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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맨발 / 한승원 / 불광출판사 >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수없이 침략받고 지배당하고 타국을 숭배하고 그 문화속에서 한국은 얼마만큼이나 살아남았고 얼마만큼 휩쓸려나갔을까.


 

이 책은 한국사람이 쓴 불교이야기이다. 이 땅은 많은 시간 불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가 세워졌었다. 어떤 배경지식으로 무슨 불교이야기를 꺼낼까. 왜 싯다르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오늘날 한국에 싯다르타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








 

<밤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 코넬 울리히 / 이은경 옮김 / 단숨>

천개의 눈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 어떻게 눈을 천개나 갖게 되었나요?

제목이, 표지가 맘에 든다. 

서스펜스 미스터리로 분류되는 책이다.

히치콕의 영화를 보았는가? 처음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히치콕은 영화의 처음 걸음마를 뗀 사람이다. 많은 영화인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의 인식은 발명품이었다. 그 히치콕이 영감을 얻은 책이라는데.. 정말로?


이 안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한다. 책의 내용이 기대된다.






<이런이야기 / 알렉산드로 바리코 / 이세욱 옮김 / 비체>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한 마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의 성격을 이해하는 일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역사는 ‘히스토리 채널’에서 볼 수 있는 역사보다는 조금 덜 사실적이고, 《백년의 고독》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더 사실적이다. (따지고 보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것과 순전한 허구 사이의 경계가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경계선이 초현실주의적인 굴곡을 보이기도 한다.)

백년의고독보다 사실적인 소설?



<얼간이 윌슨 / 마크트웨인 / 김명환옮김 / 창비>

마크트웨인이 쓴 글은 허클배리 핀의 모험, 톰소여의 모험밖에 안 읽어봤는데.

얼간이 윌슨은 재미있을까요? 제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인종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까요? 이 책을 읽으면 인종이 다른 것이 어색하고 부담스럽고 싫은, 부당한 나를 증오할 수 있나요? 부조리함을 부조리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나라는 인간은 몸으로 체험하지 않고 머리로만 이해하고서는 행동이 되지 않아서, 더더욱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이야기는 마치 내가 체험하는 듯 모든 수치와 모욕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느리게 배우는 사람 / 토마스 핀천 / 박인찬 / 창비>

작가가 관념적이라 말하는 글이 독자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준다면,

좋은 글 아닌가? 보통 작가가 공들여 썼는데 너무 관념적이라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 경우 비극이 벌어지는데, 이 책은 작가 생각보다 잘 읽히는 책인가보다.


작가를 믿는다. 그가 지우지 않은 유치함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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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 토마스 베른하르트 /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때때로 나는 느낀다. 내가 스스로를 이상적인 사람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삶을 살아가는 데 어느 정도 자존감은 필요하지만, 병든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시간도 스스로를 꿈으로부터 일깨우려면 필요하다. 이 책이 무척 끌린다. 제도가 해결 할 수 없는 인간의 비인간적인 모습은 나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라고 해서 도덕적인 삶을 살기만 한 것은 아닌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글쓰기를 버텨왔을까 그 속이 궁금하다. 이것은 어느정도까지 소설화되어 있을까? 소설로서 가치가 있는 작품일까?

< 이 소설은 12년간 죽음에 하루하루 가까워져 가는 한 친구와 그 친구가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친구 사이에 아주 힘겹게 지속되는 기이한 우정을 다룬다. 

자신을 고립과 자살충동으로부터 구했던 친구가 빈털터리가 되어 늙고 병들고 외롭게 죽어갔던 삶을 되돌아보면서, 베른하르트는 12년 동안 죽어가는 친구로부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에너지를 빨아내고 있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 일부 >



<비극의 탄생 - 프리드리히 니체 / 김남우 옮김 / 열린 책들>


 책 소개글에 호기심이 갔다.  

<희랍 비극의 근원이라는 고전 문헌학적 주제를 다룬 『비극의 탄생』은 니체가 바젤 대학 교수로 있던 1872년에 발표한 저술로 당시 고전 문헌학자들로부터 철저한 외면에 이어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비판의 초점은 『비극의 탄생』이 고전 문헌학적 저작이라기보다는 철학적 사변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었다.... 희랍 문명에 대한 니체의 통찰에서 20세기 지성들은 근대 서구 문명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방법을 찾았으며,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 일부>


니체의 책들은 리스트에만 있고 실제로 읽지 않았다. 사실 나는 그가 왜 유명한 지도 자세히 모르는 셈이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을 판단하는 수많은 글들이 그의 진짜 진가를 알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치 않는다. 다만 그가 서양인으로서 희랍 문명을 어떻게 통찰했는지 궁금하다. 고전 문헌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요소가 뭐였을까. 뭐라고 비판했길래 그들이 기득권을 잃을까 겁이 났던 걸까? 정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버금갈만한 저작인가? 궁금하다.




