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너에게서 뭔가를 배웠어. 네 앞에서는 좋아하는 것들만 생각하기. 태풍이든 장마든 뭔가 몰아칠 때는 그때야말로 한없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기. 지금 이 순간, 기다릴 만한 것을 기다리기. 아무리 작고 사소하더라도 변화에 민감하기. 비가 그친 뒤 바람의 미세한 변화나 ‘오늘은 산책을 나가도 되지 않을까?‘ 같은 생각들을 흘려보내지 말고 알아차리기.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는 온몸으로 기뻐하기. - P17

네가 떠나고 시간이 지난 뒤, 스물일곱 살에 죽은 일본 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시를 읽은 적이 있어.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

내가 외로울 때,
상관없는 사람은 몰라.

내가 외로울 때,
친구들은 웃어.

나는 네 생각을 했어. 가끔은 나도 네게 상관없는 사람일 수 있었겠고, 웃는 사람일 수 있었겠어서. 웃는 사람은 상관없는 사람, 내가 외로울 때. 이제야 그걸 잘 알겠네. - P18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어릴 때부터 많이 듣던 말이다. 다 거짓말이다. 우리는 싸우면서 쪼그라든다. 서열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니까. 나는 일찌감치 싸움 서열에서 빠졌다. 스스로 나왔다기보다는 탈락했다는 말이 더 맞겠다. 타고난 몸이 싸움에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 역시 1984년 3월 하순에는 누군가와 뒤엉켜 교실 바닥을 굴러야 했다.
그건 쓰나미 같은 것이다. 좋고 싫고, 그런 게 없다. 그저 휩쓸릴 뿐이다. 그렇게 중학생들은 쪼그라든다. - P31

1969년 여름도 지나갔고, 1984년 여름도 지나갔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갔다. 그럼에도 그 레코드판은 그 시절의 상태 그대로,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 노래를 들으니 지난 시절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이렇게 빨리 나이가 들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은 조금씩 무너졌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십대 초반의 나에게 괜찮다고, 그렇게 바뀌어가고, 마음이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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