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수백 년 전부터 괜히 언어의 장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려면 특별한 훈련과 대장장이 같은 체력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상상력이라는 대장간에서 땀을 흘리며, 언어라는 모루 위에서 문장에 망치질을 한다. 작가 지망생이 일용할 양식을 벌 수 있는 곳으로 대장장이의 공방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 P64

장애물경마에서 첫 번째 장애물을 통과한 명마가 두 번째 장애물 앞에서 고민하느라 갑자기 속도를 늦추던가? 당연히 아니다. 첫 번째 장애물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경주의 짜릿함과 천둥 같은 자신의 발굽 소리로 이미 제정신이 아닌 말은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두 번째 장애물에 달려든다. 티모시도 두 번째로 서명을 쓸 때 도덕적인 장애물을 쉽사리 뛰어넘어 트랙을 질주 하면서, 노벨상을 수상한 엘리엇이 쓰고 다니던 테가 두꺼운 안경, 한쪽 옆으로 기울어진 가르마, 그의 유명한 트위드 사랑을 완벽하게 잡아냈다. - P72

길이 갈라질 때마다 왼쪽, 오른쪽, 직진 중 어느 쪽을 택할지 결정하기 위해 젊은이는 어렸을 때 들은 충고나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일, 또는 동전 던지기에 의존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갈림길에서 다음 갈림길까지 나아가는 동안 그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모든 일 중에 완만한 소득 증가보다 더 강력한 것은 별로 없다.
세상이 장원과 오두막으로 나눠져 있던 시대는 이미 먼 과거가 되었다. 대신 우리 시대에는 먹을 것, 입을 것, 거할 곳이 수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팔자를 고치려면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하거나 철도사업에 발을 들여놓아야 했던 반면, 지금은 일주일에 추가 수입이 50달러만 생겨도 사다리를 한 단 더 올라가 조금 더 맛있는 수프, 조금 더 세련된 셔츠, 자연광을 조금 더 받는 거실을 누릴 수 있다. - P73

자신이 익숙한 곳에 들어왔다가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가 갑자기 옆에 나타난 것이 오늘 하루 동안 두 번째라는 사실을 티모시는 놓치지 않았다. 맨해튼 전역의 업체들에 로버트슨 씨나 메티에 씨 같은 사람들이 틀림 없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서서히 깨달을 수 있었다. 맞춤 양복을 차려입고, 몸가짐을 교육받은 그들은 특정한 계층의 고객에게 전문 적인 조언을 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닫힌 문 뒤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이제 티모시도 그 계층에 속하게 된 모양이었다! 이 깨달음이 스테이크와 함께 마신 샤토 마르고 한 병만큼이나 티모시의 머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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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산만함을 극복하려고 과도하게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그 속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적 혼란이나 시련, 심지어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권태 속에서 틀에 박힌 논리적 사고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산만함을 갈망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시간 낭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시인 앤 라우터바흐의 시 「집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 Naming the House」은 집중과 효율의 강요에 저항하면서 한눈에 보기엔 무위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사실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내포한 공간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작은 땅 위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그녀는 생각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지기를 바라니, 모든 것이 밤새 내린 눈에 뒤덮여
지워지고 또 지워지기를.
그녀는 감각에 속박당한 고요한 세계를
찬찬히 살핀다
그녀의 호기심은 어떤 예감 같은 것, 사물들이 결국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에 이름을 붙여 내 것으로 만드는 기쁨을 아는 것. - P134

폴 노스Paul North는 해당 주제에 대해 색다른 관점을 제시 했다. 그는 인간이 "분산"과 "산만함"을 통해 더 고차원적인 능력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데거는 산만해지는 존재, 즉 현존재는 자신의 근본에 대해 사유하는 자유를 누린다고 말했다. 또한 베냐민은 새로운 매체가 인간의 내적 산만함을 부추겨 예술의 정치화를 이끌어낸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두 철학자는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인식을 통합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것을 주기적으로 해체하는 능력이라고 지적했다."
『산만함의 문제The Problem of Distractionl, 스탠퍼드대학교 출판부, 2012. - P147

니콜라스 카는 이렇게 썼다. "모든 산만함이 나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했겠지만, 어려운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사고는 편협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려 애쓰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그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일을 하거나 하룻밤 자고 다시 돌아가면, 대개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고 창의력이 폭발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P147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그림을 그리는 일은 소득 없는 오전 작업을 마무리하는 방법으로는 게으른 것이었지요. 그렇지만 우리 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는 진실은 때때로 게으름 속에서, 몽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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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너에게서 뭔가를 배웠어. 네 앞에서는 좋아하는 것들만 생각하기. 태풍이든 장마든 뭔가 몰아칠 때는 그때야말로 한없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기. 지금 이 순간, 기다릴 만한 것을 기다리기. 아무리 작고 사소하더라도 변화에 민감하기. 비가 그친 뒤 바람의 미세한 변화나 ‘오늘은 산책을 나가도 되지 않을까?‘ 같은 생각들을 흘려보내지 말고 알아차리기.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는 온몸으로 기뻐하기. - P17

네가 떠나고 시간이 지난 뒤, 스물일곱 살에 죽은 일본 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시를 읽은 적이 있어.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

내가 외로울 때,
상관없는 사람은 몰라.