<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 허버트 조지 웰스 / 최용준 옮김 / 현대문학>


작가가 직접 고른 단편이라니 더 끌린다.

생각할 수 있는 책이 좋다. 책 내용 일부를 훑어보니 이상한 말들이 우스워서 생각하게 된다. 그게 좋다.

“과학은 체계적 지식이에요. 체계에 들어오지 않는 생각은…… 어쨌거나 부정확한 생각인 게 분명합니다.” 힐은 자기가 말하고도 이게 현명한 말인지 우둔한 말인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청중은 힐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 힐이 유물론자냐 아니냐 하는 겁니다.” 곱사등이가 무턱대고 말했다. 

“물질을 초월한 게 하나 있죠.” 힐이 즉각 말했고 이번엔 자기가 훨씬 그럴듯한 말을 했다고 느꼈으며, 등 뒤 문간에 누가 있는 것도 인식했기에 그 여자를 위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바로, 물질을 초월하는 뭔가가 있다는 망상입니다.” - 「현미경 아래의 슬라이드」





<목신 판 - 크누트 함순 / 김석희 옮김 / 시공사>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않은 수많은 훌륭한 도서들 중 하나를 번역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골랐다. 작가가 노벨상 수상자라고... "행복한 그림자의 춤"과 "내 이름은 빨강" ,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책들 때문에, 요새 들어서 노벨상 받은 번역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재미와 철학이 담긴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특히 그가 심리의 '우연성'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요즘들어 우연성과 필연성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 어떤 순간에 놓여있을 때 지나가고 나면 필연이 되어 버리는 우연들이 어떻게 관계를 이루고 있을지, 관계가 없는 것들을 어떻게 관계 안에 묶어 냈을지. 또한 책을 통틀어 그가 문학으로 세상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 지...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아... 제발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기를. 책 소개만 봐서는 감이 잘 안온다. 철학으로 꽉꽉 들어찼지만 재미도 있는 경이로운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진부하게 감정을 늘어놓는 소설이나 한 순간 판타지를 채우고 사라지는 소설은 읽고 싶지 않아서... 그래도 노벨상 받은 작가가 진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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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열린책들 세계문학 147
쥘 베른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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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문학과의 경계, 그 사이에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을까.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작가가 탄탄한 조사로 쌓아올린 내용을 밑바탕으로 써내려간 재미있는 작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미건조해보이는 영국의 신사가, 세상이 좁다는 이야기를 꺼내서 세계일주를 80일 안에 할 수 있다는 내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의 처음이 시작된다. 여행 중간 중간 방해요소들이 여럿 등장하고, 여행의 성공여부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다가와서 소설의 끝머리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이 소설의 재미있는 점은, 작가가 그 시대에 80일 간의 세계일주를 성공시키기 위해 사용한 여러가지 방법들이다. 현지를 조사하지 않고서는 알아낼 수 없을 듯한 요소들이 여럿 등장하여 주인공을 돕거나 방해한다.

또한 정형화된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들이 소설 내에서 부여받은 역할은 역설적이게도 본연의 목적과는 반대의 것들이 되기 일쑤여서, 표면은 고요하지만 우왕좌왕하는 캐릭터들의 행동들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에 관한 설명들이 소설의 중간중간에 나와서 캐릭터를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되는데, 한국에 태어나 살아서인지 다르게 비추어져서 눈에 어설프게 자꾸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부분들을 제외하면, 꽤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지금이야 과학이 많이 발전해서 80일보다 더 빠르게 세계일주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가 그 소설을 쓸 당시에는 80일 만에 세계일주가 가능하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이었을까! 그가 신문에 나온 가설을 실현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이야기 속에 녹여내기 위해 사용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탄탄한 조사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서재에서 11시까지 원고를 쓰고 수정하고,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서재로 돌아와 열 다섯종의 신문을 읽고, 여러 잡지, 과학 협회와 지리 협회의 정기 간행물을 읽으며 필요한 정보를 수첩에 적는다. 이와 함께 자크 아라고(Jacques Arago)를 비롯한 여러 모험가의 글과 백과사전, 과학자와 지리학자와 교유하면 나눈 대화 등 작품에 참고할 만한 내용을 간추린 노트만 해도 2만 권이 넘었다.(-열린책들 "80일간의 세계일주" 역자 해설 중)"

내가 감동했던 부분은, 바로 그 '노력'부분이었다. 그가 소설을 쓰려고 2만권의 노트를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작품을 쓰려고 수집한 내용의 방대함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와 동시에, 내 안에 주체할 수 없이 쌓아올려진 허영의 잔존하는 찌꺼기들을 몰아낼 길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내가 작품을 쓰려면 재능이 필요하지만, 내게는 그 재능이 없는 기분이 들어서 늘 우울했다. 하지만 객관적인 자료와 현실적이고 현재적인 문제는 재쳐두고, 매번 스스로를 기만하는 거짓말을 했다. 내게는 재능이 있으며, 언젠가는 그 재능이 빛을 발할 것이다 라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늘상 느꼈다. 나는 여기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글들만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마다 나는 감히 내가 어깨를 견주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무시하고 깍아내렸다. 그러고 나니 내 존재가치도 덩달아 무가치해졌다.

