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째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밖에 만날 수 없는 건지, 어째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면 정육점 쇼케이스 안의 벌거벗은 고깃덩어리처럼 나를 노골적으로 전시해야만 하는 건지 억울해졌고,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함부로 안겨 주는 모멸감과 수치심으로부터 나를 분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저들의 세계는 나와는 별상관이 없는 것처럼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돌렸다. - P227
그래도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신 거잖아. 너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를 거야.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라고, 너는 진짜로 감내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마음은 가급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서로에게 진실한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내게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미 본 것들을 못 본 척하거나 알게 된 것들을 모르는 척해야 한다는 걸 체득한 지 오래였다. 그래,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데,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 P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