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꼴레뜨, 잠깐 니체 식의 내 굉장한 웃음소리를 들어보고 싶지 않소? - P39

난 내가 좀 평범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좀 천재적이었으면 해. - P40

에··· 우리 지역의 있는 그대로의 것들을 통해 관광객을 유치할 때가 드디어 왔다고 봅니다.
그 ‘있는 그대로의 것들‘ 이란 우리 지방의 행정력 부재, 실질적인 무능 그리고 극도의 무기력입니다. - P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리치고 싶은데 난 울고 있다.
물어버리고 싶은데 핥고만 있다.
찢어버리고 싶은데 쓰다듬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걷고 싶은데 난 언제나 마구 달리고 있다… - P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겹다. 그만해라. 전시회를 본 동기는 그런 문자를 보내왔다.
또다른 동기는 변태라는 두 글자만 보냈다. 그나마 지도교수는 정중한 편이었다. 조금 더 가려보세요, 김군. 다 드러내는 건 결코 아름답지 않아.
동기들은 내 그림을 아무도 사지 않을 거라 했다. 전업 작가로 살겠다는 내 의지를 비웃었다. 그 비웃음에서 악의를 압도하는 혐오감이 느껴졌다. 손님 없는 밤길을 달리다보면, 그들의 말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럴 때는 헤어날 수 없을 만큼 쓸쓸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 P301

"몇 시간 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요. 몸과 정신이 완전히 분리되는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타인처럼 내 몸을 볼 수 있죠. 그 기분이 반복되면,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몸이 아닌 영혼이 보여요."
"나는 어떤가요?"
"당신은......."
당신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기괴해요."
나는 일부러 소리 내어 웃었다. 당신은 웃는 나를 말없이 지켜 보았다. 상처받았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그 마음조차 들킨 것 같았다. - P304

"눈이 계속 올까요?"
당신이 물었다. 내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이번에도 당신은 기다리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당신의 질문은 혼잣 말이어서 굳이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청한동은요. 눈이 쌓이면 차가 꼼짝할 수 없어요. 운전기사를 둔 사람들도 죄다 걸어야 하죠. 누가 그랬어요. 눈은 비랑 다르다고. 모두에게 공평하다고요." - P308

나는 처음부터 당신이 좋았다. 당신은 분명 미인에 속했다. 그러나 모든 미인이 괜찮은 그림의 모델이 되는 건 아니었다. 모델에게는 결핍이 필요했다. 그것이 그림에 자연스러움을 더했다. 당신은 목이 굽고 양쪽 어깨 비대칭이 심했다. 지치고 피곤한 상태를 자세가 그대로 보여주었다. 물론 그런 모습 때문에 당신에게 매력을 느낀 건 아니었다. 내가 주목한 건 당신의 눈, 피곤을 견디려고 부릅뜬 두 눈이었다. 당신의 동공은 부엉이와 닮았다. 노랗고 투명했다. 크로키를 하는 동안, 나는 당신의 두 눈에 야만성을 담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이 배반하길 바랐다. 자신을 지치게 하는 일과 그 일에 품은 열망을. - P309

"언덕길에 가로등이 별로 없거든요. 혼자 올라가기 무섭네요."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당신에게 묻고 싶어졌다. 나는 무섭지 않나요? 사람을 해칠 만큼 힘이 세 보이지 않아요? 왜소한 몸과 짧은 팔다리로는 어떤 위협도 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왜죠? - P314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다니까요. 말할 필요도 없어요. 같이 밥 먹을 의무도 없고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돼요. 책 읽고, 영화 보고."
그렇게만 하면 돈을 준다고 했다. 처음에는 의심스럽고 눈치도 보였지만, 이제는 편하게 쉬다 오는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돈은 월급처럼 받는다고 했다. 매달 말일이 되면 당신은 오만원권 칠 십 장이 담긴 흰색 봉투를 받았다. 노부인은 그 돈을 작품 대여비라고 불렀다.
나는 불쾌한 기분 탓에 얼굴이 굳었다. 그 일이 편하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무방비 상태로 타인의 시선을 받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 P315

