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도 별로 없는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일에 관해 내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다문화적 합일성이라는 안이한 환상이나 도덕성을 과시하는 살균된 언어에 기대지 않고서 쓸 수 있을까?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상처뿐만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관해서도 쓸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죄책감은 상대에게 용서를 요구하고 따라서 이기적이다. 바꿔 말해서 나는 상대에게 용서를 요구하지 않고 사과할 수 있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 P151

나는 재능과 더불어 옛날식으로 땀을 쏟는 노력이 있으면 그것이 작품의 성공과 비례한다고만 믿었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봤자 작품이 좋은지는 내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좋게 평가해줘야 하는데, 그들이 무엇을 좋게 평가하느냐는 작품 그 자체와는 거의 무관했고, 그보다는 연출, 타이밍, 운, 그리고 내가 미술가로서 어떻게 처신하느냐와 같은 요소들이 합쳐져서 작용했다. 결국 나는 시큰둥하고 따분해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법을 배웠다. 내 코르덴 작업복은 점점 더러워졌고 머리도 안 감았다. 진지한 기법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무심하게 싸구려 신문지 지면에다 사방으로 자유롭게 선을 그어댔더니, 마침내 아테나가 내 드로잉을 인정해주었다. - P174

헬렌의 엄마는 헬렌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정신 병원을 들락거리며 보냈고, 헬렌은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친척 집을 전전했다. 아마도 조울증을 앓았던 듯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헬렌이 겪은 고통의 원인이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애의 기질은 확실히 내게 익숙했다. 만약 내가 피부를 지퍼 열 듯 열어 모든 분노를 표출할 수 있었다면, 헬렌은 나일 수도 있었다. 에린이 내 안의 지성(과 알량한 부러움)을 자극했다면, 헬렌은 내 안의 원초적인 부분을 자극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에 대한 내 기억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때를 하나하나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애를 나쁘게 또는 낭만적으로 묘사하기 쉽다. 그 애를 관념화해버리기 쉽다는 말이다. - P177

첫날 교수가 침묵에 관해 강의했는데 그것이 문학사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박살 냈다. 교수는 어떻게 해서 시형(Poetic form)이라는 회로가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에 의해 충전되는지 논했다. 시라는 것은 완벽하게 형성된 구절보다는 더듬거림, 주저함을 잡아내는 그물이라고 했다. 침묵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심문이라고 했다.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유대계 시인으로서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한 파울 첼란의 경우 "그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일의 불가능성과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단을 찾는 작업 사이에서 방향을 잡아갔다"라고 킴은 설명했다. - P190

나는 자신감 부족에 시달리지 않을 때면 걷잡을 수 없이 거만했다. 우리 셋 모두 그랬다. 우리는 백인 남성의 자신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자신감은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가면서 급속히 위축되었다. 그때 우리는 경력을 쌓는 모든 단계에서 매번 과소평가 당했기 때문에 각자 능력을 되풀이해서 증명해야 했다. 그렇더라도 나는 다른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고전했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우정으로 배양된 창의적 상상력에 꾸준히 충실할 수 있었으며, 그 상상력은 우리의 불만족스러운 의식의 진실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엄밀성과 깊이에 의해 다듬어졌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예술가가 되라고 촉구한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우리였다. - P203

정신분석학에서는 신경을 자극하는 고통은 일단 그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면 신체로부터 분리된다고 본다. 고통을 명명하면, 일어났던 일에서 아픔이 덜어지고, 한계가 그어지고, 그 일을 감당하고 심지어 소멸까지 가능해진다. 그러나 나는 마치 말이 치유법이 아니라 남을 오염하는 독인 양, 자칫 고통을 언급했다가는 정신적 외상을 또 한번 입을 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입히게 되는 문화에서 자랐다. 이런 비밀과 수치의 문화에서 성폭행을 고발할 만큼 대담한 아시아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실 부정은 항상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되어주지만, 그건 국소적 요법에 불과하다. 겪은 일이 꿈에 나오거나 다른 더 치명적이고 만성적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 P213

