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어떻게 아이콘이 되는가 - 성공으로 가는 문화 마케팅 전략
더글라스 B. 홀트 지음, 윤덕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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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로레알 마케팅 석좌교수로 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켈로그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Ph.D.)를 받았으며 시카고 대학교에서 MBA,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Journal of Consumer Culture의 편집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밖에 문화와 사회학적 관점에서 소비와 브랜드에 대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고객 명단만 보아도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 조지아 커피 등 저자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왜 어떤 브랜드는 역사가 되고, 어떤 브랜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책의 핵심을 아우르는 질문이다. 세상에 수많은 브랜드가 탄생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시간이 지나도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를 아이코닉 브랜드라고 한다. 패스트푸드를 먹는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코카콜라일 것이다. 스마트폰이라고 하면 애플이, 이어폰을 떠올릴 때 우리는 에어팟을 생각한다. 셀룰러폰의 공룡 노키아가 장난감이라 치부하던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은 전 세계의 문화로 정착했다.

 



항상 검은색 목티에 청바지를 입고 나와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스티브 잡스가 떠오른다. 그가 그 자리에 설 때면 제품의 기능적인 설명보다 이 기기가 어떻게 여러분의 생활을 바꿀 것인가에 관해 설명했다. CPU가 어떻고, 메모리가 어떻고 기계적인 제품의 사양이 아니라, 여러분의 생활을 새롭게 인도한다는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설명했다. 그 방법은 주요했고, 시대의 문화는 바뀌어 버렸다. 그게 채 15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그 짧은 시간에 세상은 작은 스마트폰이 주도하는 곳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팔리는 브랜드가 되려면 상품이 아닌 문화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아이코닉 브랜드는 문화 행동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많은 회사가 나이키, 버드와이저, 마운틴듀 같은 브랜드를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은 문화 현상에 파생된 것들을 반사적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조직할 뿐이다. 저자는 브랜드 매니저들이 바로 지금 현재의 모습 또는 이미지를 구상하려고 하는 점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고 있다. 지금 현재의 문화는 이미 만들어져 있으므로, 개인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화 행동주의자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래서 기업은 개인 소비자들에 대한 지식보다는 문화 지식을 모아야 하고, 실제적인 문화를 창출하는 문화 행동주의자를 고용하고 훈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책은 브랜드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전략, 방법, 문화,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책을 읽고 나면 마치 전공 서적 한 권을 읽어 낸 기분이다. 전문적인 용어도 많이 나오지만, 기업들의 사례를 들어 비전공자들에게도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다. 연륜에서 묻어나는 저자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브랜드 단순히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량생산의 시대에서 맞춤 생산의 시대로 이제 변하고 있다. 같은 제품을 소비하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각자의 개성을 추구한다. 그 시대에서 기업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이미 수많은 방송 크레이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도 하나의 아이코닉 브랜드인 셈이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경쟁을 논외로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브랜드의 가치를 이해하고 방법이 준비되어야 한다. 노래방이 들어온 지가 30년이 넘었고 시장이 포화상태이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문화를 창출하고 브랜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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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변호사로 살아가기
이광웅 지음 / 부크크(bookk)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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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5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47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현직 변호사이다. 비법조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중고등학교에 출강하여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학생들과 소통하는 중이다. 책은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은 고민을 엮은 책이다.

 


변호사법1(변호사의 사명)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 변호사란 법을 다루는 실무가로서, 형사소송에서 피고인 등을 위해 변호해주거나, 민사소송·행정소송 등에서 당사자들의 대리하여 수행하거나 법률 조언을 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말한다. 변호사가 필요한 이유는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소송당사자가 법정에서는 매우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05년 변호사법이 시행된 이후로 100년의 역사를 맞이한다. 그동안 숱한 변호사들이 나왔고, 판검사에 가려있던 변호사라는 직업의 위상과 역할도 아주 많이 커졌다. 전직 대통령(노무현)과 현직 대통령(문재인)도 변호사 출신인 것만으로도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대한민국에서 변호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말일까?


