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란 정열의 노예니까 말이에요. - P410

「사람들은 말하지요, <너는 환자다. 그러니까 네게 나타나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환상일 뿐이다.〉 엄격히 말해서 이 말은 비논리적입니다. 나는 유령이 환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유령이 환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 P422

<유령, 이것은 말하자면 내세의 작은 조각과 파편들이고, 그것들의 시작이다. 물론 건강한 사람에게는그들이 보일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건강한 사람은 가장 현세적인 사람이므로 완전과 질서를 위해 반드시 지상에서의 현세적인 삶만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병이 나서, 유기체 속의 정상적인 지상의 질서가 조금이라도 파괴되면,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 더욱 빈번해지고, 그러다가 완전히 죽게 되면 그는 곧바로 그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 것이다.> - P4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일종의 생각들이나 생각의 파편들, 어떤 상념들은 있었지만, 그것들은 어떠한 연결도 질서도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어렸을 때 보았거나 어디선가 꼭 한번 만났지만 전혀 기억할 수가 없는 사람들의 얼굴, V 교회의 종루, 어떤 음식점의 당구대와 그 당구대 옆에 있던 장교 한 사람, 어떤 지하 담배 가게에서 나던 담배 냄새, 선술집, 구정물과 달걀껍질이 잔뜩 널려 있던 아주 어두운 검은색의 계단,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일의 종소리…… 여러가지 대상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뒤바뀌며 회오리바람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꼭드는 것들도 있어서 그것에 매달려보기도 했지만, 그것들도 곧 사라져 버렸다. 전체적으로 무언가 내부에서 그를 억누르는 것이있었지만, 그것이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다. 때로는 기분이 아주 좋기까지 했다…………. 가벼운 오한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나, 그것마저 역시 유쾌한 감촉이라고 할 수 있었다. - P396

〈아니, 그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어. 진짜 《거인》,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는 사람은 툴롱을 호령하고 파리에서 대학살극을 벌이고, 이집트에서 군대를 《잃고》, 모스끄바로의 진군에서 50만의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빌니우스에서는 그 일을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그런데도 죽은 후에는 그를 우상으로 떠받들지 않았는가. 즉 《모든 것》이 허용된 것이다. 아니, 아마도 이런 사람의 몸은 살로 되어 있지 않고 청동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 P398

나는 《전 인류의 행복》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의 삶도 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살지 않는 편이 더 낫다. - P399

<다음의 이유 하나만 봐도 나는《이》이다. 첫째, 지금 내가 스스로를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하나만 봐도 그렇다. 둘째, 한달내내, 자신의 육체와 욕망을 위해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위대하고 훌륭한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고 전지전능한 신을 증인으로 세워 가면서 괴롭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하하! 셋째로, 일을 저지르면서도 가능한 한 공정성을 지키려고, 즉 무게, 정도, 수학을 고려해서 《이》 중에서 가장 무익한 《이》를 선택해 그것을 죽이고, 첫걸음을 위해서 더도 덜도 말고 내게 필요한 만큼만 정확하게 그로부터 빼앗으려고 했단 말이다………. - P400

과연 이 두려운 일에 비길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오, 저속함이여! 오, 비열함이여………! 오, 나는 칼을 들고 말을 탄 《선지자》의 심정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다. 알라신이 명하니, 복종하라.
《떨고 있는 피조물이여!> 어디선가 거리를 가로막고 훌륭한 포병들을 세워 놓은 다음, 죄가 있든 없든 마구 쏘아 대고도 변명하지 않은 《선지자》는 정당했다! 복종하라, 떨고 있는 피조물들이여. 그리고 《바라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너의 일이 아니니까………! 오, 결단코 결단코 나는 그 노파를 용서치 않으리라!> - P4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그가 내 가치를 인정하고,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확신 없이는 그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 그를 존경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 채 그와 결혼하지는 않아요. 다행히도 나는 그걸 거의 확신할 수 있었고, 그건 오늘 이 시간에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결혼은 오빠가 말하듯이 비열한 짓이 아니란 말이에요. 나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다니,오빠 입장에서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왜 오빠는 자기도 갖고 있지 못한 영웅적인 용기를 내게 요구하는 거지요? 이건 독재이고 폭력이에요! 만일 내가 누군가를 파멸시키고 있다면,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고요……. 나는 아직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요………!」 - P339

