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는 말할 수 없이 실망했다. 그녀는 그동안 문학이 (고독과 지위와 여자라는 것이 이유겠지만) 바람처럼 야생적이고, 불처럼 뜨겁고, 번개처럼 빠르며, 무언가 규범을 벗어난, 변덕스럽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보라, 문학은 이제 공작부인들에 대한 이야기나 하는, 나이 든 회색 옷의 신사였던 것이다. - P246
우체국을 나와 기분 전환을 위해 옆 가게로 들어갔는데, 그곳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요즘엔 흔한 곳이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주 낯설어보였다. 책을 파는 곳이었다. 평생 동안 올랜도는 원고만 보아왔다. 스펜서 가 괴팍한 필체로 쓴 거친 갈색 원고지를 손에 들고 본 적도 있었고, 셰익스피어의 원고와 밀턴의 원고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실제로 4절판과 2절판 책들을 상당수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종종 그녀를 찬양하는 소네트가 들어 있거나, 때로는 머리칼이 한 줌 들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밝은 색깔에 똑같은 모양을 하고, 휴지에 찍고 마분지로 포장한 탓에 약해보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곳 책들은 그녀를 놀라게 했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반 크라운에 살 수 있고,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글자가 너무 작아 읽을 수는 없었으나 놀라운 일이었다."작품들"–그녀가 알고 있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 작가들과 그 밖의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긴 서가의 끝에서 끝까지 가득 차 있었다. - P249
그녀는 마셜 앤드 스넬그러브 백화점 앞에 차를 대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늘과 향내가 그녀를 감쌌다. ‘현재‘가 그녀의 몸에서 열탕의 물방울처럼 떨어졌다. 빛이 여름 미풍에 나부끼는 얇은 천처럼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녀는 가방에서 쪽지를 꺼내 묘하게 딱딱한 목소리로 우선 읽기 시작했는데–사내 아이 장화, 목욕 소금, 정어리–마치 그녀가 이 단어들을 색색의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 밑에서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그 단어들이 빛에 닿아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목욕용 소금과 구두는 무디고 뭉툭해졌으며, 정어리는 톱날처럼 깔쭉 깔쭉해졌다. - P264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자아는, 마치 웨이터의 손 위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접시처럼 서로 포개져 있으며, 다른 곳에 애착과 공감을 느끼고 있어, 나름대로의 규칙과 권리와 이름이 무엇이든 그 밖의 것들(이들 중 많은 것들은 이름이 없으니까)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나는 비가 올 때만 올 것이고, 다른 나는 녹색 커튼을 친 방에만 올 것이고, 또 다른 나는 존스 부인이 없을 때만 올 것이고, 포도주 한잔을 약속할 때는 또 다른 내가 등등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여러 자아들과 맺은 상이한 조건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늘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P271
오랜 세월 동안 숲이나 농장, 문 옆에 목을 맞대고 서 있는 갈색 말들, 대장간과 부엌, 그처럼 힘들게 밀과 순무와 풀을 키우는 풀밭과 붓꽃과 백합꽃이 피어 있는 정원에서 울려오는 중얼거리는 노랫소리에 더듬거리며 화답한 대답보다 그 무엇이 더 은밀하고, 더 여유롭고, 연인들의 친교와도 같은 것이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86
"마머 듀크 본스롭 쉘머딘!"이라고 그녀는 참나무 옆에 서서 외쳤다. 아름답고 반짝이는 이름이 하늘에서 강청색의 푸른빛 깃털처럼 떨어졌다. 그녀는 그것이 깊은 대기를 아름답게 가르며, 천천히 떨어지는 화살처럼 빙빙 돌면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늘 그렇듯이 죽은 듯 조용할 때 온다. 파도가 찰랑거리고, 점박이 잎들이 가을 숲 속에서 그녀의 발치 위로 천천히 떨어질 때, 표범이 잠잠할 때, 달이 물 위에 떠 있고, 하늘과 바다 사이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을 때. 그럴 때 그는 왔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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