 

여러 이야기 중에서 변호사는 돈이 아닌 신뢰를 얻어야 한다.’를 소개하고 싶다.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면한 현상을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부당거래에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변호사 : 제가 많이 좀 바빠가지고... 경찰 조사 때는 참석 못 했습니다. 이해하시고요. 제가 어쨌든 이동석 씨 국선 변호인이고요. , 법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제가 뭐. 크게 도움이 되겠어요? , 어쩔 수 없이 지은 죄질이 죄질이라. 변호사 : 그리고 뭐 법적으로 도움이 더 필요하면 얘기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별로 없겠지만. 변호사 : 그러면? 국선 아니면? 내가 정신 나갔습니까? 당신 같은 사람 변호하게?! 변호사 : (귀찮은) 아이고, 뭐가 그럴 리 없어요? 제가 국선 변호하면 얼마 받는 줄 아세요? 30만 원 받아요, 30만 원! 그럴 리 없으면은 돈 많이 주고 좋은 변호사 선임하세요. ? 변호사 : (귀찮은) 정신 감정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

 


무엇이 느껴지는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변호사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법적 자문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면 가장 먼저 사무장에게서 비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관문을 통과해야 겨우 변호사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변호사는 돈만 지급하면 선임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변호사가 어떤 기준으로 의뢰인을 대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자는 거의 없다. 변호사가 돈만 밝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영화도 적지 않고, 이렇게 부정적인 시선으로 변호사를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선택하는 문제가 중차대한 문제인 것처럼 변호사 역시 의뢰인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한 문제인다. 사건의 처리를 요청하는 사람으로부터 반드시 신뢰를 얻어야 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다. 의뢰인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하는 사람이다. 이 시원한 사이다 같은 말을 대한민국의 모든 변호사가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 변호사가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법조인의 앞엔 항상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이 나온다. 기소하는 검사와 판결하는 판사뿐만 아니라 변호사도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것이다. 책을 통해 저자가 같은 변호사와 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충분히 알게 되었다.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 현실에서의 부정적인 변호사의 이미지를 벗고 좀 더 새롭게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약자들을 위해서 훌륭한 변호를 부탁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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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1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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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18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19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창세기 215~19>


 



태초에 땅의 주인은 하느님이었다. 인간은 그 관리를 맡았을 뿐이다. 인간은 그 땅을 쪼개어 자기 이름을 갖다 붙였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산부인과 병원장의 자녀가 아닌 이상 타인의 땅에서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땅이 없는 비참한 채로 말이다. 오래전에는 모두가 자유로이 땅을 왕래했다. 힘이 센 자가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땅에다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힘센 자의 옆에서 아첨꾼들이 귀족이라 칭하며 그 땅을 나눠 받았다. 그렇게 수천 년을 주인행세 하던 그들은 계몽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이 부르주아이다. 지금은 자본주의의 시대이다. 자본가들이 땅에다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땅을 걷는 자에게 통행료를 걷고 있다. 21세기 이전의 발전은 수백 년이 걸렸다. 21세기는 1년이 기존의 백 년만큼이나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되었고, 인간들은 자신의 지식을 다 같이 공유하게 되었다. 땅 주인 행세하는 인간들과 가지지 못한 자의 전쟁은 이제 시작되었다. 과거의 역사는 경험론적으로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1% 미치지 못하는 가진 자가 99%의 인간들을 가혹하게 착취하였을 때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말이다. 땅에는 주인이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땅은 땀 흘려 일하는 자들이 사용해야 할 장소일 뿐이다. 그곳에 흙과 돌로 건물을 짓고, 통행료와 사용료를 받는 것은 죄악이다. 가난한 자들이 왜 천국에 갈 수 없는가? 그것은 조물주 위에 존재하는 건물주가 그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에는 사말(四末)교리(죽음, 심판, 지옥, 천국)가 있다. 하느님의 숨으로 빚어 만들어진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영원한 삶을 잃고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자 삶을 심판받아 지옥이나 천국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죽음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니, 이는 인간이 어둠을 극복하였듯이 죽음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책에서 말하고 있는 부활이다. 이전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이다. 지옥과 천국은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옥은 스스로가 하느님을 거부하고 가는 곳이라고 한다. 즉 두 장소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상태이기도 하다.

