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거울에 비친 평범한 여인이 고혹적인 미인으로 탈바꿈하는 즐거운 환상을 지켜보았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추함은 뒤늦게 꽃피울 운명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청춘이라는 꼴사나운 미숙함에 가려져 있던 그 추함은 한창 젊을 때 못남의 싹을 틔웠고, 이제 40대 초반의 성숙함을 통해 서서히 꽃을 피우는 중이었으며, 그러면서 오직 쇠락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그윽하고도 화려한 결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울 놀이를 하려는 열성마저 모조리 앗아가 버릴 그 마지막 순간을.
그래서 그녀는 그 놀이를, 거울 속의 여자를 더 열심히 즐겼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옆으로 잡아당겼고, 자신의 상상이 빚어 낸 얼굴을 그 치렁치렁한 숱으로 감쌌다. 집시 여인 같아. 마치 초콜릿 상자 위에 그려진 집시 여인이 되기라도 한 듯, 그녀는 스스로의 애틋함에 취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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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관심을 둘 만한 얘깃거리를 가진다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주디스는 늘 다른 이들이 따분함을 느끼는 일들 속에서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찾아냈다. 가끔은 그 재능이 선물처럼 느껴졌다.외로운 삶을 달래 주는 커다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 선물은 꼭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라면 관심을 끌 만한 화젯거리를 늘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기혼 여성들은 늘 육아나 쇼핑, 살림하는 얘기를 나눴다. 게다가 그들의 남편들도 귀가 솔깃해질 만한 얘기들을 들려줄 터였다. 하지만 미혼 여성은 처지가 달랐다. 사람들은 주디스가 집세나 생활비 등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화젯거리를 찾아야 했고, 그 내용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자기가 아는 사람들, 주변에서 전해 들은 사람들, 거리에서 봤던 사람들, 신문이 나 잡지에서 읽은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한데 모은 다음, 그 뭉텅이를 마치 한 바구니 속에 담긴 실타래들처 럼 꼼꼼히 살펴야 했다. 그렇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골라내고, 다시 그걸 잘 다듬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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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뚱보는 분명 적어도 서른 살일걸. 주디스는 생각했다. 저 남자한테는 뭔가가 있어. 술고래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 어쩌면, 몇몇 엄마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 같은 것.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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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의 얼굴이 다가올 때 눈을 감았다. 똑같은 걸 먹었지만 그래도 나는 맞닿은 입술에서 오이 맛도 양상추 맛도 구별할 수 있다. 젊은 남자의 육체는 단단하면서 동시에 얼마나 부드러운가. 어쩌면 나는 이 녀석을 약간은 사랑하고 있는 걸까. 밤 공기가 효모처럼 감정을 부풀렸는지도 몰라. 입술을 떼고 말없이 눈 아래 펼쳐진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얘와 헤어진다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나가도 이 순간의 느낌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 P168

내가 한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도 내게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반항과 너그러움의 대비로 본다면 틀렸다. 투쟁 없는 관계가 좋은 관계일까. 그건 평화가 아니라 결핍에 가까운 풍경이다. 정상적인 가족이란, 너무 많은 감정들이 원형을 찾을 수 없이 촘촘히 얽힌 낡디낡은 담요 같은 게 아닐까. 화를 내고 미워하다 후회하는, 상처 주고 후련해하다 후회하는, 그런 것들이 없다면 그 담요는 차가운 유리섬유처럼 몸을 찌를 것이다. 뭐랄까, 나는 아버지의 화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결코 깨지지 않는 감정의 균형이 너무 싫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거나 한번쯤 뺨을 때렸다면 지금쯤은 지친 다리를 얼기설기 뻗을 수 있는 담요 같은 관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새삼스레 낡은 담요를 만들기엔 너무 늦었다. - P169

사랑의 비동시성이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 P174

외로움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외로움이란 고독과는 달리 취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고이는 느낌일 텐데. - P178

강아, 사람들은 인생을 통계 내기 좋아하지. 일생 동안 웃는 시간 얼마, 잠 자는 시간 얼마, 먹는 시간 얼마……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걸 알려주는 통계는 없어. 그건 각자의 몫이겠지. 일생 동안 행복했던 순간, 사랑 때문에 가슴 조였던 순간, 혼자 눈물 흘렸던 시 간, 그런 거. 강아, 그러고 보면 내가 나인 순간이 얼마나 될까. 그런 순간이 오기는 하는 걸까. 지금 내가 널 좋아한다는 것, 네가 날 좋아한다는 것. 무언가에 휘둘려 그것마저 놓쳐버린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도대체 뭐가 남을까…… 그리고 지금 네게 가장 중요한 건 이 리포트를 제대로 완성하는 일이야, 이 바보야.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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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혹시 베이킹에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즐기고 있다는 게 든든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지루하다면 지루한 남은 인생에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하나 늘어났다는 건 또 얼마나 좋은가. 밥 하는 건 의무지만 빵은 곁두리가 아닌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래서 여유가 있다. 게다가 부엌에 버터와 치즈와 초콜릿과 레몬 냄새가 풍기면 김치와 된장과 젓갈 같은 음식 냄새를 상쇄해주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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