플라스와는 달리 차의 개인사는 대부분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았다. 학자들이 역사적 참극에 의해 침묵당한 한국 여성들의 삶을 차가 어떻게 재발견했는지에 대해서는 열심히 논하면서 차의 생명을 앗아간 참극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일레인 킴, 노마 알라콘이 엮은 평론집 『자기 쓰기, 민족 쓰기』와 앤 안린 쳉, 티머시 유 같은 학자들의 논문 등 『딕테』와 관련해 중요한 학술 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딕테』는 해당 학자가 몸담은 학술 분야를 장황하게 인증하는 도구로써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차에 관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그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모르면 모를수록, 차도 결국 아무 설명 없이 사라진 또 한 명의 여성으로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 P214

나는 차가 침묵으로 미학을 다듬고, 생략법을 통해 영어가 동포들이 견뎌낸 역사적 참변을 포착하기에 지나치게 빈약하고 간접적인 매체임을 명백히 한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포의 파편화된 시처럼 그 공포의 일부만 표현하고 나머지는 남겨두어, 차마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독자가 상상하도록 청하는 것이 더 진실했다. 어떤 의미에서 앞서 언급한 학자는 차가 구사하는 침묵의 수사법을 미러링하고 있다. 그 학자는 차의 죽음을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밝힘으로써("1982년 11월 5일, 차는 죽임을 당했다") 그 살해 사건이 작가 약력을 통해 전달하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하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고 암시한다. 하지만 차를 무시하는 침묵이 끝나고 차를 존중하는 침묵이 시작되는 경계선은 어디인가? 침묵의 문제점은 침묵하는 이유를 목청 높여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침묵은 쌓이고, 증폭되고, 우리의 의도 밖으로 자체의 생명을 얻어 무관심이나, 회피나, 심지어 수치심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으며 결국 이 침묵은 망각으로 이어진다. - P222

구체성은 좋은 글의 특징이지만, 지나치게 구체적인 묘사가 천박하고 불필요한 수준에 이르고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이 여러 해 힘들여 수고한 보람도 없이 차를 "오리엔탈 제인 도"로 되돌려 놓을 때는 예외이다. 이 글을 쓰며 자꾸 회의하게 된다. 무엇을 넣지? 무엇을 빼지? 그의 시체가 양탄자에 둘둘 말려 있었다는 얘기, 승합차에서 발견된 지푸라기와 그의 머리카락에 묻어 있던 지푸라기가 일치했다는 얘기를 써야 하나? 시체에 난 긁힌 자국이 승강기 바닥에 난 마모 패턴과 일치했다는 얘기는? 이 경우, 세부 사항은 증거이기도 하다. 불확실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 P224

왜 아무도 차의 친족과 좀 더 일찍 접촉하지 않았을까. 왜 아무도 재판 기록을 살펴보지 않았을까. 찾는 일이 어렵지도 않다. 사실 재판 기록은 인터넷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차의 살인 사건을 더 일찍 찾아볼 생각을 안 했지? 나도 서평을 쓸 때 차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살인 앞에 강간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삭제하지 않았나? 강간이라는 단어는 글에 손상을 가하면서 어떤 주장이든 엎어버린다. 강간을 넘어서 분석을 이어가고 이해를 도모할 방도가 없다. 그것을 직시하든지 아니면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의 죽음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때때로 나는 뉴스 기사에서 범죄 피해자가 아시아인이면 일부러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사건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싫기 때문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관하기 싫다. 왜냐하면 분노 속에 방치되기 싫기 때문이다. - P231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차의 진짜 사진은 하나뿐이다. 긴 머리에 검정 터틀넥과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은 사진이다. 버클리 시절에 살던 아파트에서 연출된 포즈로 창밖을 내다보는 옆모습이 담겨 있다. 한쪽 팔꿈치를 창턱에 걸치고 반대편 손은 청바지 엉덩이 근처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의 표정은 문인과 미술가들이 흔히 사진 찍히는 것을 의식할 때 짓는 바로 그 신중한 표정이다. 그의 공식 사진으로 쓰이는 것은 이 사진이지만, 대다수 독자는 차를 생각할 때 버나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심지어 나도 친구가 알려주기 전에는 버나뎃이 차인 줄 알았다. 나는 화가 났다. 아시아인은 늘 다른 아시아인과 혼동되지만, 고인이 다시는 다른 사람과 혼동되지 않도록 확실하게 해두는 것은 우리가 고인에 대해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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