 




길고양이의 고단한 삶을 본 적이 있는가? 야생에서의 고양이는 20년 가까이 산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에서의 수명은 1~2년이 채 안 된다. 그것도 살아남았을 때 말이다. 밤에 시끄럽게 울어대고, 오물만 남기는 혐오스러운 존재로만 인식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작대기로 쫓아내고, 쥐약을 풀어 죽이고, 사로잡아 즙을 낸다. 어느 봄날 집안 마당으로 어미와 새끼 두 마리가 들어왔다. 보통의 길고양이들은 사람을 피한다. 그러나 나를 보는 눈빛은 공포를 넘어선 살려달라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때부터 집 한편에 사료를 놓아두고, 매일 깨끗한 물을 두었다. 새끼들을 돌볼 때는 근처에 가지 않았다.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에는 창고 문을 살짝 열어두고 담요로 잠자리를 만들어 두었다. 길고양이에게 물은 생존의 필수품이다. 항상 얼지 않게 핫팩으로 물을 데워놓았다. 다시 봄이 왔다. 두 마리의 새끼는 무사히 성장했고, 어미는 사람들이 주는 지역을 밥자리라고 하는데, 그것을 새끼에게 양보하고 다시 험한 세상으로 떠난다. 그것이 길고양이의 모성애이다. 사람은 길고양이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먹이와 잠자리를 주면서 그들의 고단한 삶을 따라가며 알아볼 수 있다. 슬퍼할 수 있고 눈물 흘릴 수 있다. 네흘류도프는 그렇게 시베리아행 행렬을 따르며 농민들의 고단하고 비상식적인 삶을 알게 되었다. 까쥬사를 사랑한 시몬손은 자신의 자리를 버리고 직접 농민이 되어 감옥으로 잡혀들어왔다. 이것이 둘의 차이다.

 


<민중은 죽어 가고, 자신들의 죽음에 익숙해 있으며, 그들 사이에는 죽음이 내재한 생활 방식이 형성되어 있구나, 아이들의 죽음과 여인들의 과도한 노동과 모든 사람의, 특히 노인들의 굶주림이 바로 그건 아닌가. 민중은 아주 조금씩 그런 상태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두려움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또 그것에 대해 불평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상태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 동물 모두의 것이었다. 그것을 인간이 죄 없는 길고양이를 범죄자로 만든 것이다. 100년 전의 부르주아나 자본가의 탈을 쓰고 있는 지금의 건물주 또한 변한 것이 전혀 없다.

 




이 책에서 온전하게 부활하는 사람은 까쥬사 한 명뿐이다. 천국과 지옥은 장소와 상태 둘 다 의미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죄는 내가 짓고, 벌은 그녀가 받기 때문입니다.> 네홀류도프는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까쥬사를 불쌍하게 생각하지만 사랑은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농민이 아니고 귀족의 생태가 이미 뿌리 박혀있기 때문이다. 수년간 남자들에게 몸을 팔아온 까쥬사를 결코 사랑할 수는 없었다. 하늘에서 와인을 따르면 스튜어디스라고 부른다. 지상에서 위스키를 따르면 작부라고 부르며 천대한다. 사람이 직업을 가지면서 자신의 노동과 뇌의 지식을 팔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몸을 판다. 그것에 귀하고 천한 것이 어디 있는가? 그것을 정한 것은 1% 안 되는 가진 자들이다. 1% 안 되는 자들 가운데 법조인들은 몸뿐만 아니라, 그들의 양심까지 판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다. ‘연탄재 차지 마라. 당신은 한 번이라도 누구를 따뜻하게 해준 적이 있나?’ 이때의 비양심적인 법조인보다 지금은 양심과 상식 자체가 없는 자본의 노예만이 존재한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80의 나이로 농민이 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폐렴으로 죽게 된다. 그 안타까운 마음과 심정을 담아 네홀류도프에게 자신을 투영했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삶은 끝났으나 주인공의 삶은 독자로 인하여 끝나지 않았다. 수십년의 삶의 더 남은 네홀류도프는 결국은 농민이 되어 온전한 부활을 하게 될 것이다. 까쥬사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왜 그녀만 온전히 부활했을까? 까쥬사는 몸을 팔 때도 남자들을 위로해준다는 모호한 보람이 있었다. 감옥에 있을 때도 다른 이들에게 친절했고, 억울한 자들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상태는 겁탈당한 그 날의 기억에서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반성을 하고 자신과 결혼을 하겠다는 네홀류도프를 보면서, 자신을 사랑할 순 없지만 애쓰는 모습에 청년 시절의 순수한 그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겁탈한 것은 욕망에 물든 악마가 아니라, 순수한 사랑이었다고 스스로 믿게 되고, 그를 사랑했던 그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까쥬사의 공간은 감옥으로 변함이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의 상태는 이미 변했다. 부할은 처음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까쥬사는 부활할 수 있었다.

