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지만,
소는 임신을 해야만 우유를 생성한다.

젖소는 우리에 갇혀서 살고,
원치 않는 임신을 반복한다.
낳은 새끼는 바로 빼앗긴다.
송아지들은 모유를 먹지 못한다.

더 이상 출산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도축되어 다양한 재료로 가공된다.

어떤 종의 소들은 젖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도록 변형되었다.

계속 착유당한 탓에 우유에는 피고름이 섞여 나온다.

인간 성인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우유에는 다량의 성 호르몬이 섞여 있다. - P57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학대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의 식문화는 동물을 학대하며 착취하고 있다. - P60

마냥 남들을 탓할 수도,
무관심을 그냥 받아들일 수도 없다.

채식을 하면 인간 외의 동물에 대해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사람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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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째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밖에 만날 수 없는 건지, 어째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면 정육점 쇼케이스 안의 벌거벗은 고깃덩어리처럼 나를 노골적으로 전시해야만 하는 건지 억울해졌고,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함부로 안겨 주는 모멸감과 수치심으로부터 나를 분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저들의 세계는 나와는 별상관이 없는 것처럼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돌렸다. - P227

그래도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신 거잖아. 너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를 거야.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라고, 너는 진짜로 감내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마음은 가급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서로에게 진실한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내게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미 본 것들을 못 본 척하거나 알게 된 것들을 모르는 척해야 한다는 걸 체득한 지 오래였다. 그래,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데,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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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을 바꾼 게 무슨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황당해하는 내게 흙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내 마음 편한 게 최고라며 웃음을 지었고, 그런 흙을 보고 있자니 나도 나지만 너도 참 너구나 싶어 나중에는 그냥 항복하는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흙이 바로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만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흙이 나로부터 비롯된 갖은 감정적 악취를 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한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애써 멀리 에둘러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흙은 대체로 그런 사람이니 내게도 예외는 아닐 거라는 생각.
참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 P183

그래, 그럴 수 있지. 이렇게 스치는 것조차 곤란하고 불편할 수 있지. - P185

한동안 나는 그날의 선택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저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뿐이었다고 되뇌곤 했다. 그즈음의 나는 완전히 소진된 상태여서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 주고 공감해 줄 여력이 없었던 거라고, 그러므로 그날 밤 나를 찾은 사람이 꼭 물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응답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꾸 내 입장을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하고도 반이 지난 지금, 나는그게 완전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코 거짓은 아니지만 내게는 그 모든 것들을 선행하는 진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나를 한껏 위축시키고 주저하게 만들었던 그날의 불편에는 분명한 실체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P188

길을 걷다가 어느 집 대문 앞에 놓인 화분을 보고 멈춰 섰다. 거뭇하게 시들고 말라 버린 이름 모를 화분에 큼지막한 메모가 붙어 있었다.
[살리고 있는 중. 가져가지 마세요.]
"나는 카메라 앱을 열고 메모가 잘 보이도록 구도를 잡다가, 오늘은 이거에 대해 쓰면 되겠다고 확신하며 버튼을 누르려다가 불현듯 스치는 어떤 생각에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고 결심했으면서, 섣불리 연민하거나 동정하지 말자고 다짐했으면서, 나는 어느새 그걸 또 잊고 있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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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확실한 건 그날 거기에 있던 십수 명의 사람들 가운데 그분은 확실히 뭔가 다른 존재였고, 나는 그 다름이 나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으며 그것이 내 인생을 결코 수월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리라는 것을 일찌감치 감지했다는 것이다. 어떤 기억이 거듭 재조합되며 수명을 연장하는 건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 P143

하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인 척, 아니, 보통 사람인 척 노력한 날에는 어김없이 거대한 뭔가가 나를 물속에 처박아 놓고는 네 자리는 거기라고, 너는 평생 거기서 쥐죽은듯이 땅 위의 사람들을 쳐다만 보라고 강제하는 듯한 기분에 시달렸는데, 그럴 때 나는 고장났고 고로 폐기 처분되어 마땅하다는 결론까지 도달하는 건 아주 금방이었다. 언젠가 어느 결혼식에 갔던 날에는 그냥 저기 저 창밖으로 뛰어내릴까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해 내가 내 마음을 해치면서까지 괜찮은 척하는 건 이제 그만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기도 했고. - P151

다음 알람이 울렸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았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나를 흉내 내고 있다는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으니까. 누나가 얘기해서 살 것 같은 사람은 진짜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내가 아니고 그저 기대되는 말이나 어울리는 말, 필요한 말만 할 수 있는 나였으니까. 잠시라도 내가 누구인지 까맣게 잊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나는 내가 여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계속 움켜쥐고 있었다. - P159

나는 그 순간에는 조금 멋쩍었으나 금세 한갓진 기분이 되어서는 따라 웃었다. 얘는 열여섯인데 이게 되는구나 싶어서, 중심도 기준도 모두 자기한테 둘 수 있구나 싶어서 좀 신기하면서도 기꺼운 질투심 같은게 일었다. 그건 신경말단이 툭툭 살아나는 느낌이기도 했고, 그제야 내가 서 있는 곳이 물속이 아니라 땅 위라는 걸 자각한 것처럼 숨이 확 트이는 느낌이기도 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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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광호 씨에 대해 말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따금 사로잡히곤 한다. 이를테면 해질 녘의 버스 차창 안으로 불그스름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지친 사람들의 얼굴을 비출 때, 혹은 서늘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곤 다른 쪽으로 서서히 불어 갈 때 길을 걷다 어디 좋은 데라도 가는지 한껏 멋을 부린 사람과 스칠 때나, 다가오는 일행에게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일 때도 그렇다.
광호 씨는 딱히 옷을 잘 입는 사람도 아니었고 동작이 큰 사람도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광호씨를 떠올린다. - P87

나는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던 광호 씨의 말을 자주 곱씹는다. 어쩌면 그 말은 나를 향한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다가올 세상을 향한 기대와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안고서. 우리의 정체성이 어떻든 거기엔 아무런 차별이 없어서 특별한 용기도 자긍심도 필요 없는 세상. 우리가 누구에게 어떤 종류의 끌림을 느끼든 그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어서 누군가의 인정도 응원도 필요 없는 세상. 그날의 광호 씨는 시간이 흐르면 그런 세상이 반드시 도래할 거라는 자신의 믿음에 내기를 걸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리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런 세상은 틀림없이 앞당겨질 거라는 신념을 내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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