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 했던 부자들 봤잖아. 그 사람들이 배워서 돈 벌었다는 소리 들어봤어? 말도 안 돼. 가난한 아이에게 누구도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아. 모두가 이 진창에서 벗어 나려면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기만 할 뿐이지. 방법 같은 건 없어. 각자 알아서 하는 거지?" - P70

그가 보고 싶은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마리아와 자기 자신과 보편적인 세상에 대해 지금 막 갖게 된 이 터무니없는 생각에 근거가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마리아가 다른 사람들과 그 렇게까지 다른지, 그녀가 정말로 이 시대의 윤리 의식이나 이 시대의 유행, 이 시대의 기준, 이 시대의 합의와 규 칙, 이 시대의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지 확인해보아야 했다. 그래, 그녀가 그 점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인지 알고 싶었다. - P90

그들 위로 달이 고고하게, 그러나 사라지기 직전이라 반쯤 투명해진 채로 빛을 비추고 있었다. 일단 집 앞에 도착하자, 니콜은 게레의 얽히고 설킨 변명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추위에 떨었다. 어쩌면 좀 전의 공포가 다시 밀려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니콜이 어깨를 움츠린 채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등이 게레의 눈에 들어왔다. 니콜의 등은 무언가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리아의 등이라면 결코 드러나지 않을 무언가였으나 게레 자신의 등에선 자주 나타났을 그것, 바로 모욕감이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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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읽는 걸 보고 호기심을 느꼈으며 이 사실을 「고백록」에기록했다. 누군가 자기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처음 봤다고 한다. 그는 주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책을 읽는 그의 눈이 페이지를 훑어가며 글을 이해해갔다. 하지만 입은 꾹 다물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교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실은 자기 옆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주교는다른 세계로 달아나 있으며 움직이지도 않은 채 찾을 수 없는 곳을 여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장면은 당황스러웠으며 동시에 그를 매료시켰다.
따라서 당신은 아주 특별한 독자로서 혁신자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것이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당신과 나의 자유롭고 비밀스러운 대화는 엄청난 발명품이다. - P73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소아시아, 페르시아 같은 근동의 가장 오래된 도서관에도 도둑이나 책을 훼손하는 자를 저주하는 말이 있다.
"태블릿을 훔치거나 우격다짐으로 가져가거나 노예를 시켜 도둑질하는 자는 샤마쉬가 눈을 뽑고 나부와 니사바가 귀를 멀게 할 것이며 나부가 육신을 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태블릿을 훼손하거나 물에 넣거나 볼 수 없게 지우는 자는 천상과 지상의 신들과 여신들의 무자비한 저주를 받을 것이며 이름과 가문이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고 육신은 개의 먹이가 될 것이다." - P83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대부분의 태블릿들이 화재의 불길 덕에 보존된 것들이다. 그렇게 책은 생존의 역사를 숨기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미케네의 화재, 이집트의 쓰레기장, 베수비오산의 화산 폭발 등, 드물긴 하지만 파괴적 힘이 책을 구한 경우도 있다. - P84

미지의 언어를 해독하려는 사람은 언어의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도 없는 상태에서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다뤄야 한다면 해독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알고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면 길을 잃지 않는다. 미개척 영토의 지도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언어학자들은 로제타석의 그리스어가 고대이집트의 잃어버린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직관했다. 그리고 해독의 모험은 암호 해독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발표된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황금벌레」와코넌 도일의 「춤추는 사람 그림」이 그런 상상력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다. - P89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모든 책이 유일본이었다. 사본을 만들려면 문자를 하나씩 그대로 옮겨 쓰는 인고의 작업을 해야 했다. 사본이 있는 책들은 아주 극소수였으며 특정 텍스트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건 실제적인 위협이었다. 고대에는 하나밖에 없는 판본이 언제든 벌레나 습기에 파괴될 수 있었다. 습기와 벌레가 책을 파먹으면 하나의 목소리가 영원히 사라졌다. - P91

책의 발명은 책의 물질적 측면(내구성, 가격, 저항성, 무게)을 개선하기 위한 시간과의 전투의 역사다. 책이 개선될수록 언어의 생명에 대한 기대 수명은 길어졌다. - P91

태블릿은 보통 사각이었다. 특정적이고 균형 잡힌 사각형은 야릇한 기쁨을 준다. 대부분의 유리창, 진열창, 화면, 사진, 그림이 사각형이다. 책도 여러 실험을 거친 뒤 사각형으로 특정됐다. - P93