 


<인간의 내면에는 추악한 야수성이 꿈틀거리지만, 야수성이 그대로 드러날 때 정신생활의 높은 자리에서 그것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내한다면 원래의 모습대로 남을 수 있어. 하지만 야수성이 미적, 시적 감정이라는 가식적인 외피를 쓰고 경배받기를 요구한다면 그 야수성을 숭배하게 되고 거기에 빠져들어 선악의 구별도 할 수 없게 되지.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야> 인간보다 야수에 가까운 법 집행자들은 이 책에서 그 누구도 부활하지 못한다. 또한, 죄없이 갇힌 농민들도 죽음을 맞이하거나, 지옥의 공간에 그대로 있거나, 부활하지 못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40) 주일마다 예배를 나가는 그들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자신의 상태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코 부활할 수 없다. 다시 한번 세상의 공동체에 어떤 마음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많은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불러온 훌륭한 책을 번역 출판해 준 열린책들 출판사에 고마움을 표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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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을 읽는 기술 - 문학의 줄기를 잡다
박경서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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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연구로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영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번역가이자 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열린책들 창간 35주년을 기념하여 중단편 시리즈가 출간되었는데, 발맞추어 출간되어 너무 반가운 책이다.

 


NOON 세트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MIDNIGHT 세트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는데, 본문에서 세 작품이나 해설하고 있다. 그래서 시리즈를 읽기 전에 아주 기대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책 소개처럼 그림, 음악, 책은 배경을 알면 더 재미있다. 혹은 그 뒷이야기를 알았을 때 반전의 재미도 있다. 고전을 읽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중세의 서양 고전을 읽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의 지식이 필수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칸트같은 특별한 무신론자는 빼고서라도 말이다. 그와 더불어 현대사회의 시점이 아닌 당시의 신분제, 상공업, 국가 간의 분쟁 등 통합적인 이해가 있을 때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괴테 베르테르의 슬픔을 이야기해 보자. 유부녀를 사랑하고 이루지 못해 자살을 끝을 내는 이야기다. 현재의 시점으로 보자면 사랑은 죄가 아니잖아라는 그냥 아주 흔히 접하는 이야기 소재이다. 그러나 괴테가 살던 당시의 엄격한 가톨릭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못 할 파격적인 이야기였다. 그 시대를 이해하지 않고 지금 읽는다면 머 이런 내용이 천재의 소설인가? 라는 의문도 생길지 모른다.

 



책은 역사의 흐름대로 문학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고대의 플라톤부터 고전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표적인 문학들을 설명하고 있다. 1부는 시대상이 문학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말하고, 2부는 문학의 표현 방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제일 많은 비중을 두는 3부는 문학이 삶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노인과 바다, 이방인, 위대한 유산 이런 제목만 보아도 어떠한 이야기가 중심인지를 알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괴테와 니체의 작품이 실려있어서 너무 좋았고, 위대한 유산, 위대한 개츠비 또한 너무 좋았다. 특히 두 작품 같은 경우는 워낙 영화로도 성공한 작품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이 중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저자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알아보자. 지독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하는 개츠비는 데이지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비현실적인 선택까지 보여준다. 돈을 위해서는 사랑을 버리는 나는 톰을 사랑하고 개츠비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이지.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면서 현재의 상식으로 보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1920년대 아메리칸 드림과 정신보다 물질이 위대하다 여기던 시대상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개츠비의 끝도 없는 순수한 사랑이 위대한 것인가? 개츠비의 그 화려한 자동차와 돈이 위대한 것인가? 소설은 재미가 먼저인가? 작가의 문학적 메시지가 먼저인가? 모든 배경지식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한 다음 독자에게 이러한 질문을 남긴다. 나는 벌써 대답했다. 다음 대답은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의 몫일 것이다. 천명의 독자에게는 천 가지의 생각이 있으니 말이다.

