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면서 많은 동물이 얼어 죽었다. 눈이 녹자 죽은 동물들의 사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야생은 때때로 이렇게 흉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그들의 몸은 대지로 스며들고, 땅을 비옥하게 한다. 그리고 찬란하게 아름다운 봄꽃을 피운다. - P210

"록마우스는 강에서 살았대요.
비버들이 어기적거리며 다가오자 로즈가 말했다.
"그런데 여러분이 댐을 쌓는 바람에 이곳에 갇히게 되었대요. 그것 때문에 계속 화가 나 있었던 거예요."
"그렇다고 내 아들을 해칠 권리가 있는 건 아니잖소!" 비버 씨가 소리쳤다.
"당연하죠!" 비버 부인이 소리쳤다.
"저라도 기분 나빴을 거예요. 집에서 멀리 떨어지는 건 정말 싫잖아요. 록마우스 씨, 왜 진작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패들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록마우스는 낙담한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말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어‘라는 의미였다. - P213

"당연하죠! 다들 엄마를 좋아해요! 엄마는 내가 본 로봇 가운데 가장 멋진 로봇이에요. 정말이에요. 전 로봇을 많이 봤잖아요." 아들이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브라이트빌은 겨울을 나는 동안 수많은 로봇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로즈와 달랐다. 그들은 로즈처럼 동물의 언어를 배우거나, 혹독한 추위로부터 동물을 구해내거나, 어미 잃은 새끼 기러기를 입양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브라이트빌은 동물을 닮은 엄마의 말과 몸짓을 보면서, 엄마가 얼마나 특별한 로봇인지 새삼 깨달았다. - P228

로즈는 일어나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팔다리가 없는 로봇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로즈는 그저 말만 할 뿐이었다.
"제발 저를 비활성화하지 말아 주세요." 레코 1은 로즈의 말을 무시했다. 커다란 손이 로즈의 얼굴을 지나 뒤통수에 있는 무언가를 눌렀다.
딸깍. - P264

안개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파도가 바위를 때렸다.
갈매기들이 그 위를 빙빙 돌았다.
아니, 갈매기가 아니었다. 독수리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은색으로 반짝이는 뭔가를 발톱으로 꽉 부여잡은 채 땅으로 내려왔다. 레코 3의 소총이 바닷가에 철커덕 떨어졌다. 기러기와 해달들이 재빨리 소총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레코 1을 향해 소총을 겨누었다.
사냥꾼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동물들이 소총을 갖고 있는 거지? 총 쏘는 법을 알고나 있는 걸까?
동물들은 알고 있었다.
기러기들은 방아쇠를 당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 P2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은 짧아요. 내가 다시 봄을 맞는다면 운이 좋은 것이겠죠. 날 가엾게 여길 필요는 없어요. 난 나름대로 괜찮은 삶을 살았으니까. 하지만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어요.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을 돕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겠다고요. 내가 평생 한 일이라고는 굴을 판 것밖에 없어요. 꽤나 멋진 굴도 팠죠.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이들에게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심지어 이런 겨울에는 나한테조차 쓸모가 없죠. 하지만 비버들은 이런 문제를 멋지게 해결했죠. 그들은 아름다운 댐을 만들었어요. 그 덕분에 커다란 호수가 생겼고, 많은 동물의 삶이 윤택해졌죠. 그런 일을 한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일 거예요." - P204

"맞아요! 로즈, 당신은 오두막을 지어 섬에 사는 동물의 절반 이상을 살렸어요. 우리가 당신을 괴물이라고 불렀는데도 말이죠. 내가 죽기 전에 이 빚은 꼭 갚겠어요." 딕다운이 말했다.
"당신의 우정이면 충분해요." 로즈가 말했다.
"오, 제발 이러지 말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분명 있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당신의 우정으로 충분해요. 친구는 서로 돕는 거니까요. 저는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제 몸은 생각만큼 강하지 않답니다. 전 영원히 살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어요. 그건 친구들의 도움 없이는 힘들 거예요."
동물들은 로즈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힘겹게 싸우는지 생각했다. 야생의 삶은 모두에게 가혹했다. 그 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동물은 없었다. 하지만 로즈가 그 힘겨움을 조금 덜어주었다. 그리고 동물들도 할 수 있다면 로즈를 도울 것이다. - P204