이탈리아의 저술가 바스코 프라톨리니(Vasco Pratolini)는 문학이란가죽에 글을 쓰는 일이라고 했다. 비록 양피지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미지는 완벽하다. 새로운 재료가 생산되면서 책은 언어가 입혀진 몸, 가죽에 쓰인 생각이 되었다. - P95

우리의 피부는 종이와 마찬가지다. 몸은 하나의 책이다. 시간은 제역사를 얼굴에, 팔에, 배에, 성기에, 다리에 써 내려간다. 세상에 나온 인간의 배에는 커다란 0, 배꼽이 있다. 그 이후 다른 문자들이 천천히나타난다. 손금, 마침표 같은 주근깨, 의사들이 살을 갈랐다가 꿰맨 뒤에 남는 흔적들.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 주름, 몸의 반점, 혈관의 모양 등이 하나의 삶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을 엮어간다. - P95

어느 날 아흐마토바는 거울 속에서 여윈 얼굴과 고통이 얼굴에 남긴 주름을 보면서 메소포타미아의 오래된 태블릿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슬픈 시구를 남겼다. "이제 나는 어떻게 고통이 내 볼에 거친 쐐기꼴의 페이지를 그려내는지 이해하게 됐다" 나 또한 고통으로 얼굴이 갈기갈기 갈라진 점토판 같은 사람들을 봤다. 아흐마토바의 시를 읽은 뒤로는 고통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에서 아시리아의 태블릿이 떠오르곤 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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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 부우욱그윽곰들!! 우리는 겁에 질린 엄마 북극곰들을 구해야만 해! 안 그러면 다음엔 우리 차례가 될 거야.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나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북극곰 때문에 상심하고 있는 네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그렇지 않은 나머지 우리들이 미친 거지. - P33

‘예민하다‘의 반대말이 ‘용감하다‘는 아니다. 관심을 기울이길 거부하는 것, 알아차리기를 거부하는 것, 느끼고 알고 상상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용감한 것은 아니다. ‘예민하다‘의 반대말은 ‘둔감하다‘이며, 그것은 결코 명예로운 훈장이 아니다. - P34

그러나 우리 사회는 티시 같은–나 같은–사람들이 불편할 정도로 확장과 권력과 효율성의 방향으로 미친 듯 기울어져 가고 있다. 우리의 세상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우리가 타이타닉호의 뱃머리에서 "빙산이다! 빙산이다!" 라며 울부짖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갑판 아래에서 "귀찮게 하지 마! 우린 계속 춤을 추고 싶단 말이야!" 하고 대꾸할 따름이다. 사실 망가진 세상에 적절하게 반응하려고 고심하기보다는 티시 같은 사람들을 제정신이 아니라고 치부하는 편이 한결 쉽다.
내 어린 딸은 망가지지 않았다. 딸아이는 선지자다. 나도 아이와 함께 멈출 수 있을 만큼, 아이에게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물을 수 있을 만큼, 아이가 알게 된 것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을 만큼 현명해지고 싶다. - P35

선택된 아이들은 복도에서든 운동장에서든 백화점에서 든 우리 마음속에서든 폐쇄적인 원–마치 태양처럼–을 이루며 함께 서 있다. 우리는 대놓고 그들을 바라보지도 못하는데, 그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빛나는 머릿결과 유혹적이고 경쾌하며 아름다운 몸매뿐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건 훨씬 더 많은 관심,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괴롭힘 같은 것과 거리가 멀면서도 그보다 더했다. 그들의 일이란 나머지 우리들을 무시하는 것이며, 우리의 일은 그들 이 정해놓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얕잡아 보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그들을 선택된 아이들로 만들고, 그들의 존재는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해마다 그들에게 표를 던진다. 왜냐하면 각자의 책상이라는 아주 은밀한 공간에서조차 모종의 규칙이 우리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 P37

