싫기 때문이다. - P231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차의 진짜 사진은 하나뿐이다. 긴 머리에 검정 터틀넥과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은 사진이다. 버클리 시절에 살던 아파트에서 연출된 포즈로 창밖을 내다보는 옆모습이 담겨 있다. 한쪽 팔꿈치를 창턱에 걸치고 반대편 손은 청바지 엉덩이 근처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의 표정은 문인과 미술가들이 흔히 사진 찍히는 것을 의식할 때 짓는 바로 그 신중한 표정이다. 그의 공식 사진으로 쓰이는 것은 이 사진이지만, 대다수 독자는 차를 생각할 때 버나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심지어 나도 친구가 알려주기 전에는 버나뎃이 차인 줄 알았다. 나는 화가 났다. 아시아인은 늘 다른 아시아인과 혼동되지만, 고인이 다시는 다른 사람과 혼동되지 않도록 확실하게 해두는 것은 우리가 고인에 대해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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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는 말할 수 없이 실망했다. 그녀는 그동안 문학이 (고독과 지위와 여자라는 것이 이유겠지만) 바람처럼 야생적이고, 불처럼 뜨겁고, 번개처럼 빠르며, 무언가 규범을 벗어난, 변덕스럽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보라, 문학은 이제 공작부인들에 대한 이야기나 하는, 나이 든 회색 옷의 신사였던 것이다. - P246

우체국을 나와 기분 전환을 위해 옆 가게로 들어갔는데, 그곳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요즘엔 흔한 곳이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주 낯설어보였다. 책을 파는 곳이었다. 평생 동안 올랜도는 원고만 보아왔다. 스펜서 가 괴팍한 필체로 쓴 거친 갈색 원고지를 손에 들고 본 적도 있었고, 셰익스피어의 원고와 밀턴의 원고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실제로 4절판과 2절판 책들을 상당수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종종 그녀를 찬양하는 소네트가 들어 있거나, 때로는 머리칼이 한 줌 들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밝은 색깔에 똑같은 모양을 하고, 휴지에 찍고 마분지로 포장한 탓에 약해보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곳 책들은 그녀를 놀라게 했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반 크라운에 살 수 있고,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글자가 너무 작아 읽을 수는 없었으나 놀라운 일이었다."작품들"–그녀가 알고 있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 작가들과 그 밖의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긴 서가의 끝에서 끝까지 가득 차 있었다. - P249

그녀는 마셜 앤드 스넬그러브 백화점 앞에 차를 대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늘과 향내가 그녀를 감쌌다. ‘현재‘가 그녀의 몸에서 열탕의 물방울처럼 떨어졌다. 빛이 여름 미풍에 나부끼는 얇은 천처럼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녀는 가방에서 쪽지를 꺼내 묘하게 딱딱한 목소리로 우선 읽기 시작했는데–사내 아이 장화, 목욕 소금, 정어리–마치 그녀가 이 단어들을 색색의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 밑에서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그 단어들이 빛에 닿아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목욕용 소금과 구두는 무디고 뭉툭해졌으며, 정어리는 톱날처럼 깔쭉 깔쭉해졌다. - P264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자아는, 마치 웨이터의 손 위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접시처럼 서로 포개져 있으며, 다른 곳에 애착과 공감을 느끼고 있어, 나름대로의 규칙과 권리와 이름이 무엇이든 그 밖의 것들(이들 중 많은 것들은 이름이 없으니까)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나는 비가 올 때만 올 것이고, 다른 나는 녹색 커튼을 친 방에만 올 것이고, 또 다른 나는 존스 부인이 없을 때만 올 것이고, 포도주 한잔을 약속할 때는 또 다른 내가 등등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여러 자아들과 맺은 상이한 조건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늘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P271

오랜 세월 동안 숲이나 농장, 문 옆에 목을 맞대고 서 있는 갈색 말들, 대장간과 부엌, 그처럼 힘들게 밀과 순무와 풀을 키우는 풀밭과 붓꽃과 백합꽃이 피어 있는 정원에서 울려오는 중얼거리는 노랫소리에 더듬거리며 화답한 대답보다 그 무엇이 더 은밀하고, 더 여유롭고, 연인들의 친교와도 같은 것이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86

"마머 듀크 본스롭 쉘머딘!"이라고 그녀는 참나무 옆에 서서 외쳤다. 아름답고 반짝이는 이름이 하늘에서 강청색의 푸른빛 깃털처럼 떨어졌다. 그녀는 그것이 깊은 대기를 아름답게 가르며, 천천히 떨어지는 화살처럼 빙빙 돌면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늘 그렇듯이 죽은 듯 조용할 때 온다. 파도가 찰랑거리고, 점박이 잎들이 가을 숲 속에서 그녀의 발치 위로 천천히 떨어질 때, 표범이 잠잠할 때, 달이 물 위에 떠 있고, 하늘과 바다 사이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을 때. 그럴 때 그는 왔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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