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동물을 사랑했다. 할아버지는 개집 위에다 커다란 팻말을 못으로 박아 두었는데, 그 팻말에는 ‘인간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동물을 더 사랑하게 된다.’ 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단지 동물을 존중할 뿐이었다.) - P10

(할아버지는 자신만의 인간 삼위일체를 갖고 있었으며 이를 신성한 삼위일체인 양 존경했는데, 그것은 바로 만초니, 베르디,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생애 단 한 번 외국에 나가 보았는데, 바로 파리였다. 파리의 리옹 역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택시를 타고 앵발리드 기념관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폴레옹의 무덤에 헌화를 한 다음 곧장 택시를 타고 파리를 완전히 무시한 채 리옹 역으로 돌아갔다.) - P13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할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밀라노에서 일하고 있는 ‘그 녀석‘을 만나러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아가씨가 문을 열어 주었고, 할아버지는 아들이 나타나자마자 물었다.
"저 여자는 누구냐?" 아들은 대답했다.
"제 아내예요"
그리고 모든 것이 거기에서 끝났다. 아들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부모가 자기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했으니, 자신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결혼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녀석은 자기 어머니에게는 미리 결혼 소식을 알려 주 었지만, 자신과 어머니 사이의 비밀로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결혼 소식을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바로 수줍음 때문이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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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 짐을 꾸려 혼자 기차에 올랐다.
매 순간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사람들을 구경했다. 검표원 아저씨가 나를 ‘꼬마 청년‘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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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아침, 처음으로 마주한 내리막길에서 바람을 가로질렀다.
눈가의 눈물 방울이 귀 뒤로 흘렀다.

앞으로 펼쳐질 길고 긴 여름날을 생각했다.
너무나 아득해서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을 여름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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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내리자마자 나는 박수갈채가 잦아들기도 전에 휴게실로, 코린토스 양식의 대리석 기둥과 나뭇가지 모양의 크리스털 촛대, 황금테두리 거울, 벌꿀색 벽지에 자주색 양탄자가 깔린 장대한 방으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기둥들 중 하나에 기대어 도도하고 거만해 보이려 애쓰면서 호엔펠스 가족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마침내 그들을 보았을 때는 달아나고 싶어졌다. 유대인 아이의 본능적인 직감으로 볼 때, 채 몇 분도 못 가서 내 심장에 들어박히게 될 단검은 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통은 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무슨 이유로 친구를 잃는 위험을 무릅써야 할까? 무슨 이유로 의심이 잠으로 달래지게 놓아두는 대신 증거를 요구해야 할까? - P111

이거 봐, 콘라딘, 너도 내가 옳다는 거 분명히 알잖아. 네가 나를 너희 집 안으로 불러들인 건 부모님이 출타했을 때뿐이었다는 걸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너 정말 내가 어젯밤 일들을 상상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고 싶어.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너도 알다시피…… 나는 네가 오기 전까지는 외톨이였고 네가 나를 버리면 더더욱 외톨이가 되겠지만 그렇더라도 네가 나를 부끄러워해서 네 부모님께 인사시키지 못한다는 생각은 견딜 수가 없어.
나를 이해해 줘. 나는 네 부모님을 사교적으로 만나 뵙는 거에 대해서는 신경 안 써. 내가 너희 집에 침입자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딱 한 번, 딱 5분만 만나 뵙게 해달라는 것 말고는 그리고 또 나는 모욕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외톨이가 되겠어. 나는 세상의 모든 호엔펠스집안 사람들 못지않게 가치 있는 사람이야.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누구도 나를 모욕하게 놓아두지 않을 거야. 그 어떤 왕도, 왕자도, 백작도. - P115

너는 누구에게나 네 이상적인 우정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너무 심하게 세워! 너는 단순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해. 내 소중한 한스, 그러니까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도록 애써 봐. 그리고 우리 계속 친구이기로 해. - P120

천천히 콘라딘이 철 대문을, 그의 세상으로부터 나를 갈라놓는 문을 닫았다. 앞으로 내가 그 경계선을 다시는 넘지 못할 것이고 호엔펠스 가문의 저택은 영원히 내게 닫히리라는 것을 나도 알았고 그도 알았다. 그가 천천히 현관문까지 걸어 올라가 버튼을 누르자 문이 불가사의하게 뒤로 미끄러지듯 열렸다. 콘라딘이 돌아서서 내게 손을 흔들었지만 나는 같이 손을 흔들어 주지 않았다. 나의 손이 풀어 달라고 울부짖는 죄수의 손처럼 쇠창살을꽉 그러쥐었다. 부리와 발톱이 낫처럼 생긴 독수리들이 호엔펠스 가문의 방패 문장을 높이 치켜들고 의기양양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 P121

상황이 다시는 전과 같아지지 않을 것이며 이제 우리의 우정과 어린 시절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 둘 모두 알고 있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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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청이 2017년 7월 추진한 1차 주민토론회는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물리적 저지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9월에 열린 2차 주민토론회에서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어떤 모욕도 감수하겠지만, 아이들 학교만은 포기할 수 없다‘라고 호소하며 지역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끓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자,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요? 국가인권 위원회가 2017년 9월 17일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결정문 내용을 참조할 수 있을 듯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특수학교가 지역사회 안전이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은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유독 특수학교만은 안 된다고 반대하는 것은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학령기 장애아동이 누려야 하는 기본권의 동등한 향유를 막는 행위"라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행위는 "헌법 제11조, <교육기본법> 제4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평등 정신에 위배"된다고 밝혔습니다. 즉 지역 발전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가 민주적 토론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개인과 집단의 ‘이익‘이 국민의 기본적 ‘인권 보다 우선시 될 수 는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지요. - P173

그러고 보니 시설을 의미하는 영어 ‘institution‘은 또한 제도를 의미하기도 하네요. 장애인들 이 시설에서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제도의 문제이지 그들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 P187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 때문에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으면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 P194

최근 주목을 받는 난민의 사유는 ‘기후 난민‘ 혹은 ‘환경 난민‘ 이에요. 온난화로 인한 비정상적 기후변화, 빠르게 진행 중인 사하라 남쪽 지역의 사막화 등으로 강제 이주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엄청나게 늘고 있어요. 기후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수가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가파르게 증가하면 머지않아 난민 협약의 난민 사유에 ‘환경‘이 추가되지 않을까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P196

그렇다면 혹시 우리는 그들(난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요? 낯선 음식을 처음 먹고, 낯선 도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느끼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유사한 감정은 아닐까요? 하지만 종교를 악용하는 이들로 인해 공 포감이 생겼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그 종교인들을 차별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나 인종 등의 요소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차별할 경우 또 다른 인권 문제를 야기하니까요.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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