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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이건 분명 나 혼자만의 괴로움이 아니다. 유치원에 다닐 때 나는 이 세상이 너무도 고도화된 문명사회라서, 겉보기엔 전쟁도 없고 아주 평화로워서 커서도  평온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토록 생존 그 자체를 위해 허덕여야 하는 세상인 줄 몰랐다. 커가면서 '현실'이라는 것들이 나를 짓눌렀다. 날더러 그것들은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고민하라고 요구했다.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리 없다. 고민보다는 지금 당장 닥친 일부터 해치우는 것. 혹은 부모님 말씀을 듣는 것 그런 수준에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그 이외에 주변에서 종종 조언을 얻기도 했지만, 그것은 조언일 뿐. 부모님 말씀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보장된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 이 소설에, 그런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 나이대는 다르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공감이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평범'한 고민들을 한다. '사랑'을 쫓고, '돈'을 고민하면서 같은 시대를 산다.

이 책은 연작 중편소설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물들도 다르고 이야기도 달랐지만 연관되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결혼상담소에 다니는 나카고메 시즈코는 얼그레이를 좋아하는 이혼여성이다. 결혼생활에 지친 그녀는 재혼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나름의 즐거움을 찾고, 다른 여유를 찾아나간다. 그 과정에서 얼그레이는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이라는 중편에서는 후쿠다라는 동창을 돕는 시게오가 나온다. 시게오와 후쿠다는 '물'을 매개로 우정을 맺는다. 이 중편에서는 '물'이 곧 우정을 상징하는데, 한 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얻는 소설이다.

캠핑카라는 중편에서는 퇴직 이후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토미히로가 주인공이다. 그는 캠핑카를 사서 아내와 함께 여행다니는 것을 꿈꾸지만, 아내가 '자기만의 시간'을 주장하자 잠시 공황상태를 겪는다. 그리고 그것을 '커피'를 끓여마시는 일상을 통해 그려낸다. 그는 잠시 혼란 상태에 있을 때 '커피'를 자연스럽게 끓여먹던 자신을 잃는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할 희망을 얻으면서 '커피'를 다시 끓일 수 있게 된다.

펫로스(pet loss)에서는 보이차가 나온다. 남편이 자주 놀러가는 예전 거래 회사 전무의 아내가 타준 차가 보이차였고, 보이차를 좋아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실망하고 강아지 보비를 통해 그 빈자리를 메우려 하는데, 그때 공원에서 개주인이라는 처지로 공감대를 형성해 만난 요시다씨와 보이차로 서로의 간격을 보여준다. 마지막 즈음에는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가까워지는 계기를 '보이차'로 만드려고 결심한다. 

여행도우미는 트럭운전사인 겐이치가 주인공이다. 그는 해녀인 할머니에게서 햇차를 마시는 지금의 습관을 배운다. 그는 그 시기를 가장 소중하게 추억하지만, 그가 좋아했던 사람에게 그와 관련된 추억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자주 햇차를 마시며 추억을 떠올린다. 그가 변화를 결심한 것도 추억을 상기한 까닭이다. 그래서 그에게 햇차는 그의 삶을 지탱해 온 추억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들은 '마실 것'에 마실 것 이상의 희망을 담아 삶을 버티고, 그 에너지를 독자에게도 전달한 셈이다. 일상에서도 실천해볼 법한 평온을 찾는 해결책인 듯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얼그레이나 보이차나, 햇차, 스파클링 물, 커피 등은 내게는 사치스러운 취미 같기도 해서 실천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저 보온병 하나 딸랑딸랑 들고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혹은 마실 것을 매개로 사람과 만나는 것은 할지도..

 

정말 일상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간다. 현실은 '내 마음대로'흘러가지 않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가자는 듯이 반짝인다.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고, 보장된 것은 없어도, 가치있는 하루를 보내는 데는 현실적인 변화 없이 내면의 안정감만으로도, 가능하다는 듯이, 그것은 사람과의 소통과 사랑,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신뢰'로 가능하다는 듯 이야기가 이어져서 예쁘다.

 

맛있게 잘 읽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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