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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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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한 가지 목표에 ‘순수하게’ 매진했기 때문일까? 그 목표가 옳은 것이든 옳지 않은 것이든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지혜는 편협하고 사상은 단조로웠을지라도 자신이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소중한 지식은 없다고 여기며 행동했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돌진만 했다.

영웅이 되기 위하여 다사다난한 삶을 산 리모노프, 그가 돈키호테라 불리기에 적당하다 생각한 이유는 어찌보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그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그의 일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영웅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고 ‘파시스트’가 되려고 노력하며, ‘전쟁’은 한번쯤 해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든 것들을 일생에 걸쳐 몸으로 실천한 그를 지칭할 수식어로 ‘돈키호테’보다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왜 리모노프를 매력적이라 느꼈을까? 돈키호테야 소설 속에 등장한 인물이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사상을 추구한 것은 아니니 매력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자. 리모노프는 실존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현안문제에 대해 정말 ‘다른’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소설을 읽고 그의 넘치는 에너지를 보고 스타로 추앙하고 좋아할 수는 있어도, 전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내가 이유없이 그의 사상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동의는 커녕 그에게 권력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단순히 그가 영웅이 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매력적이라 느끼는 것은 사실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 같다. 그를 매력적으로 느낀 작가의 의도가 소설 안에 적절하게 배합되어 독자가 리모노프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무언가 더 말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리모노프는 나르시즘적인 사고방식으로 모든 일을 결정할 때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한다. 명석한 두뇌와 훌륭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오직 역사에 남겠다는 일념으로 명예만을 쫓는 사람인데. 이런 설명만으로는 그에게 매력을 느낄 이유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앞서 말했지만 그는 “파시스트“가 되고 싶어했다. 파시스트라니!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의미하는 파시스트는 일당독재체제를 통해 국가를 지배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로서, 그 사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못 내도록 총력을 기울이며, 일반 시민들이 쉽게 발언권을 얻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고위당원들만 혜택을 공유하고, 위에서 고인 물들이 썩어간다 해도 그들끼리의 리그에서만 모든 물자를 독식하는 그런 상태. 그런데 리모노프는 영웅이 되고 싶어하면서 파시스트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영웅은 모든 사람이 추앙하는 인물인데, 사람들이 반대할 만한 사상을 내세우면서 영웅이 될 수 있나?

그런 이유는 러시아 역사를 살피지 않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작가는 그가 파시스트가 되고 싶어한 이유는 그가 어릴 적에 느낀 러시아적인 가치를 복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태어난 시기에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포함된 국가로서, 공산국가였다. 모든 물자는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배포되었다.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한 것처럼 보였다. 


늘 켜져 있는 가스레인지 위의 파란 불꽃이 에두아르드는 눈에 거슬렸다. 불을 끄려는 아들을 어머니는 말렸다. 따뜻하고 방에 항상 누가 함께 있는 것 같아서 든든하다고 했다. <파리에서는 이러면 수천 프랑이 나와요> 하고 그가 한마디 하자, 그녀는 아들의 외국 생활에 대해 들은 몇 안 되는 얘기 중에 이 사소한 내용이 단연코 가장 충격적인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네 말은, 거기는 사람들한테 <돈을 내고> 가스를 쓰게 할 만큼 나라가 짜단 말이냐?⌟305p


옛날에는 사는 게 고생스러웠어도, 구시렁구시렁 불평은 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자긍심을 느꼈다. 가가린스푸트니크 인공위성, 강한 군대, 광활한 제국의 영토가 있다는 사실이, 서양보다 공정한 사회에서 산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글라스노스트> 이후로 고삐가 풀린 표현의 자유 때문에 맞은 편의 사내 같은 소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1917년부터 이 나라를 지배한 자들은 모두 사디스트고 살인자이며 작금의 참패를 불러 온 장본인이라는 사고가 각인되었다고 에두아르드는 판단했다. <사실, 우린 딱 제 3세계 국가, 핵무기를 가진 오트볼타(부르키나파소의 옛 명칭)꼴이오> 하고 사내는 한탄했다. 어디서 한 번 읽은 게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는 상대의 비위를 맞추겠다는 부담감 속에 같은 표현을 되풀이했다. 지난 70년동안 우리가 최고라고 세뇌를 받았지만 우리는 패배자들이었다고. <브쇼 프라이그랄리(폭삭 망했다)>. 70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고 희생한 대가가 이것이라고, 똥통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고. 301p


평등한 가난함(?평등과 가난함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될까 모르겠지만..)과 제국의 자부심을 그리워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공산주의 국가에 향수를 느꼈다. 리모노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의 삶을 살아본 사람이기 때문에 러시아적인 사고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었다. 리모노프는 그런 의미에서 그가 추구하는 바와 러시아적 정서가 일치된, 철저하게 러시아적인 사람이다. 공산국가라는 특수한 환경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일까?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된 것은 러시아도, 남한도 마찬가지이지만, 애초 공산국가였던 적이 없던 남한과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정말 달랐다. 