늙은 거북이 크렉이 아주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모두가 귀를 열고 크렉의 말을 들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겨울은 더 추워지고, 여름은 더 더워지고, 폭풍은 더 거세졌다는 거요."
"예전보다 바다가 더 높아졌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그런데 이해가 안 돼요 그 많은 물은 다 어디서 왔을까요?" 칫챗이 말했다.
"맞아. 해수면이 더 높아졌지. 우리 할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이곳은 섬이 아니었다는구먼. 평지로 둘러싸인 산이었지. 그런데 땅이 흔들리고, 바닷물이 흘러들면서 서서히 섬으로 바뀌었다는군. 많은 동물이 홍수를 피해 산으로 도망쳤지.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동물이 모여든 탓에, 섬은 먹이가 충분하지 않았을 걸세. 전쟁과 질병, 기아가 섬을 휩쓸고 지나간 후 천천히 섬에 균형이 찾아왔고, 지금까지 우리는 그 균형을 지키며 살고 있는 거지." 크렉이 말했다. - P205

"전 제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전 그 말에 동의하지 않겠어요. 당신은 집짓기를 잘 하니까!"
"로즈는 정원도 잘 가꿔요."
"로즈는 브라이트빌을 돌보는 게 목적일 거예요."
"아마도 제 목적은 다른 친구들을 돕는 건가 봐요." - P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즈는 걷기 시작했다. 다리가 짝짝이라 기우뚱기우뚱 걸었다. 평평한 곳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숲으로 들어 가자 문제가 분명해졌다. 잘린 부분이 너무 매끄러워 자꾸 미끄러졌다. 로즈는 왼발로 깡충깡충 뛰었다. 그러다 나무 기둥에 쿵 부딪혔다. 몇 번 더 뛰었고 그녀는 덤불 위로 넘어졌다.
"발을 부러뜨려서 정말 죄송해요." 토른이 로즈를 부축하며 말했다.
"널 용서할게"
로즈가 말했다.
로즈가 용서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듣기에는 참 좋았다. 그 말을 들은 토른은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 P160

브라이트빌은 단추를 다시 누르기로 했다. 그런데 엄마가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지? 깨어났는데 완전히 다른 존재라면? 브라이트빌은 단추를 누르는 것도, 누르지 않는 것도 겁났다.
[…]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뒤,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로봇은 동물의 언어로 말했다.
"안녕? 우리 아들.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거니? 내가 느끼기엔 아주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
"몇 분 동안이었지만 제게는 영원처럼 느껴졌어요." 브라이트빌은 엄마를 얼싸안으며 말했다. - P174

"요즘 이상하게 날고 싶은 기분이 들어요. 호수나 섬 주변 말고, 더 긴 비행을 하고 싶어요. 여행을 하고 싶어요."
"그게 네 본능이란다. 모든 동물은 본능이 있어. 그건 네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는 거란다." 로즈가 말했다.
"엄마도 본능이 있어요?" 브라이트빌이 물었다.
"나도 본능이 있어. 내가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지."
"내 본능은 겨울에 남쪽으로 이동하라고 말하고 있어요. 단지 엄마가 우리랑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내가 없는 동안 엄마가 어떻게 지낼지 걱정돼요." 브라이트빌이 말했다.
"걱정 말거라. 고작 겨울 동안이잖니." 로즈가 대답했다. - P179

"넌 이제 어린 기러기가 아니란다. 아주 멋진 청년 기러기가 되어서 자랑스럽구나." 로즈가 말했다.
브라이트빌은 엄마의 어깨로 훌쩍 날아올랐다.
"엄마, 고마워요." - P183

청년 기러기는 눈물을 훔쳤다.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겠죠?"
"그래,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겠구나. 금방 봄이 올 거야.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고."
"보고 싶을 거예요. 엄마." 브라이트빌이 엄마를 꼭 껴안았다.
"나도 네가 보고 싶을 거야." 로즈도 아들을 꼭 껴안았다. - P184

