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해변에는 몸뚱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폼페이의 사진. 화산재 속에 엎드린 모습. 그녀의 팬티는 모래 속에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토르소의 일부처럼 모래로 단단하게 싸여 있었다. 부서진 조각상, 몸통에서 멀리 떨어져 나간 인간의 사타구니, 영혼이 통째로 빠져나간 채 버려져 낯선 이들의 발길에 차이는 둔부. - P76

진정한 파쇄공, 팬티를 도난당한 여자, 자기 손으로 자기 가게를 살해한 여자라면 바닷속으로 정결하게 발을 들이는 방법을 알 것이다. 수평의 터널. 꼿꼿이 서서 들어가기만 해도 바다의 인력 속으로 빠질 수 있다. 밤바다는 얼마나 단순한가. 오직 모래만이 예측 불가능하다. 거기엔 백 개의 굴과 천 개의 매장지가 있다. - P76

로사가 말했다. "잃어버린 게 있어서 찾고 있었어요."
"딱한 루블린. 잃어버린 게 뭐요?"
"제 삶요."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 갑자기 창피하지 않게 느껴졌다. 사라진 속옷 때문에, 그 앞에 서자 자존감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녀는 퍼스키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얼마나 사소한 삶의 연속이었을까. 단추들, 그 자신이 단추 하나보다 더 의미 있지는 않았으리라. 그가 그녀를, 지금은 닳고 닳아 구식이 되어 플로리다로 굴러온 그 자신처럼, 또 하나의 단추로 취급한다는 건 분명했다. 마이애미 전체가 쓸모 없는 단추들을 위한 상자였다! - P87

"건드리지 말아요!"
"왜 그래요? 살아 있는 것이라도 들었나? 폭탄? 토끼? 으깨지는 건가? 아니, 알았다. 숙녀용 모자로군!" 로사는 그 상자를 껴안았다. 자신이 바보 같고 하찮게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경박했다, 심지어 존재의 가장 깊은 속성마저도. 누군가 그녀의 생명 장기들을 잘라내 그녀에게 들고 있으라고 준 것 같았다. - P90

퍼스키는 골똘히 생각했다. "당신은 모든 것이 그 이전과 같기를 원하는 게로군."
"아니, 아니, 아니에요." 로사가 반박했다. "그건 불가능해요. 저는 스텔라의 고양이 이야기를 믿지 않아요. 그 이전은 꿈이에요. 그 이후는 농담이고. 오직 진행 중인 것만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걸 삶이라 부르는 건 거짓말이에요." -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는 무릎으로 침대에 올라가 시트 주름 사이로 쓰러졌다. 꿈을 꾸는 꼭두각시 인형. 어두워진 도시들, 묘비들, 색 바랜 화환들, 회색 들판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 죄 없는 사람들을 몰아대는 짐승들, 입을 크게 벌린 채 두 팔을 뻗은 여자들, 그녀의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이런 무자비한 장면들이 몇 시간 동안 지나가고 나니 늦은 오후였다. 이때쯤 그녀는 누가 그녀의 속옷을 슬쩍해 자기 주머니에 넣었든 간에, 그 사람은 온갖 비열한 행동을 하고도 남을 범죄자라고 확신했다. 굴욕. 수치심. 스텔라의 포르노그래피! - P71

거리에 나가자 네온색 황혼이 벌써 반짝이고 있었다. 열기와 느릿느릿 떠도는 먼지의 깔깔한 혼합물. 자동차들이 커다란 꿀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전조등을 켜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하늘의 낮은 곳에서는 낯선 두 램프가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붉은 해, 핏발 선 달걀노른자만큼 둥글고 찬란한 해. 실크처럼 하얀 달, 산맥들로 회색의 줄무늬를 그려 보이는 달. 이 둘이 기다란 도로 양쪽 끝에 동시에 걸려 있었다. 하루 종일 불타오르던 열기는 움직이는 추처럼 보도에서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로사의 콧구멍과 폐는 신중했다. 타는 당밀 같은 공기. 그녀의 속옷은 도로 위에 없었다. - P72

마이애미에서는 밤이 되면 아무도 실내에 머무르지 않는다. 거리는 방랑자와 구경꾼으로 꽉 막힌다. 베두인 유목민처럼 다들 정해진 길 없이 무언가를 찾아다닌다. 바보 같은 플로리다의 비가 흩뿌리지만, 너무 가볍고 아주 잠깐이고 변덕스러워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네온색 알파벳들, 디자인들, 그림들이 갑작스레 내리는 가는 비를 뚫고 기세 좋게 번쩍인다. 발코니가 있는 어느 호텔 위로 번개가 재빨리 날름거린다. 로사는 걸었다. 여기저기서 이디시어가 들려왔다. 이음쇠로 연결된 노부부의 캐러밴이 시원한 해변을 향해 구불구불 내려갔다. 모래는 쉬는 법이 없었다. 늘 파도에 휘저어졌고, 늘 사람에게 치인다. 네온 빛을 발하는 낮은 지평선 아래, 밤이면 담요 밑에서 짝짓기가 이루어졌다. - P73