 



소설이 아니라 교양서적인데 이렇게 재미있는 경우는 또 오랜만이었다. 저자의 배경 설명에서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고, 저자의 풀이에 고개를 끄덕이고, 또 다른 풀이에는 반대도 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독서토론 모임을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면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것이 너무 즐거웠는데, 요즘은 혼자 읽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나에게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책과 대화를 해보았는가? 이 책은 그게 가능하다. 가장 최근에 열린책들의 부활을 읽었다. 읽는 내내 20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종교와 1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사법체계를 보면서 문학이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2편을 내심 기대하게 된다. 작가의 문학적 메시지가 있는 책들도 살펴봐 줬으면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더불어 꾸준히 인문과 고전을 출간해주는 열린책들 출판사에 고마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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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
알랭 제르보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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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제르보는 프랑스의 신화적인 국민 영웅이다.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젊은 시절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하고, 축구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또한, 1차 세계대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뛰어난 무공을 세웠다. 무엇보다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조그마한 돛배로 세계 일주 단독 항해에 성공하는 초인적인 성과를 남겼다. 이 책은 세계 일주 단독 항해의 일기이자, 그가 사랑한 남태평양의 섬과 사람, 삶과 풍속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해양 다큐멘터리 문학의 세계적 걸작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자, 트로이전쟁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트로이를 함락시킨 이타카의 왕이자 영웅이다. 트로이전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전술적인 승리를 거둔 아킬레우스보다, 연합군을 단합시키고 중재하고 그리스군 최고의 지략가로 전략적인 승리를 거두게 힘쓴 오디세우스의 역할이 크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목마를 고안해 성안으로 침투한 지략을 짜낸 것도 바로 오디세우스다. 어린 시절 우주 선장 율리시스를 아주 재미있게 챙겨본 기억도 난다. 이 애니의 모티브가 오디세우스이기 때문이다. 이 대단한 지략가의 험난한 귀향기를 다룬 대서사시를 돛단배 하나로 20세기 다시 쓴 저자는 정말 대단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지금의 기술로도 세계 단독일주는 정말 험난한 여정이다. 100년 전의 기술은 그의 항해에 크게 도움 되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소개처럼 초인적인 의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 험난한 항해를 하면서도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기고 여유를 즐긴 것을 보면 멋있다는 말밖엔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처음에 나오는 배의 입면도와 세계지도를 보면서, 인공위성도 없이 나침반 하나만으로 세계 일주가 가능한가 싶었다. 흑백사진으로 보이는 요트 또한 튼튼하고 편리하게 보이지 않았다. 겁이 없는 것인지, 너무나 용감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진에서는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용감한 것이 맞을 것이다. 항해지도를 보면 영국에서 출발해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태평양, 인도양을 횡단하여 파나마로 향한다. 거기서 대서양을 횡단 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 머나먼 여정이다. 책은 남태평양의 무수히 많은 섬을 방문하며 100년 전의 원주민들의 이야기들도 실려있다. 저자의 사진과 글 속에서 신기함보다는 애정이 많이 느껴졌다. 좋아하고 원하는 일에 웃으면서 목숨을 걸 수 있는 저자가 너무 부러운 부분이었다. 로빈슨 크루소를 보면 식인종도 많던데, 저자는 안 무서웠을까?


 

책은 삽화와 읽기 쉬운 활자로 빠르게 읽어진다. 저자의 항해를 따라가려면 숨을 멈추고 페이지를 넘겨야 할 만큼 몰입이 잘 된다. 그러다가 정박한 곳에서 이야기를 볼 때는 같이 쉬면서 숨을 쉴 수가 있다. 오디세우스가 신화라면 알랭 제르보의 항해는 실제 이야기다. 그래서 더욱 박진감과 긴장감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생에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일에 저자처럼 용기를 내어 실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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