둥지에 묵는 대부분의 동물은 불을 처음 보았다. 그들은 두려움과 희망이 뒤섞인 눈으로 불을 바라보았다. 불의 파괴적인 힘과 몸을 데워 주는 치유의 힘을 동시에 느꼈다. 따뜻함을 더 느끼려고 가까이 다가가다가, 두려워서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 P1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즈는 브라이트빌을 어깨에 올려놓고 둥지로 향했다.
"내가 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엄마." 브라이트빌이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엄마랑······ 엄마랑 같이 날고 싶어요." 어린 기러기는 금세 쌔근쌔근 규칙적인 숨소리를 냈다. - P128

날씨 좋은 저녁에는 모두 바깥에 앉아서, 깜빡거리면서 호수 주변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구경했다. 등을 대고 누워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저기 크고 동그란 게 달이야 그리고 저기 작은 불빛은 별이라고 해 한번은 별이 몇 개나 있나 세어 봤어 그런데 나는 열 까지밖에 못 세거든 그래서 열까지 세고 또 세었어 별이 얼마나 많은지 잘 모르지만 열 개보다 많다는 건 알아." 칫챗이 말했다.
"저기 보이는 불빛들이 모두 별은 아니란다. 몇몇은 행성이야." 로즈가 말했다.
"행성이 뭐예요?" 칫챗이 물었다.
"행성은 붙박이별 주위를 도는 별 무리로, 천체의 일부란다."
"천체가 뭐예요?"
"외계에 존재하는 물체들이지."
"외계가 뭐예요?"
"외계란 우리 행성의 대기 바깥에 있는 우주 공간이야."
"우주는 뭔데요?"
"우주는 세상 모든 것과 모든 장소를 포함하는 곳이야." - P133

"그럼 이제 엄마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걸까요?" 브라이트빌이 물었다.
"네가 나를 뭐라고 부르든, 나는 여전히 네 엄마 역할을 할 거야."
"그럼 계속 엄마라고 부를게요."
"그럼 나도 널 계속 아들이라고 부를게."
"우리는 이상한 가족이에요. 그렇지만 이런 식도 좋은 것 같아요."
브라이트빌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로즈가 말했다. - P130

엄마가 로봇이라면 분명 힘든 점이 있을 것이다. 브라이트빌에게 가장 힘든 것은 로즈를 둘러싼 미스터리였다. 엄마는 어디에서 왔을까? 로봇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엄마가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어 줄까? - P139

"엄마도 단추가 있네요! 그동안 전혀 몰랐어요."
"나도 몰랐어." 로즈가 말했다.
어린 기러기가 깔깔거렸다.
"엄마도 스스로에 관해 배울 게 있네요." - P147

"나는 내 단추를 누르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 같아. 네가 한 번 해 볼래?" 로즈가 말했다.
"누르면 어떻게 되는데요?"
"아마도 난 작동을 멈추겠지. 하지만 네가 단추를 한 번 더 누르면 다시 작동할 거야."
"네? ‘아마도‘라고요? 만약에 엄마 생각이 틀리면요? 엄마가 깨어났는데 다른 로봇이 되어 있으면요? 아예 깨어나지 않으면 어떡해요? 엄마가 작동을 멈추는 거 싫어요!" 로즈는 머리를 원래대로 돌렸다. 브라이트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로즈는 브라이트빌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렇게 걱정되면 하지 않아도 된단다. 겁먹게 만들어서 미안하구나. 괜찮니?" - P148

"브라이트빌, 그거 아니? 우리가 너희 엄마를 처음 봤을 때, 네 엄마는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단다. 어떤 푹신한 것에 싸여서 말이야."
브라이트빌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때 네 엄마가 얼마나 작아 보였는지 믿기 힘들 거야. 상자 안에 한껏 접혀 있었지······. 브라이트빌이 코를 훌쩍거렸다.
"우리는 네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우리가 다가가자 갑자기 살아나서는 번쩍이는 괴물처럼 상자를 뚫고 나왔단다.
브라이트빌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로즈가 브라이트빌을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괜찮니?"
"오늘 로봇에 관해서는 충분히 배운 것 같아요." 브라이트빌이 엄마에게 속삭였다. - P1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속 비틀거리며 걷던 로즈는 평평하고 탁 트인, 솔잎이 폭신하게 뒤덮인 땅을 발견했다. 안전한 장소 같았다. 안전이야말로 로봇이 정말 원하던 것이었다. 로즈는 그곳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울퉁불퉁 불규칙한 자연의 형상과 어울리지 않는 완벽한 선과 각을 가진 존재가 숲에 온 것이다. - P27