"배고프지 않니?"
다음은 느린 화면이 펼쳐지는 듯 전개되었다.
남자아이들은 하나같이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한 그대로 말한다. "예!"
여자아이들은 처음에는 조용하다. 그러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돌려 다른 여자아이들의 얼굴을 훑어본다. 각자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자신이 배가 고픈지를 알아내고자 한다. 모종의 텔레파시가 그들 사이에 오간다. 그들은 지금 투표를 하고 있다.
찬성할지 반대할지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어찌어찌하여 이 여자아이들은 코에 주근깨가 있고 머리를 뒤로 땋은 대변인을 임명한다.
그 아이가 친구들의 얼굴에서 눈을 돌려 나를 본다. 아이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한다. "우린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확인한다.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외부를 확인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남의 기분에 맞추는가를 배움과 동시에 자신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이것이 우리가 허기진 채 살아가는 까닭이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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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200여 권의 연구서에서 세계의 구조를 발견하고 그 구조를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 논리학, 윤리학, 미학, 수사학, 정치학, 형이상학으로 분리했다. 데메트리오스는 스승의 도서관과 분류 시스템 속에서 책을 소유한다는 것이 외줄 타기라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즉 우주에 흩어진 조각들을 모으고 총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혼돈에 맞서 조화로운 건축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모래로 만든 조각품이라는 것, 그리고 망각에 맞서 우리가 지켜내고 있는 은신처이자 세상의 기억이며 시간의 해일에 맞선 장벽이라는 것을 말이다. - P56

상업, 교육, 혼혈의 길을 따라 괄목할 만한 문화적 유사성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풍경에는 유사한 모습의 도시들이 흩어져 있었다.(거리가 직각 그리드를 형성하는 도시 계획에 따라 광장, 극장, 경기장, 그리스어로 된 비문, 사원이 배치된다.) 그것이 당대 제국 특유의 기호이다. 오늘날 세상을 획일화하는 코카콜라, 맥도날드, 번쩍이는 광고들, 중심상가, 할리우드 영화관, 애플 제품 등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 P60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놀라움과 불안 사이에서 경련하던 헬레니즘 문명에 상반된 충동이 나타났다. 찰스 디킨스의 말처럼,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회의주의와 종교적 맹신, 호기심과 편견, 관용과 배척이 동시에 발생했다. 자신을 세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민족주의에 함몰된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사상들이 경계를 넘어 전파되면서 쉽게 뒤섞였다. 그리하여 절충주의가 나타났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를 가로지르는 스토아 철학은 평정과금욕과 내적 강화를 통해 번뇌를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마치 불교 신자들이 행하던 수행처럼 말이다. - P61

이 시대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를 세우려고 경쟁한다. 당시의 알렉산드리아도 그런 싸움을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파로 등대는 여러 세기 동안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나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처럼 그 등대는 자부심의 엠블럼이자 통치자들의 선정적인 꿈이었다. 더욱이 그 등대는 과학의 황금시대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애초에 등대(faro)는 나일강의 삼각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도시를 세우기로 결정한 곳이다. 발트해에도 파로(Faro)로불린 섬이 있다. 잉마르 베리만이 영화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1961)를 촬영한 곳으로, 그는 감독 생활을 접은 뒤 그곳에서 은자처럼 살았다. 하지만 지명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파로)는 지리적 명칭에서 온 것이고, 그리스의 유산으로 우리는 아직도 그 말을 쓰고 있다. - P66

독서는 표정, 태도, 대상, 공간, 재료, 움직임, 빛의 변화를 포함한일종의 제의적 행위다.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독서했는지 상상하려면, 독서라는 내밀한 의식에 진입하는 그 시대의 정황적 그물을 알아야 한다.
두루마리 책을 다루는 건 요즘 책의 페이지를 다루는 것과 다르다. 두루마리를 펼치면 종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인 텍스트 뭉치들이 연이어 눈앞에 나타난다. 독자가 이를 읽어가면서 새로운 글을 보려면 오른손으로 두루마리를 펼쳐가고 왼손으로는 읽은 부분의 두루마리를 말아야 한다. 휴지기와 리듬을 요하는 느린 춤과 같다. 서를 마치면 두루마리는 정반대로 말려 있게 되기 때문에 다음 독자를 위해 두루마리를 되감아둬야 한다. 그런 행위를 하며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을 재현한 도자기나 동상이나 부조가 있다. 서서 읽거나 앉아서 무릎에 책을 놓고 읽는 형상이다. 두 손이 바쁘다. 한 손으로는 두루마리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글을 읽을 때 보이는 몸짓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등을 살짝 구부리며 몸을 웅크린 채 독자는 잠시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눈동자의 움직임에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 - P68

한 무리의 천사들이 1980년대 옷차림을 하고 아무도 모르게 도서관에 들어간다. 브루노 간츠는 넓고 짙은 외투에 목을 덮는 스웨터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었다. 사람은 그들을 볼 수 없기에 천사들은 자유롭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옆에 앉기도 하고 어깨에 손을 올리기도한다. 또 누군가 읽고 있는 책을 엿보기도 한다. 어느 학생의 볼펜을 만지기도 하고 그 작은 물체에서 나오는 모든 말의 미스터리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들은 언어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시선과 얼굴을 흥미롭게 관찰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 순간에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왜 책이 그들을 몰입하게 하는지 알고자 한다.