시장경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상적인 이행과 범죄적 이행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소. 범죄적 이행이냐 내전이냐, 둘 중 하나였으니까. 364p


인생의 한 모퉁이에서 이번엔 또 운명이 예고도 없이 그를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보내 준 것이었다. 전쟁을 하면 삶과 인생에 대해 두 시간이면 배울 것을 평화로울 때는 40년이 걸려야 배운다고 그는 생각했다. 전쟁은 추악하다. 사실이다, 전쟁은 미친 짓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나치게 무기력하고 합리적인, 본능을 억누르는 문명의 삶도 결국 미친 짓이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전쟁이 쾌락 중에서도 최고의 쾌락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는 진실이다. 325p


인생의 한 모퉁이에서 이번엔 또 운명이 예고도 없이 그를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보내 준 것이었다. 전쟁을 하면 삶과 인생에 대해 두 시간이면 배울 것을 평화로울 때는 40년이 걸려야 배운다고 그는 생각했다. 전쟁은 추악하다. 사실이다, 전쟁은 미친 짓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나치게 무기력하고 합리적인, 본능을 억누르는 문명의 삶도 결국 미친 짓이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전쟁이 쵀락 중에서도 최고의 쾌락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는 진실이다. 325p


전쟁의 맛, 진짜 전쟁의 맛은 사람한테는 평화의 맛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에, 평화는 좋고 전쟁은 나쁘다는 고매한 소리로 이 맛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남녀의 존재가 그렇듯 현실에서는 <음양>의 이치처럼 이 둘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326p


작가가 리모노프와 비슷하다고 묘사한 ‘푸틴’은 정권을 잡았다. 리모노프는 ‘파시스트’가 되고자 했으면서도 ‘푸틴’을 ‘파시스트’라며 싫어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이토록 뒤죽박죽이다. 작가 역시도 그걸 염두해두고 리모노프가 오직 영웅이 되기 위해 목숨까지 불사할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는 지도 모른다. 그는 러시아의 혁명을 위해 당을 만들었었고, 60대 후반에(2009년-66세) 푸틴에 반대하여(맞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31조를 상기시키는 <전략 31>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여 활동중이라 한다. 그는 영웅이 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사실 그가 목표로 한 바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리모노프는 그런 그의 인생을 ‘개떡같은 인생이지, 한마디로.’라고 요약했다고 한다. 작가는 그런 그의 이야기를 그렇게 끝내기 아쉬웠다.


에두아르드라는 파시스트한테 한 가지는 인정해 줘야 한다.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소수의 편에 서 있다. 뚱뚱한 사람들보다는 마른 사람들,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 수두룩하게 있는 착한 사람들보다는 당당한 개차반들의 편이다. 갈팡질팡하는 듯 보이는 인생 역정이지만 그는 언제나, 정말로 언제나, 그들의 편에 서는 일관성을 보여주었다. 436p


영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기에 가지는 일관성인지는 잘 모르나, 처음부터 지켜온 이런 일관성은 리모노프를 진짜 영웅처럼 보이게 만든다. 나 역시도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이런 점에 반하기도 했다. 작가는 그 말에 덧붙여서 이런 말들을 곳곳에 적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신성한 단결>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나 스스로는 이유 없는 폭력을 행사할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대가 달랐으면 상황적 여건이나 명분을 내세워 충분히 나치에 협력하거나 스탈린주의나 문화혁명에 가담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내가 사는 세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들, 내 시대, 내 나라, 내 계층의 사람들이 영구불변하고 보편적인 최고의 가치라고 확신 하는 것들 중에서 세월이 지나면 기괴하고 추악할 뿐 아니라 명백히 잘못된 가치로 판명되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나치게 고민하는지도 모르겠다. 리모노프류의 상종 못 할 사람들이 오늘날의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는 기독교 식민주의의 변형(야만인들에게 진실과 아름다움과 행복을 가져다주겠다는 똑같이 좋은 의도, 똑같은 선의, 똑같은 절대적 확신에서 출발하는)이라고 주장할 때, 나는 물론 이런 상대주의적 논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론할 근거도 없다. 331p