내가 외로울 때,
친구들은 웃어.

나는 네 생각을 했어. 가끔은 나도 네게 상관없는 사람일 수 있었겠고, 웃는 사람일 수 있었겠어서. 웃는 사람은 상관없는 사람, 내가 외로울 때. 이제야 그걸 잘 알겠네. - P18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어릴 때부터 많이 듣던 말이다. 다 거짓말이다. 우리는 싸우면서 쪼그라든다. 서열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니까. 나는 일찌감치 싸움 서열에서 빠졌다. 스스로 나왔다기보다는 탈락했다는 말이 더 맞겠다. 타고난 몸이 싸움에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 역시 1984년 3월 하순에는 누군가와 뒤엉켜 교실 바닥을 굴러야 했다.
그건 쓰나미 같은 것이다. 좋고 싫고, 그런 게 없다. 그저 휩쓸릴 뿐이다. 그렇게 중학생들은 쪼그라든다. - P31

1969년 여름도 지나갔고, 1984년 여름도 지나갔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갔다. 그럼에도 그 레코드판은 그 시절의 상태 그대로,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 노래를 들으니 지난 시절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이렇게 빨리 나이가 들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은 조금씩 무너졌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십대 초반의 나에게 괜찮다고, 그렇게 바뀌어가고, 마음이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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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문제 해결 방식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은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는 최고의 방법은 한가로운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풀기 힘든 문제일수록 그것에 매달려 집착하기보다 잠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때 더욱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노동만큼이나 여가를 중요시한 데이비드 흄은 노동과 휴식, 집중과 산만함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그는 활동하고 집중하는 뇌 영역과 사색하고 휴식하는 뇌 영역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지금껏 푸대접을 받았던 산만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속도를 늦출 것을 제안했다. - P59

버지니아 울프가 몽테뉴의 열렬한 독자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울프는 "우리 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는 진실은 때때로 게으름 속에서, 몽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썼다. 성급하게 변화하려 하기보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사유할 때, 진정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명문장이다. - P65

수전 손태그의 말처럼 그것은 차라리 "주의력 과잉 장애"라고 할 수 있다. 손태그는 여행을 할 때면 글쓰기는 잠시 미뤄둔 채 듣고, 말하고, 풍성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여행 중에는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듣는 것도 좋아한다. 바라보는 것도, 관찰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주의력 과잉 장애‘일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일, 그것이 내겐 가장 쉬운 일이다. - P79

손태그에게 집중이란 정보를 무분별하게 소비하지 않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원치 않으며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창의적인 사고는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발휘된다. - P82

키르케고르가 이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하듯, 집중을 통해 즐거움을 맛보는 비결은 자의적으로 관점을 변경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것, 부적절한 것에서 권태를 물리쳐 줄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다." 장난스럽고 짓궂었던 키르케고르는 지루한 상황에서 유희적 요소를 찾아내며 그 순간을 견뎌냈다. 고루하고 단순한 사고방식을 거부했던 그는 감각적인 경험에 몰입하고 지엽적인 요소들에 집중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이런 방식을 다른 일에도 적용하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 P89

미국 예술 비평가 조너선 크레리는 이런 모순에 대해 "정보통신 시스템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탐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를 한곳에 가두고 고립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때 우리가 느끼는 안정감은 행위와 무위, 연결과 단절이 결합된 결과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그래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여 타인과 교류하는 행위는 종종 원만한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 P98

대개는 집중력을 유지하려는 자기 통제와 산만함을 대립적 개념으로 보지만, 루소는 수면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경험하면서 동시에 거기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낸다. 그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사회와 단절시켰다. 진정한 자아를 되찾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의도적인 고립은 멀티태스킹이나 산만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앞서 언급했듯이, 산만함은 정신을 분산시켜 예상치 못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실제로 루소는 과도한 집중이 아닌 몽상을 통해 자신을 사회적 자아에서 해방시키고 마침내 진정한 자아를 되찾는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은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자발적 고립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단절시켜 자기중심적 생각에 빠지게 하고, 정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만함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더불어 살면서 어떻게 집중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 P101

흄은 과도한 집중이 자기중심적이고 유아론적인 반면, 산만함은 타인과의 유대와 연대를 강화한다고 말했다.