"세상엔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게 참 많아요." 당신 말이 맞았다. 나는 그제야 당신이 언덕을 오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도시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청한동 언덕에는 존재하는 것들을 당신은 열망했다. 어쩌면 그 열망이 당신을 지치게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상기된 당신의 얼굴을 외면했다. 종이컵을 손으로 꽉 쥐었더니, 남은 커피가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신은 결코 제 발로 노부인의 집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었다. - P3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는 광범위하게 편협한 사람입니다. - P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 봐도 빤했다. 큰돈 한번 만져보니 욕심이 나는 거겠지. 이 바닥에는 경제적 예속을 빌미로 아이를 극악하게 굴리고 후에는 더 큰 돈을 요구하고 갈취하는 부모들이 더러 있었다. 내 어머니도 그랬다. 시장서 두부값 깎는 것도 죄스러워하던 그 여린 분이 돈맛을 보자 어찌나 그악스러워지던지, 종국에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이틀간 잠도 못 자고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손님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밤에는 신령님들과 영통할 수 없다고 거짓말하자 어머니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호통치셨다.
얘, 신령들은 시간 정해서 온다니? - P265

친구는 있을까. 있어도 일상을 공유하거나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낄낄대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가 얻은 생은 여느 평범한 이들의 삶과는 다르니까. 저 나이에 나는 평범한 삶을 살고 범상한 몸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했는데,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저주처럼 여겼는데
저애도 비슷할까.
신애기는 음료에 기포를 만들며 오후를 보낸다. 평범하게. 나도 몰래 그것을 따라해본다. 볼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보글보글 보글보글. - P270

네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던 문화재. 그거 나 하게 해준다고. 할멈이 넌 너무 늙었다네. 늙은 게 야심만 가득해 흉하다고.
신애기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는다. 큭큭큭큭, 큭큭큭.
손가락 사이로 기분 나쁜 웃음이 새어나온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린다. 종아리가 풀리고 손이 저려온다. 모르겠다.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일렁인다. 그 불길에 저애에게 잠시 가졌던 연민이며 동질감, 할멈을 향한 애증과 경외심도 모조리 타버린다. - P274

말씀해보세요. 말씀 좀 해보세요!
중언부언하며 악을 지르는데도 할멈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계속되는 침묵에 분이 가시지 않아 할멈상을 들어올리다, 흠칫한다. 한 번도 인지한 적 없었는데, 너무 가볍다. 원래 이랬던가. 이게…… 원래 이렇게 가벼웠나. 할멈상을 벽에 던진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할멈상이 바닥에 나뒹군다. 텅, 텅, 텅……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온다. 큭, 큭큭 큭큭큭. 큭큭큭. 큭큭큭. 멈춰보려 해도 딸꾹질처럼 웃음이 계속해 터진다.
큭큭큭, 큭큭큭큭. - P275

구름도 다 사라진 땡볕 아래서 판수도, 악사들도 점점 지쳐가는 와중에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는 이는 오직 나뿐이다. 피범벅에 몰골도 흉하겠으나 시야가 환하고 입가엔 미소까지 드리워진다. 신령 근처에라도 가닿은 것처럼 몸이 가뿐하고 신명이 난다. 장단이 빨라질수록 나는 고조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삼십 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 P280

룸 미러를 통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승객의 하관과 어깨선 정도였다. 얼굴 전체가 보이는 때도 있기는 했다. 만취해서 좌석에 몸을 푹 파묻은 사람을 태우면 그랬다. 술에 취한 사람은 얼굴에 드러나는 사연이 모호했다. 얼굴만 봐서는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술에 취하면 진심이 드러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대개는 진심 속에 숨어 있던 야만성이 드러나곤 했다. - P3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