그들이 나라는 개체에게 무가치하든, 인정받지 못하든, 나라는 존재개체에게 영향을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개체는 '나'밖에 인식하지 못하므로, 그들의 훌륭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내 자신을 기만해도 그를 뛰어넘기는 커녕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쥘 베른도, 2만권의 노트를 생산해내며 글을 써냈는데, 나는 어느정도까지 노력을 했던가.

내가 할 일은 이래도 저래도 노력하는 것 뿐이었다. 짬짬이 글을 쓰고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라는 개체에게는 그 자체로 축복이 아닌가! 훌륭한 작품들을 가슴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닌가! 그에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그가 그 작품을 쓰지 않았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던가. 위대한 작가들의 훌륭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에 심취해서 가슴벅차할 수 있어서, 삭막한 '나'의 세계를 견디고, 버텨온 것을.

그를 깨닫게 해줘서, 또한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서 어린 시절을 꿈으로 넘치는 나날로 보내게 해주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진기한 여행에 몰입하게 해줘서 나는 쥘 베른에게 감사한다.

글의 초반에, 과학과 문학과의 경계가 어느정도 일지 질문했었다. 나는 과학을 믿지만, 과학적이지 않은 것도 믿는다. 과학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고, 완벽성을 추구함에도 불확실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불확실한 것들을 다루지만, 인간을 가장 닮았기 때문에 때때로 객관적일 수 있다.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그 '양면성의 총체'라는 측면 때문이기도 하다. 중용에 가장 가까운 개체가 예술이라고 나는 믿기에, 예술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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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동양고전 슬기바다 1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 홍익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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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래의 내용처럼 이 책이 불변의 어쩌고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 안 한다. 내게 이 책이 필요했던 건 맞지만, 아무 의미없이 내던져진 사람이, 질서를 다시 세우고 싶었던 시기에 읽었고 마침 필요했던 내용을 읽어냈다. 사람들이 인용하고 좋아하는 바와 같을지 다를지 지금 적은 내용으로는 도통 알 수가 없고 다시 펼쳐 확인해야 하는데 귀찮다. 거슬리는 것 없이 편안하게 받아들였던 것 중 하나는 장님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였다. 장님이 최대한 불편함이 없게 하는 것을 우선적인 규칙으로 삼아 행동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게 멋있었다. 대충 여성혐오적인 부분은 건너뛰면서 화내면서 읽었었고, 마치 스스로가 군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읽었다. 신분상승욕구?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230207


어느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는 진리를 담은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그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 중 하나이다. 고전은 늘 오래된 것이지만, 어느때든 새로이 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논어를 읽고 흥분되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종류는, 소설이든 비문학이든 책을 읽고 뭔가 내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책이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면, 생활에 변화를 주어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다. 흥미위주의 머리를 식힐 책도 즐겁지만, 깨달음을 주는 책은 고통을 보상할 만큼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논어는 책 이름 그대로 '말한 것(論)을 언어(語)로' 담은 책이다. 공자의 말투를 그대로 옮겨서 책에 담아내고자 한 제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주제가 중복되고, 두서없이 흩어져 있는 것은 앞서 말한 목적 때문이라고 한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려고 노력하신 분의 책을 접하게 되어 행운을 잡은 기분이 들었다. '공자님이 살아계실 적에, 이런 말투(?)로 말씀하셨구나!'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논어를 처음 읽을 때는 그 절제된 단어와 문장이 따끔따끔 아팠다. 모두 나를 겨냥해서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묘사한 모든 잘못과 나쁜 점들, 나 역시 함께 가지고 끙끙 앓고 있던 충치같은 부분들이었다… 빼고 싶지만, 빼야 할 것 같지만 어쩐지 안 아프면 잊어버리고 살게 되는… 크게 문제가 되고서야 울며 겨자먹기로 가기 싫은 치과에 가는 기분.

그런 부분들만으로 책의 내용이 꽉꽉 채워져서 심장이 쿵쿵 울렸다. 무서워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근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닌가보다.

