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확실한 건 그날 거기에 있던 십수 명의 사람들 가운데 그분은 확실히 뭔가 다른 존재였고, 나는 그 다름이 나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으며 그것이 내 인생을 결코 수월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리라는 것을 일찌감치 감지했다는 것이다. 어떤 기억이 거듭 재조합되며 수명을 연장하는 건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 P143

하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인 척, 아니, 보통 사람인 척 노력한 날에는 어김없이 거대한 뭔가가 나를 물속에 처박아 놓고는 네 자리는 거기라고, 너는 평생 거기서 쥐죽은듯이 땅 위의 사람들을 쳐다만 보라고 강제하는 듯한 기분에 시달렸는데, 그럴 때 나는 고장났고 고로 폐기 처분되어 마땅하다는 결론까지 도달하는 건 아주 금방이었다. 언젠가 어느 결혼식에 갔던 날에는 그냥 저기 저 창밖으로 뛰어내릴까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해 내가 내 마음을 해치면서까지 괜찮은 척하는 건 이제 그만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기도 했고. - P151

다음 알람이 울렸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았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나를 흉내 내고 있다는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으니까. 누나가 얘기해서 살 것 같은 사람은 진짜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내가 아니고 그저 기대되는 말이나 어울리는 말, 필요한 말만 할 수 있는 나였으니까. 잠시라도 내가 누구인지 까맣게 잊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나는 내가 여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계속 움켜쥐고 있었다. - P159

나는 그 순간에는 조금 멋쩍었으나 금세 한갓진 기분이 되어서는 따라 웃었다. 얘는 열여섯인데 이게 되는구나 싶어서, 중심도 기준도 모두 자기한테 둘 수 있구나 싶어서 좀 신기하면서도 기꺼운 질투심 같은게 일었다. 그건 신경말단이 툭툭 살아나는 느낌이기도 했고, 그제야 내가 서 있는 곳이 물속이 아니라 땅 위라는 걸 자각한 것처럼 숨이 확 트이는 느낌이기도 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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