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은 내향적이며 자아를 깊이 성찰한다. 사람들은 제비꽃이 겸손해서 숨는다고 말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제비꽃은 자신의 비밀을 포착하기 위해 숨어 있다. 그 거의—없는—향기는 억제된 영광인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찾아봐 달라고 요구한다. 제비꽃은 향기로 소리치지 않는다. 제비꽃은 말할 수 없는 가벼운 것들을 말한다. - P93

겁이 난다. 하지만 내 심장은 뛰고 있다. 이해를 허락지 않는 사랑이 심장을 더 빨리 뛰게 한다. 단 하나 확실한 건 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당신은 나라는 존재의 한 형태이고 나는 당신이라는 존재의 한 형태라는 것: 그것들이 내가 지닌 가능성의 한계다. - P108

나는 죽을 것 같은 기쁨 속에 있다. 달콤한 탈진 속에서 나는 당신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다림이 있다. 기다림이란 미래에 대한 탐욕을 느끼는 일이다. 언젠가 당신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는 척하며 하루하루 즐거운 사랑 속에서 산다. 하지만 갈망을 안은 채 기억을 되새기는 건 다시 한번 작별을 고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 P108

나는 생각을 넘어 하나의 상태에 도달한다. 그걸 말들로 쪼개는 일은 거부한다—표현할 수 없고 표현하고 싶지도 않은 것은 결국 내 비밀들 가운데 가장 은밀한 것이 된다. 나는 내가 생각을 쓰지 않는 순간들을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건 순간적인 상태다. 도달하기 어려운, 완전히 은밀한, 생각을 빚어내는 말들을 더 이상 쓰지 않는 상태. 말들을 쓴다는 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일이 아닐까? 해롭고 절대적인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 일이 아닐까?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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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게 되리란 걸 믿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나는 차가운 신선함 속에서 보글거리고 있으니까. 매 순간이 있기에 내 삶은 아주 길 것이다. 나는 태어나기 직전인데 태어날 수는 없는 상태인 듯한 느낌 속에 있다.

나는 세상에서 고동치는 심장이다. - P56

나는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시간의 폭음을 듣는다. 그것은 소리 없이 형성되고 있는 세상의 소리다. 내가 그걸 들을 수 있다면, 그건 내가 시간이 형성되기 전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있다‘, 그것이 세상이다.
시간 없는 세상. 이제 내 의식은 가벼워졌다. 그것은 공기다. 공기는 장소도 시간도 갖지 않는다. 공기는 모든 것이 존재할 비非장소이다. 내가 쓰고 있는 건 공기의 음악이다. 세상의 형성. 그것은 앞으로 천천히 다가올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이미 그랬던 대로 될 것이다. 미래는 앞에, 뒤에, 그리고 양옆에 있다. 미래는 늘 존재했던 것이고 늘 존재할 것이다. 시간이 없어진다고 해도? 내가 당신에게 쓰고 있는 건 독해가 아니라 존재하기를 위한 것이다. - P58

문득, 살기 위해 질서가 필요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야 할 패턴은 없으며, 패턴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태어난다. - P59

나는 여전히 ‘그‘나 ‘그녀‘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선보이는 건 ‘저것‘이다. 저것은 보편적인 법칙이다. 탄생과 죽음. 탄생. 죽음. 탄생, 그리고—세상의 호흡 같은 것. - P59

나는 내 알려지지 않은 부분 속으로 돌아갈 것이고, 다시 태어나면 ‘그‘ 혹은 ‘그녀‘에 대해 말할 것이다. 일단은, 지금 나를 지탱하는 건 ‘저것‘이며 그건 곧 ‘그것‘이다. 자신으로부터 하나의 존재를 창조해 내는 건 매우 중대한 일이다. 나는 자신을 창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일을 한다. 우리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 완전한 어둠 속을 걷기. 그건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은 산고와도 같으니: 어떤 것이 태어난다. 그것 자체가. 그건 마른 돌멩이처럼 단단하다. 하지만 그 중심부는 부드럽고 살아 있는, 필멸하는, 위태로운 그것이다. 기초 물질의 생명. - P72

지금은 하나의 순간이다. 당신은 그걸 느끼는가? 나는 느낀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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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로운가? 무언가가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다. 아니면 내가 그걸 붙잡고 있나? 또 이런 것도 있다: 나는 모든 것과 결합해 있기에 완전히 풀려날 수 없다. 게다가 한 인간은 곧 모든 것이다. 지니고 다닐 수가 없으므로 지니고 다니기에 무겁지 않은 것: 그것이 모든 것이다. - P51

나는 처음으로 사물들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하다. 내가 사물들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건 자신을 넘어서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다. 나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다. 나는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며 나의 거짓 힘을 불신한다. - P52

나는 태어날 때 자유로워진다. 그것이 내 비극의 원천이다. - P54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순수하다. 당신이 이 고독을 느끼기를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나 자신은 창조의 안개 속에 있다. 명료한 어둠, 빛나는 어리석음. - P55