「죽은 자에게는 안식이, 산 자에게는 더 나은 삶이 있으라! 그렇지 않은가요?」 - P3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성과 빛의 왕국이 도래했다………. 의지와 힘의 왕국이 온 거야.………. 어디 두고 보자! 한번 겨뤄 보자고!> 그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도전하듯이 오만하게 덧붙였다. <나는 이미 1 아르신밖에 안 되는 공간에서 살 각오도 하지 않았던가…………!> - P274

힘, 힘이 필요하다. 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힘은 힘으로 얻어야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다. 그는 거만하고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간신히 떼어 놓으며 다리를 떠났다. 교만함과 자신감이 그의 내부에서 시시각각 자라났다. 그다음 순간이 사람은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엇이 그를 이처럼 변화시켜 놓은 것일까?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는 문득 <자기가 살 수 있고,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자신이 노파와 함께 죽은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면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을 내린 건지도 몰랐지만, 그는 그런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 P274

<당신의 종, 로지온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었지.>
갑자기 이런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그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그런 거야!> 이렇게 말하고 나자 그는 곧 자신의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 P274

어떤 때는 그 행동이 아주 그럴듯하기도 하고 교묘하기조차 할 때가있지요. 하지만 행동의 경과나 행동의 시작은 혼란스럽고, 여러가지 병적인 인상에 의해 좌우되거든요. 꿈과 비슷한 것이지요. - P328

「그런데 네 방은 정말 형편없구나, 로쟈. 꼭 관 속 같아.」 - P3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심각하게 말하던 라스꼴리니꼬프가 돌변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제어할 힘이 없다는 듯 느닷없이, 또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손에 도끼를 들고 문 옆에 숨어 있던 순간의 감각이 극도로 선명하게 그의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빗장은 덜거덕거리고, 문 뒤에서는 사람들이 욕을 해대며 문을 흔들어 대는데, 불현듯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부으며 혀를 내밀어 그들을 조롱하면서, 큰 소리로 〈하하하〉 하고 웃어 주고 싶었던 며칠 전의 바로 그 순간이! - P235

「당신은 미쳤군요.」 웬일인지 자묘또프도 거의 속삭이듯이 말하고는 갑자기 라스꼴리니꼬프에게서 흠칫 몸을 뗐다. 라스꼴리니꼬프의 눈은 빛나고, 그의 얼굴은 지독하게 창백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윗입술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가능한한 더 가까이 자묘또프에게 몸을 숙이고 입술을 놀리기 시작했으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20초가 흘렀다. 그는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알았지만,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때 문의 빗장이 흔들리는 것처럼 무서운 말이 그의 입술에서 요동치고 있는 것 같았다. 금세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입을 열기만 하면, 혀를 놀리기만 하면! - P240

「어서 꺼져 버려!」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조용하게 말했다. 잠깐!」 라스꼴리니꼬프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그는 갑자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내 말 잘 들어. 내 장담하건대, 너같은 족속들은 말이야, 다 하나같이 수다쟁이에 허풍선이들이야! 무언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너 같은 족속들은 그 일을 마치닭이 알을 품고 다니듯이 품고 다니지!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도용하기까지 해. 너희 같은 녀석들에게는 그 어떤 독립적인 삶의 징후라고는 없어! 너희는 고래기름으로 만들어졌어. 네 놈들 몸에는 피가 아니라 우유 찌꺼기가 흐르고 있어! 나는 너희같은 부류의 인간들이라면 아무도 믿지를 않아!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너희의 최대 관심사는 사람같이 굴지 않으려는 거야! - P243

그는 물 위로 고개를 숙이고 스러지는 장밋빛의 저녁노을과 짙어 가는 어스름 속에서 거뭇하게 보이는 집들, 강의 왼편에 있는 집의 다락방 어디에선가 잠깐 비친 마지막 햇살을 받아 불길에 휩싸인 듯이 빛나는 아득한 창, 운하의 어두운 물결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의 눈에는 붉은 동그라미 같은 것들이 빙글빙글 돌기시작했고, 집들, 행인들, 강변, 마차들이 흔들리면서, 주변의 모든것이 빙빙 돌며 춤추기 시작했다. 그가 졸도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단 한 가지 놀랍고도 추악한 광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 P246

모든 것이 그가 딛고 있는 돌처럼 말없이 죽어 있었다. 그에게만은 모든 것이 죽어 있었다……. - P254

그는 열에 들떠 있었지만, 그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조용하고 느릿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다만 불현듯 느끼게 된 강렬한 삶의 감각, 이 새롭고도 무한한 감정에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이 감정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느닷없이 뜻밖의 사면을받은 사람이 느낀 것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 P2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