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대든 검열은 역설적으로 역효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 그들이 숨기고자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타키투스는 이렇게 썼다. "검열자들은 당대의 권력으로 후세의 기억마저 지워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들이다. 처벌받은 재능은 오히려 높이 평가되고 가혹하게 처벌한 자는 불명예와 처벌받은 자의 영광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오늘날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는 권력이 금지하는 메시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예술작품이 철거 명령을 받으면 모두가 그것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다. 래퍼가 모욕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다운로드가 급증한다. 책이 금서가 되면 사람들이 서둘러 책을 사려 한다. - P446

타키투스가 언급했듯이, 박해의 가장 강력한 효과는 용기가 없는 사람들을, 그들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데 있었다. 타키투스는 그것 을 "달콤한 관성"이라 불렀다. 즉, 수용적 포기 혹은 갈등이나 우려를 피하기 위해 시행 중인 가치를 위반하지 않으려는 욕망을 말한다. 바로 창작자를 포섭하는 위험한 비겁함 말이다. 타키투스는 반역자조차도 침묵하고 복종하는 시대를 목격했다. 그는 이렇게 쓴다. "우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대단한 인내심을 보여줬다. 만약 우리가 침묵하는 능력만큼이나 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우리는 목소리와 더불어 기억도 잃었을 것이다." 그의 글은 고통스러운 상처를 만지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한다. 어느 시대든 우리는 권력의 검열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 P448

사실 고대의 책은 지금의 책보다 환 영받지 못했다. 고대에는 단어가 구분되지 않고 나열됐으며, 대소문자의 구분도 없었고, 구두점이 엉뚱하게 찍혀 있는, 그야말로 복잡한 정글 같았다. 독자는 글을 의심하고, 돌이켜보고, 길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빽빽한 내용을 헤쳐나가야 했다. 고대인들은 왜 텍스트를 숨 쉬지 못하게 했을까? 우선 그들은 파피루스나 양피지와 같은 값비싼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다. 더불어 초기의 책들은 소리 내어 읽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눈으로 보기엔 기호의 연속이지만 귀로는 그 기호들을 풀어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우월성을 자랑스러워하는 귀족들은 교육에 접근성이 낮은 새로운 독자들이 책의 독점적 영역에 진입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 P450

필사본에 삽입된 삽화도 손으로 그려졌다. 이집트의 『사자의 서』에서 기원한 삽화는 장식적 의도보다는 설명적 의도가 짙었다. 텍스트를 읽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텍스트 이해를 보완하는 시각적 보조 장치로 삽화가 태어났다. 과학적인 내용에는 도표가 활용되었고 내용이 문학적이면 서사적 장면이 삽입되었다. 그리스–라틴 전통에서는 저자를 표시하기 위해 작가의 머리나 흉상이 그려졌다. 그 첫 번째 사례는 바로가 쓴 『이미지들』이다. 이 작품은 유실되었으나 플리니우스가 이 작품의 그리스인과 로마인 700명의 삶에 관해 서술한 바 있다. 기원전 39년경에 출판된 이 야심찬 책은 유명인을 서술하면서 초상화를 삽입했다. 이는 로마인들이 책을 팔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보여준다. - P451

『일리아스』의 첫 구절은 "노래하소서, 여신이여!"이다. 첫 구절을 제목으로 활용하여 이야기를 시작하는 고대의 방식은 마치 의도치 않게 마법에 이끌려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아름답다. 이탈로 칼비노는 자신의 소설 중 하나에서 첫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바로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라는 작품이다. - P454

존 포드는 영화와 소설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쓰인 『수색자』라는 작품을 고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익명의 스페인 배급사는 새로운 영감을 얻어 「사막의 켄타우로스」라는 기막힌 제목으로 작품을 개봉했다. 레일라 게리에로는 책 제목은 기발한 단어의 연속체가 아니라 "이야기의 심장에서 뗄 수 없게 접합"되어 있기에 적확한 제목을 찾아낼 때면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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