그녀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만약 누군가 팬티 한 장을 숨기려 한다면, 처분하는 게 아니라 숨기려 한다면, 그 사람은 그걸 어디에 둘까? 모래 속이다. 돌돌 말아 파묻을 것이다. 그녀는 팬티 가랑이에서 느껴지는 모래의 무게는 어느 만큼일까 생각했다. 젖어서 무거운 모래, 종일 햇볕을 받아 아직 뜨거운 모래. 그녀의 방은 더웠다. 밤새도록 더웠다. 공기가 없었다. 플로리다에는 공기가 없었다. 식도 안으로 스며드는 이 시럽밖에는. 로사는 걸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보았지만, 그것들은 마치 날조된 것 같았고 상상 속에서 나온 것 같았다. 그녀는 무엇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 P75

어둠 속에서 실루엣으로 보이는 높은 호텔의 지붕마다 무자비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건축가도 이런 이빨을 즐겁게 꿈꾸었을 리는 없으리라. 모래는 이제 겨우 식기 시작했다. 바다 위로 펼쳐진 하늘은 별 하나 없는 어둠을 숨 쉬고 있었다. 그녀의 뒤쪽, 호텔들이 그 도시를 꽉 물고 있는 곳에서는 갈색 도는 붉은 먼지의 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진흙 구름. - P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사는 큰 소리로 말했다. "도둑들이 그걸 빼앗아갔어."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너, 스텔라, 너한테는 삶이 있니?" - P51

질병, 질병이란다! 인도주의 맥락, 이건 무슨 뜻일까?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흥분. 그들의 입에 침이 고이고 있다. 미국에서 염증으로 피 흘리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라니, 무슨 쓰레기 같은 소리인가. 그들이 사용하는 특수한 단어 또한 생각해보라. 생존자. 무언가 참신하다. 그들이 인간을 말할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과거엔 난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존재는 없다. 더 이상 난민은 없고 생존자만 있다. 번호와 다름없는 이름–평범한 무리와는 따로 셈해지는 존재. 팔에 찍힌 파란 숫자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들은 어쨌거나 당신을 가리켜 여자라고 하지 않는다. 생존자라 한다. 심지어 당신의 뼈가 흙먼지 속으로 녹아들 때도 여전히, 그들은 인간을 잊고 있을 것이다. 생존자와 생존자 그리고 생존자. 언제나, 언제까지나 생존자. 누가 그런 단어를 지어냈을까, 고통의 목구멍에 붙은 기생충 같은 단어를! - P79

모성이란 철학을 하다가 머리를 식힐 때의 심오한 위안이란다. 그리고 모든 철학은 시간의 흐름을 둘러싼 고통에 뿌리를 두고 있어. 내 말은 모성에 관한 사실, 생리학적 사실을 말하는 거야. 또 다른 인간을 창조 할 힘을 가진다는 것, 그 엄청난 수수께끼의 도구가 된다는 것. 전체 유전자 체계를 물려준다는 것 말이야. - P66

마음이 흥분된 상태에서는 다이아몬드를 열어보지 않는 법이지. - P67

내 마음속에 있는 네 존재의 힘이 내 기쁨을 먹어 치우는구나. 노란 꽃송이를! 태양의 잔을! - P70

펜을 잡는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작고 뾰족한 막대기에 지나지 않은 그것이 상형문자의 웅덩이를 흘린다. 기적처럼 폴란드어를 말하는 펜. 혀에 채워졌 던 자물쇠가 제거되었다. 그럴 때가 아니면 혀는 이와 입천장에 사슬로 묶여 있다. 살아 있는 언어에 푹 빠진다는 것. 갑자기 이 청결함이, 이 능력이 샘솟는다,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말하고, 설명하는 이 힘이 솟아오른다. 되찾고 유예하는 힘!
거짓말하는 힘! - P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사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들어 올린 머리가 헐거워져 비어져 나온 머리카락이 목 양쪽에서 대롱거렸다. 영락없이 깃털 빠져 너덜너덜한 늙은 새의 모습이었다. 비쩍 마른 황새. 원피스의 단추 하나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래도 벨트 버클이 그 수치심을 덮어줄 것이다. 무엇이 신경 쓰이는 걸까? - P39

"너무 많이 혼자 있다는 건, 너무 생각이 많다는 거요." 퍼스키가 말했다.
"삶이 없는 사람은," 로사가 대답했다. "자기가 살 수 있는 데서 사는 거죠. 가진 게 생각뿐이라면, 생각 속에서 사는 거고요." 로사가 대꾸했다. - P45

