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읽는 걸 보고 호기심을 느꼈으며 이 사실을 「고백록」에기록했다. 누군가 자기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처음 봤다고 한다. 그는 주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책을 읽는 그의 눈이 페이지를 훑어가며 글을 이해해갔다. 하지만 입은 꾹 다물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교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실은 자기 옆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주교는다른 세계로 달아나 있으며 움직이지도 않은 채 찾을 수 없는 곳을 여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장면은 당황스러웠으며 동시에 그를 매료시켰다. 따라서 당신은 아주 특별한 독자로서 혁신자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것이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당신과 나의 자유롭고 비밀스러운 대화는 엄청난 발명품이다. - P73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소아시아, 페르시아 같은 근동의 가장 오래된 도서관에도 도둑이나 책을 훼손하는 자를 저주하는 말이 있다. "태블릿을 훔치거나 우격다짐으로 가져가거나 노예를 시켜 도둑질하는 자는 샤마쉬가 눈을 뽑고 나부와 니사바가 귀를 멀게 할 것이며 나부가 육신을 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태블릿을 훼손하거나 물에 넣거나 볼 수 없게 지우는 자는 천상과 지상의 신들과 여신들의 무자비한 저주를 받을 것이며 이름과 가문이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고 육신은 개의 먹이가 될 것이다." - P83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대부분의 태블릿들이 화재의 불길 덕에 보존된 것들이다. 그렇게 책은 생존의 역사를 숨기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미케네의 화재, 이집트의 쓰레기장, 베수비오산의 화산 폭발 등, 드물긴 하지만 파괴적 힘이 책을 구한 경우도 있다. - P84
미지의 언어를 해독하려는 사람은 언어의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도 없는 상태에서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다뤄야 한다면 해독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알고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면 길을 잃지 않는다. 미개척 영토의 지도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언어학자들은 로제타석의 그리스어가 고대이집트의 잃어버린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직관했다. 그리고 해독의 모험은 암호 해독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발표된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황금벌레」와코넌 도일의 「춤추는 사람 그림」이 그런 상상력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다. - P89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모든 책이 유일본이었다. 사본을 만들려면 문자를 하나씩 그대로 옮겨 쓰는 인고의 작업을 해야 했다. 사본이 있는 책들은 아주 극소수였으며 특정 텍스트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건 실제적인 위협이었다. 고대에는 하나밖에 없는 판본이 언제든 벌레나 습기에 파괴될 수 있었다. 습기와 벌레가 책을 파먹으면 하나의 목소리가 영원히 사라졌다. - P91
책의 발명은 책의 물질적 측면(내구성, 가격, 저항성, 무게)을 개선하기 위한 시간과의 전투의 역사다. 책이 개선될수록 언어의 생명에 대한 기대 수명은 길어졌다. - P91
태블릿은 보통 사각이었다. 특정적이고 균형 잡힌 사각형은 야릇한 기쁨을 준다. 대부분의 유리창, 진열창, 화면, 사진, 그림이 사각형이다. 책도 여러 실험을 거친 뒤 사각형으로 특정됐다. - P93
이탈리아의 저술가 바스코 프라톨리니(Vasco Pratolini)는 문학이란가죽에 글을 쓰는 일이라고 했다. 비록 양피지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미지는 완벽하다. 새로운 재료가 생산되면서 책은 언어가 입혀진 몸, 가죽에 쓰인 생각이 되었다. - P95
우리의 피부는 종이와 마찬가지다. 몸은 하나의 책이다. 시간은 제역사를 얼굴에, 팔에, 배에, 성기에, 다리에 써 내려간다. 세상에 나온 인간의 배에는 커다란 0, 배꼽이 있다. 그 이후 다른 문자들이 천천히나타난다. 손금, 마침표 같은 주근깨, 의사들이 살을 갈랐다가 꿰맨 뒤에 남는 흔적들.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 주름, 몸의 반점, 혈관의 모양 등이 하나의 삶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을 엮어간다. - P95
어느 날 아흐마토바는 거울 속에서 여윈 얼굴과 고통이 얼굴에 남긴 주름을 보면서 메소포타미아의 오래된 태블릿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슬픈 시구를 남겼다. "이제 나는 어떻게 고통이 내 볼에 거친 쐐기꼴의 페이지를 그려내는지 이해하게 됐다" 나 또한 고통으로 얼굴이 갈기갈기 갈라진 점토판 같은 사람들을 봤다. 아흐마토바의 시를 읽은 뒤로는 고통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에서 아시리아의 태블릿이 떠오르곤 한다. - P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