독서는 내적 소통을, 고독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천사들에게는 놀랍고도 초자연적인 기적 같은 일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독서를 통해 읽은 문장들이 아카펠라나 기도처럼 울려 퍼진다.
영화의 이 장면처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중얼거리는 말로 가득했을 것이다. 고대에는 눈으로 문자를 인식하면 그 문자를 읽으며 텍스트의 리듬을 탔다. 발로는 메트로놈처럼 바닥을 두드렸다. 읽기는듣기였다.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생각해보자. 지금 책을 펼쳐 손에 들고 있는 당신은 신비로운 행동을 하고 있다. 물론 습관이 돼서 스스로하는 일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로부터 독립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며,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글의 흐름을 침묵 속에서 따라가고 있다. 당신은 어느 방에 있을 것이며,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다시 말해 오직 당신만 볼 수 있는 환영(바로 내가 쓴 글이라는 환영)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곳에서 시간은 당신의 호기심 혹은 지루함에 달려 있다. 당신은 영화 장면과 유사한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그 현실은 오직 당신에게 의존적인 현실이다. 당신은 언제든 이 문장에서 눈을 떼고 외부 세계로 들어가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는 당신이 선택한 현실의 가장자리에 머물게 된다. 이 모든 일에는 마술적 아우라가 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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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다르
이봐, 베랑제. 언제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네.
하나의 현상과 그 결과들을 이해하려면, 성실하고 지적인 노력을 통해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그런 식으로 노력해야 해. 우린 생각하는 존재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그 점에 있어서 난 성공하지 못했어. 앞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처음엔 호의적인 예측을 하는게 좋고, 적어도 중립을 지키거나 개방된 생각을 하는 게 좋아. 그게 과학적 사고의 특징이니까 말이야. 모든 게 논리적이지 이해하는 것, 그건 곧 정당화하는 것이지. - P149

뒤다르
너무 확신하는 것 같아.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을 구분할 수 있냐고? 철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아직 없어. 문제를 잘 알고 확신해야지…… - P150

베랑제
내 모습은 아름답지 않아! 아름답지 않아! (그는 그림들을 떼어, 화를 내며 방바닥에 팽개친다. 그리고 거울로 간다.) 아름다운 건 그들이야. 내 생각이 틀렸어! 아!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 불행하게도 내겐 뿔이 없구나! 이 반들반들한 이마, 얼마나 추한 모습인가! 이 축 늘어진 얼굴을 돋 보이도록 한두 개의 뿔이 필요해! 아마 뿔이 돋아나겠지! 그럼 창피하지 않을 거야. 그들도 다시 만날 수 있고…… 그런데 왜 뿔이 나지 않는 걸까? (그는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나의 손바닥은 너무 매끄러워. 손도 꺼칠꺼칠하게 변할까? (그는 저 고리를 벗고 속옷을 펼친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가슴을 본다.) 피부가 너무 부드러워. 아, 이렇게 하얗고 잔털투성이의 몸뚱어리라니! 나도 그들처럼 딱딱하고 멋진 검푸른 색의 피부를 가질 수 있다면! 잔털 없고 품위 있는 맨살이라면! - P186

베랑제
그들을 따라갈걸 그랬어! 지금은 너무 늦었어! 저런, 내가 괴물이라니, 내가 괴물이라니! 원통해, 코뿔소로 변할 수 없다니, 결코, 결코……! 난 변할 수가 없어. 하지만, 코뿔소가 되길 원해! 기꺼이 원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 부끄러워서 내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그는 거울을 등진다.) 내 모습은 얼마나 추한가! 원래의 자기 모습을 지키려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는 갑자기 펄쩍 뛴다.) 아냐, 그럴 순 없어! 난 그들에 맞서 나 자신을 방어할 거야!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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