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말은 피상적으로만 들으라. 그러면 의미의 결여에서 하나의 의미가 탄생할 것이다. 내게서 높고 밝은 삶이 불가사의하게 탄생하는 것처럼. 말들의 무성한 밀림은 내 느낌과 삶을 빽빽하게 뒤덮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내 바깥에 남아 있는 내 것으로 변형 시켜 버린다. 자연은 뒤덮는다: 자연은 나를 완전히 옭아맨다. 그것은 섹스처럼 살아 있다. 바로 그것: 살아 있다. 나 역시 격렬하게 살아 있다—그리고 방금 사슴을 먹어 치운 호랑이처럼 주둥이를 핥는다. - P37

나는 거칠게 살아 있다. 죽음이 말한다, 자신은 떠난다고. 나를 데려간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나는 죽음과 함께 가야 하기에 헐떡거리며 몸서리친다. 나는 죽음이다. 죽음은 내 존재 안에 자리 잡는다—당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죽음은 관능적이다. 나는 죽은 사람처럼 키 큰 풀들을 헤치며 푸르스름한 풀 빛 속을 걷는다: 나는 금으로 빚어진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이며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건 수북이 쌓인 뼈들뿐이다. 나는 느낌들로 이루어진 지층 맨 밑바닥에 살고 있다: 나는 가까스로 살아 있다. - P38

하지만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두 글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있다. 있다.

나는 그 핵심에 있다.

나는 아직 있다.

나는 살아 있는 부드러운 중심에 있다.

아직. - P41

나는 숨을 쉰다.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벌거벗은 굴은 어떻게 숨을 쉴까? 굴이 숨을 쉰다고 해도 나는 그걸 볼 수 없다. 내가 볼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 걸까? 나를 가장 감동케 하는 건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이 내가 볼 수 없는데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진한 타액으로 가득한 어느 완전한 세계를 발 앞에 두게 된다. 진실은 어딘가에 있다: 하지만 생각해 봐야 소용없다. 나는 그걸 발견하지 못하고, 그런데도 나는 그것으로 산다. - P48

내가 어렸을 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 아직 답을 얻지 못한 그 질문들이 지금까지도 슬픔 속에서 메아리친다: 세상은 스스로 만들어졌을까? 그렇다면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어떤 장소에서? 그게 신의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졌다면—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지금 내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을까? 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그 때문에 괴로워한다. - P49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조금 겁이 난다. 자유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 자체는 독단적이지 않으며 제멋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거기에 엮여 있지 않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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