"손님들"–12년째 거주 중인 이들도 있었다–은 점심 식사를 위해 벌써부터 몸단장을 하고 나와 서성거리고 있었다. 두툼한 쇄골과 그 위의 푸르스름한 우물이 드러나는 여름 원피스 를 입은 늙은 여자들. 목덜미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넓은 지방 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그들은 스타킹을 신고 있지 않았다. 푸른 대리석 무늬의 선명한 힘줄이 거의 정사각형의 네모난 종아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러나 몽상 속의 그들은 다시금 젊은 여자로 돌아가 쭉 빠진 불멸의 다리, 건강한 여신의 하얀 다리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월의 무상함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그 얼굴에서도 그들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든 것이 확연히 보였다. 끈으로 조인 듯 조글조글한 입에 칠한 붉은 광택은 결코 젊음을 되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젊음을 지속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일흔의 추파.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이 머물러 있었다. 의도, 행동, 심지어 기대까지도–그들은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이음매 없이 계속되는 육체의 지속성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보다는 내면적이어서, 비밀 영화처럼 눈앞의 삶을 살아 가고 있었다. - P46

벽에 비친 그림자들. 벽 위의 그림자들이 움직이지만, 그 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 손님들은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분리된 사람들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들은 자신의 손주들, 나이 들어가는 자녀들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그들 자신이 그들에게 더 큰 의미로 자리 잡고 있었다. 로비에는 벽마다 거울이 있었다. 거울마다 30년째 걸려 있었다. 탁자마다 표면이 거울 같았다. 거울들 속에 비친 손님들의 모습은 그들에게는 과거의 모습 그대로였다. - P47

방에 들어온 그녀는 요란하게 숨을 쉬었다. 거의 헉헉거리면서, 거의 빽 소리가 나도록 숨을 쉬었고, 문간방을 흉내 낸 작은 공간에 세탁물이 든 카트를 비스듬히 세워둔 채, 상자와 두 통의 편지를 침대로 가져갔다. 여전히 정돈되지 않은 침대는 생선 비린내를 풍겼고, 커버는 마치 탯줄처럼 한데 묶여 있었다. 난파선. 그녀는 그 안으로 몸을 던지고는 구두를 벗어 던졌다. - P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싱크대 조리대 위에 놓인 타원형 정어리 통조림은 어제부터 뚜껑을 열어둔 채였다. 토할 것 같은 냄새가 벌써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지옥에 있는 기분이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스텔라," 그녀는 조카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스스로를 가둔 이곳은 지옥이야. 한때 나는 최악은 그야말로 최악이니, 그 후로는 최악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 알겠구나. 최악이 지나갔어도 더 많은 최악이 있다는 것을." 이렇게 쓸 때도 있었다. "스텔라, 나의 천사, 나의 사랑, 악마가 네 안 으로 기어들어 네 영혼을 조르고 있는데 너는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하지."
마그다에게는 이렇게 썼다. "너는 암사자로 자라났구나. 너는 황갈색이고, 털북숭이 발가락을 있는 힘껏 펼치지. 너를 훔치는 사람은 그 자신의 죽음을 훔치는 거야." - P25

이곳에 온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 모두 허수아비였고, 가슴팍 안이 빈 채로 살인적인 태양 아래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 P28

소녀 시절의 바르샤바. 위대한 빛. 그 빛의 스위치를 켠 그녀는 자신의 눈 속에서 살고 싶었다. 어머니가 쓰던 뚜껑 달린 책상의 다리 곡선. 아버지의 책상에서 나던 엄격한 가죽 냄새. 부엌 바닥에 깔린 하얀 타일, 커다란 화분들이 내쉬던 숨결, 다락 옆 탑으로 올라가는 좁다란 계단…… 소녀 시절 그녀의 집에는 수천 권의 책이 가득했다. 폴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책들. 아버지의 라틴어 책들. 열띤 전보처럼 짧은 글귀로 어머니가 쓴 시가 가끔씩 실리던 수줍은 문예지들이 놓인 서가. 교양, 고대 문명, 미, 역사! 모퉁이를 돌 때마다 놀랍게 펼쳐지던 거리들, 고풍스러운 집들의 모습, 아취있는 오래된 처마,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던 섬세한 작은 탑들, 첨 탑들, 그 광채, 그 고풍스러움! 정원들. 파리를 말하는 사람이라면, 필시 바르샤바를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 P35

햇빛은 숨이 막히도록 내리쬐고 있었다. 뜨겁게 끓인 꿀을 머리에 퍼붓는 것 같았다. 꿀은 한번 핥기엔 좋지만, 너무 많으면 꿀에 익사할 수도 있었다. - P37

"과거 속에서 살 수는 없는 법이오." - P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