세상의 복잡다난함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상반되는 사실을 발견하면 덮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부각시킨다.334-335p


우리의 전반적인 사고체계는 미덕에 의한 등급화, 가령 마하트마 간디는 살인범인 소아 성애자 마크 뒤트루보다 훨씬 고귀한 인간상이라는 판단에 기반하고 있다. 246p


<남과 비교해 스스로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심지어 동등하다고 판단하는 인간조차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지고지상의 지혜이며, 이 생각을 수용하고 소화하고 체화함으로써 이 생각이 단순한 생각에 그치지 않고 여하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시선과 행동을 결정하는 좌표로 작용하게 만들기에 한 평생이라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고 믿는다. 247p


작가의 이런 생각들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리모노프의 삶을 실패자의 인생인 양 끝마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또한 타인의 카르마,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카르마를 판단할 때조차 오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515p” 그래서 작가는 이런 질문을 한다. “이 집에서 늙어 가는 상상을 해보나요, 에두아르드(리모노프)? 투르게네프의 주인공처럼 생을 마감하는?”

그 말에 리모노프는 이렇게 답한다.


사마르칸트나 바르나울 같은 도시들에, 태양이 작열하고 먼지가 자욱한, 느리고 격렬한 도시들에, 그곳, 총안이 뚫린 사원들의 높은 담장 밑 그늘에, 걸인들이 있다. 몇 무더기의 거지들이. 이가 빠지고 상당수는 눈도 없는, 그을린 얼굴의 앙상한 노인들. 이들을 때가 까맣게 묻은 튜닉과 터번을 두르고 앞에 벨벳 조각을 펼쳐 놓고 동전을 던져 주길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막상 던져 줘도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다. 이들이 살아온 삶은 알 길이 없지만, 무연고자 공동묘지가 종착역인 것은 분명하다. 나이도, 혹 있었다손 치더라도 이젠 재산도 없으며, 여태 이름이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모두 다 내려놓은 사람들이다. 넝마를 걸친 걸인들이다. 왕들이다. 519p


이 결말을 읽고 무릎을 쳤다. 암살당하지 못해서 영웅이 되고자 한 꿈이 좌절된 영웅의 이야기가 진짜 영웅의 이야기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넝마를 걸친 걸인이자 왕이라 묘사된 그들은 러시아적으로 ‘낙오자’가 된 리모노프를 묘하게 닮아있다. 

내가 겪은 일도 아닌데 리모노프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했으면 그 열기와 에너지가 활자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 같았다. 리모노프가 욕망에 충실하고서도 인간적인 사람이 되는 길을 착실히 밟아왔다는 점이 정말 사랑스럽다. 그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에 놀라울 뿐이었다. 

책에 나오는 저돌적인 그의 생각과 행동은 오히려 영웅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이라 여겼지만, 책을 읽고 나서 생각컨데 인생이라는 것은 참 신비해서 욕망만을 쫓는 사람에게도 열심히 노력할 경우 평범하고도 영웅적인(?) 깨달음을 주는 건가 싶기도 했다. 러시아 바깥에 살아온 나도 그의 삶이 이해되면서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나와는 전혀 다른 이세계의 사람인데도 나와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점이 닮았다고 생각했냐면, ‘이상’이라 여겨지는 것을 향해 목숨걸고 돌진하는 점이다. 그렇게 돌진하다가 리모노프처럼 노년을 보낸다 해도 아량곳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노력하기를 희망하기에, 그러했다.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허영과 허세는 많아도 겁쟁이라서 리모노프처럼 영웅(?)적으로 살거나 무모하게 전쟁에 나서거나 하기보다 누구도 죽이거나 무시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펜대만 잡고 굴릴 것 같지만. 그랬다. 그렇게 따지면 리모노프보다는 카레르가 추구하는 삶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복잡다난함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상반되는 사실을 발견하면 덮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부각시킨다."라는 의견과 "<남과 비교해 스스로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심지어 동등하다고 판단하는 인간조차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지고지상의 지혜이다"라는 카레르의 의견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여튼 리모노프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소설 리모노프를 읽으면서 자신의 이야기와 리모노프 이야기를 절묘하게 섞어서 도대체 어디까지가 리모노프란 사람의 진실일까 궁금했다. 묘사라기보다는 관찰일기 같은, 논평을 읽는 기분이었다. 리모노프가 가로지르는 러시아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다루었기에, 아무 지식이 없는 내가 읽기에 조금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책이었다. 읽고 나서는 리모노프의 넘치는 에너지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p.s. '리모노프'를 읽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왜 그런 인물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안에 등장했을 지 더 잘 알게 된 기분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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