갑자기 로즈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로즈는 초점을 다시 맞춰 계속 관찰했다. 산기슭의 작은 언덕 위 하늘에서 독수리들이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고, 멀리 떨어진 바위에서는 도마뱀들이 몸을 따뜻하게 덥히고 있었다. 딸기 덤불에는 오소리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무스 한 마리가 개울을 건너고 있었다. 참새들은 열을 맞추어 나무 위를 날아다녔다. 섬은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제 섬에 새로운 종류의 생명이 나타났다. 아주 낯설고 인공적인 생명이. - P34

로즈는 자기가 어떻게 섬에 오게 되었는지 전혀 모른다. 자신이 공장에 서 만들어진 것도, 창고에 쌓여 있다가 화물선에 실려 바다를 건넜다는 것도 모른다. 폭풍에 배가 난파되었다는 것도, 섬에 닿기 전까지 며칠씩이나 나무 상자에 실려 파도에 떠밀려 다녔다는 것도 모른다. 호기심 많은 해달이 우연히 자기를 작동시켰다는 것도 모른다. 로즈는 섬을 둘러볼 때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로즈에게 섬은 고향이었다. - P35

대벌레는 몸이 가늘고 길었다. 색도 모양도 진짜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두 눈과 가느다란 더듬이가 있었다. 대벌레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전혀 움직이지도 않았다. 로봇만큼 움직임이 없었다. 둘은 잠시 그렇게 앉아서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고마워요."
로즈는 대벌레를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당신은 아주 중요한 걸 가르쳐 주었어요. 위장술이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 말이에요. 분명 제 생존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 P51

로즈는 꽃들이 태양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로즈는 들쥐들이 수풀 사이를 기어 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로즈는 솔향이 배어 있는 촉촉한 아침 공기를 맡았다.
로즈는 몸에 바른 진흙 속에서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일주일이 지나자 식물 다발은 사라졌다. 그리고 바닷가에 새로운 해초 더미가 생겼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해초 더미는 사라지고 산에 새로운 딸기나무 덤불이 생겼다. 그다음에는 강 기슭에 새로운 통나무가, 그다음에는 숲에 새로운 바위가 생겼다. - P54

구름이 하늘을 스치고 지나갔다.
거미가 정교하게 거미줄을 짰다.
딸기 열매가 배고픈 입들을 유혹했다.
여우가 토끼를 쫓았다.
버섯이 낙엽 더미에서 돋아났다.
거북이가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이끼가 나무뿌리 위에 퍼졌다.
독수리가 죽은 동물 앞에 등을 구부리고 앉았다.
파도가 해안선에 부딪혔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고, 애벌레는 나비가 되었다.
위장한 로봇은 이 모든 것을 관찰했다. - P55

로즈는 박새가 아침마다 같은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고, 같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오후마다 종달새가 같은 바위를 스쳐 날아가고, 같은 노래를 부른다는 것도 알아챘다. 저녁마다 까치 두 마리가 같은 언덕에서 서로를 향해 지저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몇 주 동안 관찰한 뒤에 로즈는 어떤 새가 노래하는지, 언제 노래를 하는지, 왜 노래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로봇은 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로즈는 고슴도치와 도롱뇽과 딱정벌레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온갖 동물이 하나의 공통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표현 방식은 서로 달랐다. - P56

"안녕하세요? 저는 로즈예요." 동물들은 깜짝 놀랐다.
"괴물이야!"
올빼미 스우퍼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전 괴물이 아니에요. 전 로봇이에요." 로즈가 말했다.
참새 떼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우리를 내버려 둬! 어떤 끔찍한 곳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족제비 다트가 수풀 속에 몸을 숨기며 말했다.
"제 고향은 여기예요. 전 평생을 이 섬에서 보냈어요." 로즈가 말했다.
"그럼 왜 더 일찍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거야?" 높은 나뭇가지에 앉은 올빼미가 소리쳤다.
"그동안은 동물의 언어를 몰랐거든요."
로즈가 말했다. - P61