거울이 등장하기 전, 인간은 호수에 비친 그림자 말고는 자기 얼굴을 알지 못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모두가 자신이 가진 얼굴에 책임을 지게 된다. 지금 나는 내 얼굴을 볼 것이다. 맨얼굴. 세상에 내 얼굴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 없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충격을 받는다.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결코는 불가능을 나타낸다. 나는 결코를 좋아한다. 그 반대인 언제나도 좋다. 결코와 언제나 사이에서 이들을 매우 간접적이면서도 내밀하게 이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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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말은 피상적으로만 들으라. 그러면 의미의 결여에서 하나의 의미가 탄생할 것이다. 내게서 높고 밝은 삶이 불가사의하게 탄생하는 것처럼. 말들의 무성한 밀림은 내 느낌과 삶을 빽빽하게 뒤덮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내 바깥에 남아 있는 내 것으로 변형 시켜 버린다. 자연은 뒤덮는다: 자연은 나를 완전히 옭아맨다. 그것은 섹스처럼 살아 있다. 바로 그것: 살아 있다. 나 역시 격렬하게 살아 있다—그리고 방금 사슴을 먹어 치운 호랑이처럼 주둥이를 핥는다. - P37

나는 거칠게 살아 있다. 죽음이 말한다, 자신은 떠난다고. 나를 데려간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나는 죽음과 함께 가야 하기에 헐떡거리며 몸서리친다. 나는 죽음이다. 죽음은 내 존재 안에 자리 잡는다—당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죽음은 관능적이다. 나는 죽은 사람처럼 키 큰 풀들을 헤치며 푸르스름한 풀 빛 속을 걷는다: 나는 금으로 빚어진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이며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건 수북이 쌓인 뼈들뿐이다. 나는 느낌들로 이루어진 지층 맨 밑바닥에 살고 있다: 나는 가까스로 살아 있다. - P38

하지만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두 글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있다. 있다.

나는 그 핵심에 있다.

나는 아직 있다.

나는 살아 있는 부드러운 중심에 있다.

아직. - P41

나는 숨을 쉰다.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벌거벗은 굴은 어떻게 숨을 쉴까? 굴이 숨을 쉰다고 해도 나는 그걸 볼 수 없다. 내가 볼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 걸까? 나를 가장 감동케 하는 건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이 내가 볼 수 없는데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진한 타액으로 가득한 어느 완전한 세계를 발 앞에 두게 된다. 진실은 어딘가에 있다: 하지만 생각해 봐야 소용없다. 나는 그걸 발견하지 못하고, 그런데도 나는 그것으로 산다. - P48

내가 어렸을 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 아직 답을 얻지 못한 그 질문들이 지금까지도 슬픔 속에서 메아리친다: 세상은 스스로 만들어졌을까? 그렇다면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어떤 장소에서? 그게 신의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졌다면—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지금 내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을까? 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그 때문에 괴로워한다. - P49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조금 겁이 난다. 자유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 자체는 독단적이지 않으며 제멋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거기에 엮여 있지 않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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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큰 깃발이 무게도 적지 않을 텐데, 저리도 끊임없이 펄럭이지?

바람이 부니까 그렇지. 인연이란 게 바로 그런 거야.

하지만 바람은 본래 무정한 것인데, 왜 괜히 저 깃발을 저렇게 흔들어 댈까? 말해봐, 어디?

바람은 형체가 없는 것. 흔들리는 건 깃발일 뿐.

깃발도 무정한 것 아닌가. 근데 왜 흔들리지?
바람이나 깃발이나 다 무정한 것이나 인연이 닿아 그런 것이지.

인연은 정이 있고, 정이 있어 움직이지만, 바람과 깃발은 모두 무정한 것인데 어째 움직일까? - P204

옷만 지니고 법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난 본래 빈 손으로 왔어. 그 가사도 몸 밖의 물건이니, 시비만 일으킬 뿐이지. 의발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선종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야. 내가 떠난 후 사악한 법들이 시끄러이 굴 것이지만, 자연 누군가가 나와서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 뜻을 세우고 내 법을 밝힐 것이야. - P230

지금 대사님이 계시니 법통이 있으나, 대사님이 돌아가시면 뒷사람들은 어찌 부처님을 뵈오리까?

뒷사람 일은 뒷사람 일이고, 너희들 눈앞의 일이나 잘 보살피라! 내 할 말은 다 하였다. 더 할 말은 없으나 한 마디만 남기겠으니 잘 들어라. 자신에게서 참을 구하지 않고 밖에서 부처를 찾고 있으나, 다니며 찾는 것은 다 큰 바보로다. 다들 이 말을 잘 새겨 조심하라! (단정히 앉아 눈을 감는다) - P230

(노래한다)
붓을 쥔 자는 문필을 희롱하고
도살하는 자는 칼을 휘두르고,
일 없는 사람은 차나 마셔,
병이 있어야 약을 먹지.

(앞으로 나온다. 노래한다)
떡 만드는 자는 밀가루 치대고,
똥 푸는 자는 서둘러 퍼야지. - P246

(노래한다)
오늘 밤 그리고 내일 아침,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오늘 밤 그리고 내일 아침,
그렇게 아름답다
여전히 그렇게 아름답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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