그렇지만 막상 위기가 닥치고, 가슴이 내려앉아서 해결책을 찾을 때는 그 어떤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도움이 되었다. 덜레덜레 널부러진 체 마구잡이로 쏟아져나오는 것들을 절제된 언어가 하나하나 모아 담아주는 기분이었다. 위로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차갑게 들리던 말들이,

책을 읽어나가며 결말을 쫒던 나는, 마음으로는 삶의 연속성을 느꼈나보다.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공자님이 방금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 처럼 삶에 대한 회의감과 슬픔이 밀려왔다. 다시 되새길 이야기들은, 책을 펼치면 되지만 살아 숨쉬던 것 같은 첫 만남 같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공자의 대화문을 읽기 전에는 예술이 무가치한 것인가, 유의미한 것인가 고민했었다. 공자는 단 한번도 예술을 무가치한 것이라고 폄하하지 않았다. 그 생각이 생각의 씨앗이 되어 질문을 낳았다. 왜, 예술을 무가치한 것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있었는 가? 그가 생각한 예술이란, 인으로부터 나온 예가 형상화 된 것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인간의 기본 덕목을 완성한 후 예술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가능성을 깨달았다. 나 같이 창의성도, 상상력도 없는 사람에게도, 예술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가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예술의 가능성을 열어 두려고 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예술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맥상통한다. 도를 담은 예술작품은 늘 생명력을 가지고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본디 좋은 글이란, 간결하고 쉽지만 정확하게 그 뜻을 전달할 수 있는 글이라고 했다. 셰익스피어의 글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중 하나도, 그의 희곡이 간결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진짜를 담으면, 때에 따라 같고도 다른 의미를 가진다.

완독한 것은 처음이지만, 두말할 필요없이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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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52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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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디스토피아 소설로 분류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의 반댓말이다.

초반에 전문적인 수학 용어가 나와서 소설이 무척 어렵게 느껴졌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의 묘미중의 하나는 시기적절하게 중의적인 표현을 사용한 점이다. 소설 중간 중간 나오는 중의적인 표현들이 때때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고, 마음을 착잡하게도 만들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표현은 아니지만, 중의적인 표현들이 예술적으로 버무려진 덕에 소설을 읽는 재미가 한층 더해진 감이 있다.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암울하고 어두운 내용도 아니다. 작가는 특별히 희망적인 내용을 싣지도, 절망적인 내용을 싣지도 않았다. 인간의 의지를 비관적으로 판단하지도 않았다. 여러 인물상을 제시하고, 그들이 문제를 판단하여 행동하는 모습을 그렸을 뿐이다. 현실적인 공방들이 오가고, 어떻게 행동할 지 고민하는 모습들이 마치 우리가 실생활에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들과 비슷했다. 비슷했기에 자칫 철학적이고 현학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내용들이 마음에 더 와닿았다.

내가 이렇게 판단할 수 있던건, 사실 현실 속의 인간은 누구나 굴레 안에서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 굴레를 구속과 억압으로 판단했다면, 아마.. 다른 전개로 감상을 써나갔을 것이다.

같은 일도 몇 가지의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건, 삶을 이해하는 깊이를 두텁게 만드는 요인이라 생각한다. 작가가 두명인데다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소설도 나올 수 있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작품을 같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존경스러웠다. 형제라고 해도 각자 의견도 다르고 세분화된 목표도 다를 수 있는데, 어떻게 합의를 이끌어내서 독자가 매끄럽게 읽을 수 있는 소설 한 편을 만들어 냈을까.. 혹, 그 과정에서 일어난 다툼들이 내용을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되어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기에 실감나게 읽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어쩌면 천문학자와 일본문학 전공자라는 전혀 다른 두 분야의 사람이 만났기에, 같은 분야보다는 부딛치는 일이 적었을 지도 모르겠다.

초반 과정이 짜증스럽게 서술되어 있는 부분때문에 책장을 덮은 분이 있다면, 다시 책장을 펼쳐서 끝까지 읽어보시기를 권유하고 싶다. 주인공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바람에 정신없기도 하다. 더운 여름을 더욱 푹푹 찌게 만들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에 함께 매몰될 수도 있지만.. 뱀의 머리에 용의 꼬리라 초반만 읽어서는 상상하기 어렵던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p.s.

깨달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남과 내가 다를 수 있다. 내가 깨달아야 할 것과, 남이 깨달아야 할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깨달음이 다른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이 달라서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한 방향으로 극에 달하고 나면, 모든 것은 통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도, 내가 삶의 길을 걷다 얻은 사소한 깨달음들로 채우고 싶었다. 다만 삶에 채화되지 않았던 새로운 깨달음을 준 까닭에 그것을 내것으로 승화시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식상해지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감상적인 표현들을 자제하고 내용에 관한 사념들만 글에 넣으려고 노력했다. 정제된 표현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지나치게 감동한 나머지 그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 감상문은,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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