나는 저녁을 먹고, 주사위 놀이를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유쾌하게 서너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시 논리적 사유를 하려고 하면 그것이 너무 냉정하고 억지스러우며 우스꽝스럽게 느껴져서 그 일에 몰두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 그렇지만 내게는 아직 예전의 성향이 남아 있다. 때때로 모든 책과 문서들을 불에 던져버리고 다시는 이성적 사유와 철학을 위해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 P106

그렇다면 우리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때때로 정신을 느슨하게 하고 여유를 가져야 할까? 설정한 목표에 집중하며 단조로운 삶을 살아야 할까, 아니면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야 할까? 앞서 알베르 피에트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산만함이 결점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정신적 기제라고 설명했다. 오직 인간만이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할 수 있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무의미한 생각들을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침팬지나 원숭이와 달리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창의성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해도, 무엇이 문제인가? 중대한 일과 사소한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양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은 약점이 아닌 강점이다. 피에트가 지적한 것처럼,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명백히 약점으로 보이는 산만함은 인간에게 창의성이라는 특성을 부여했다. 이런 창의성은 주의력이 분산될 때 더욱 풍부해지고, 유희적 요소와 비극적 사고를 균형 있게 조화시킨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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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산만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핀잔을 듣는 일이 거의 없었다. 길을 잘못 들거나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 따위는 적어도 문학의 세계에서는 대개 걱정거리라기보다 웃어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예컨대 키르케고르는 산만함을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다양한 면면을 즐거운 마음으로 섬세하게 감지하는 일이라며 예찬했다. 베르그송은 산만함이란 우리의 인식을 날카롭게 벼릴 수 있는 도구라고 말했다. 프루스트는 앞만 보고 곧장 나아갈 때가 아니라 이리저리 방황하고 헤맬 때 비로소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 P27

다윈처럼 돌연 아름다움에 무감해지는 증상을 ‘쾌감상실증‘이라 하는데, 이런 상태에 빠지면 예술을 경험할 때 아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윌리엄 제임스는 「습관의 법칙들」이라는 글에서 이 기이한 증상을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미묘하고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느끼기 위해서는 아무런 목적성 없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것은 곧 습관이 된다고 말했다. 뇌가 음악, 시, 그림과 같이 무용한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이나 정보 탐색에만 몰두하면 감정을 표현하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뇌의 유연성은 퇴행하고 만다. - P33

윌리엄 제임스는 우연히 다윈의 자서전을 읽고 학생들에게 지식 탐구에서 중요한 것은 그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깊고 풍부한 사고를 하려면 감정의 충격파가 집중력을 자극해야 한다. - P33

프랑스 인류학자 알베르 피에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존재 방식은 고릴라나 침팬지와 다르다. 인간은 ‘존재와 부재‘,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동시에 처리하며 일종의 ‘유익한 산만함‘을 실행한다. 이런 ‘불완전한 부분‘ 때문에 인간은 현재 상황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고, 쓸데없는 행동을 하거나 불현듯 딴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 P41

알베르 피에트는 오직 인간만이 한 대상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딴생각에 빠지며, 처음에 품었던 계획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일에는 기꺼이 뒤로 물러설 줄 안다고 말했다. - P43

비극을 겪으면서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산만하다가도 심오한 생각에 빠지는 능력을 갖춘 인간은 진지하면서도 가벼울 수 있고, 무언가에 몰두하다가도 쉽사리 빠져나올 수 있기에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 P43

프랑스인에게 ‘산만한 사람‘은 고루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실히 제 역할을 하기보다 몽상에 빠져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그는 덤벙거리기는 하지만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식된다. 반면 미국인은 산만함을 부정적이고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왜 발터 베냐민이 말한 즐겁고 유쾌한 게으름, "자의적으로 잇따라 일어나는 감각"에 자신을 내맡기는 일에서 그토록 멀어지게 되었을까? - P54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게으름을 휴식의 한 방식으로 보았다. 그는 과도한 집중이 유발하는 긴장감을 해소하고, 세상을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잠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게으름이나 휴식이 수면만큼이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휴식은 "노동이나 쾌락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약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해주고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준다. 게으름은 "만족감을 주기는 하지만 과도한 몰입으로 결국 정신을 지치게 하는 활동"에 제동을 걸어 집중과 휴식의 균형을 맞춰준다. 따라서 산만함은 악덕이 아니라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산만함이 없으면 정신은 결코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없고, "그 가능성과 역량"을 확장할 수도 없다. - P55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산만함과 집중력의 상호작용, 그 열려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말과 담론이 통제 없이 자유롭게 오가며 사람들을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게 할 때, 민족, 자유, 평등과 같은 몇몇 단어들은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유롭게 부유하는 말과 생각의 세계에서 우리는 디지털 기기가 유발하는 산만함과는 전혀 다른 산만함을 경험한다. 이런 산만함의 세계는 우리를 여러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데, 이때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을 얻을 수 없다 해도, 각각의 방향에서 깊이 있는 사유를 하게 된다. 이런 긍정적인 산만함의 핵심은 바로 만족 지연에 있다. 미래의 더 큰 만족을 위해 현재의 즉각적인 즐거움을 뒤로 미룰 때,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자유롭게 순환한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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