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일종의 생각들이나 생각의 파편들, 어떤 상념들은 있었지만, 그것들은 어떠한 연결도 질서도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어렸을 때 보았거나 어디선가 꼭 한번 만났지만 전혀 기억할 수가 없는 사람들의 얼굴, V 교회의 종루, 어떤 음식점의 당구대와 그 당구대 옆에 있던 장교 한 사람, 어떤 지하 담배 가게에서 나던 담배 냄새, 선술집, 구정물과 달걀껍질이 잔뜩 널려 있던 아주 어두운 검은색의 계단,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일의 종소리…… 여러가지 대상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뒤바뀌며 회오리바람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꼭드는 것들도 있어서 그것에 매달려보기도 했지만, 그것들도 곧 사라져 버렸다. 전체적으로 무언가 내부에서 그를 억누르는 것이있었지만, 그것이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다. 때로는 기분이 아주 좋기까지 했다…………. 가벼운 오한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나, 그것마저 역시 유쾌한 감촉이라고 할 수 있었다. - P396
〈아니, 그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어. 진짜 《거인》,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는 사람은 툴롱을 호령하고 파리에서 대학살극을 벌이고, 이집트에서 군대를 《잃고》, 모스끄바로의 진군에서 50만의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빌니우스에서는 그 일을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그런데도 죽은 후에는 그를 우상으로 떠받들지 않았는가. 즉 《모든 것》이 허용된 것이다. 아니, 아마도 이런 사람의 몸은 살로 되어 있지 않고 청동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 P398
나는 《전 인류의 행복》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의 삶도 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살지 않는 편이 더 낫다. - P399
<다음의 이유 하나만 봐도 나는《이》이다. 첫째, 지금 내가 스스로를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하나만 봐도 그렇다. 둘째, 한달내내, 자신의 육체와 욕망을 위해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위대하고 훌륭한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고 전지전능한 신을 증인으로 세워 가면서 괴롭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하하! 셋째로, 일을 저지르면서도 가능한 한 공정성을 지키려고, 즉 무게, 정도, 수학을 고려해서 《이》 중에서 가장 무익한 《이》를 선택해 그것을 죽이고, 첫걸음을 위해서 더도 덜도 말고 내게 필요한 만큼만 정확하게 그로부터 빼앗으려고 했단 말이다………. - P400
과연 이 두려운 일에 비길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오, 저속함이여! 오, 비열함이여………! 오, 나는 칼을 들고 말을 탄 《선지자》의 심정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다. 알라신이 명하니, 복종하라. 《떨고 있는 피조물이여!> 어디선가 거리를 가로막고 훌륭한 포병들을 세워 놓은 다음, 죄가 있든 없든 마구 쏘아 대고도 변명하지 않은 《선지자》는 정당했다! 복종하라, 떨고 있는 피조물들이여. 그리고 《바라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너의 일이 아니니까………! 오, 결단코 결단코 나는 그 노파를 용서치 않으리라!>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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