"그래서 우리한테 바라는 게 뭐야?" 여우 핑크가 으르렁댔다.
"저는 많은 동물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관찰 했어요. 당신들의 생존 기술을 제게 가르쳐 주세요." 로즈가 말했다.
"난 너를 도와주지 않을 거야. 넌 정말······ 자연스럽지 않아!" 높은 곳에서 올빼미가 소리쳤다.
"저 괴물은 우리를 모조리 잡아먹고 말 거예요!" 마멋 다운이 소리를 지르며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저는 아무도 잡아먹지 않아요. 전 먹을 필요가 없거든요." 로즈가 말했다. - P62

"로즈, 제발! 빨리 좀 뽑아! 진짜 아프단 말이야!"
로즈는 재빨리 두 번째 가시를 뽑았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핑크는 눈을 질끈 감고,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옆에 가시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핑크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고마워, 로즈, 네게 신세졌어" 핑크는 살짝 웃어 보이고는 절뚝거리며 떠났다. - P67

"아까 당신이 한 행동 말이에요. 정말 굉장했어요. 눈을 돌릴 수가 없었어요." 로즈가 말했다.
"굉장했다고? 정말?"
기묘한 생물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혓바닥 내밀 때 무리를 좀 하긴 했지."
"진짜 죽은 줄 알았어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아까 정말로 죽었던 거예요?"
"물론 아니지! 죽었다가 살아나는 건 아무도 할 수 없어. 난 그냥 연기한 것뿐이야!"
"이해가 안 돼요."
"간단해. 내가 그럴 듯하게 죽은 척을 하면, 그 늙은 오소리가 더럽다고 가 버릴 걸 알고 있었거든. 실제로 그렇게 됐잖아.
우리 주머니쥐는 모두 타고난 연기자야." - P75

"그런데 왜 연기를 하는 거예요?" 로즈가 물었다.
"재미있잖아! 그리고 그게 살아남는 데 도움이 돼. 너도 봤잖아. 혹시 알아? 네 생존에도 도움이 될지." 로봇의 뇌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를 냈다. 연기가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니! 주머니쥐가 죽은 척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로봇도 살아 있는 척 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덜 기계적이고, 더 자연스럽게. 로즈가 친근하게 행동한다면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친구들은 로즈가 더 오래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 - P78

"네, 새끼 기러기가 살아남길 바라요. 하지만 어떻게 엄마인 척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로즈가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새끼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 쉴 곳을 마련해 주면 돼요.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거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되, 지나친 응석은 받아 주면 안 돼요. 걷고, 말하고, 헤엄치고, 날고, 다른 기러기들과 어울리고, 스스로를 돌보도록 가르치면 그게 바로 엄마인 거죠." 로즈는 그저 새끼 기러기를 내려다보았다. - P87

"안녕하세요? 저는 로즈예요. 그리고 이 아이는 브라이트빌이에요. 겁내지 마세요. 저는 아무도 헤치지 않아요." 로즈는 나무를 내밀었다.
"선물로 나무를 가지고 왔어요. 아름다운 댐을 짓는 데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난 괴물한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는 강한 신념을······."
비버 씨가 말하는데, 비버 부인이 끼어들었다.
"바보 같은 소리 말아요. 저렇게 훌륭한 자작나무를 버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나는 확고하다오." 비버 씨가 말했다.
비버 부인이 남편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무례하게 굴거나, 고집을 피울 때 말려 달라고 했던 거 기억하죠? 지금 당신이 딱 그래요!" - P92

"엄마, 안아 줘요!"
로즈는 브라이트빌을 안아 주었다. 로봇의 몸은 딱딱한 기계였지만, 그만큼 튼튼하고 안전했다. 새끼 기러기는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꼈다. 브라이트빌은 눈을 깜빡이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엄마의 품 안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 P1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