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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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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를 산다는 것. 시를 쓴다는 것.


충성심은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충성하게 돼 있다면 계략이다

(…)

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네 나라이고

네 집을 짓는 곳이 네 조국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454p ‘난 우’의 시 고국 중 일부


이야기를 하나로 모은 시란 생각이 든다. 이 시는 ‘난 우’가 작품 내에서 중국에게 느끼는 분노를 드러내고,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난 우’는 결국 이민에 성공했다. 나는 이 시가 ‘조국’의 의미를 다시금 정의한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태어난 나라보다, 내가 머물 수 있는 곳, 도움을 받는 곳이 국가이다. 국가는 국민의 공공 안녕을 책임져야 한다. 라는 의미처럼 들린다. 중요한 이야기로 들린다. 그에 의하면 공공 안녕을 책임지지 못하는, 집을 짓지 못하고, 내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곳은 내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이런 소설을 쓴 ‘하 진’이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중국은 예로부터 중화사상이 나라 전체를 지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난 우’는 중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현재성 사이에서 고민한다. 하지만 무엇이 더 옳다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철저히 개인의 선택으로 남긴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이민자로서의 자신과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소설 전체에 ‘난 우’를 제외한 사람들이 쉽게 국수주의, 애국주의에 빠지는데, 그는 그것을 뒤집는 시를 쓴다. 소설에서 묘사된 중국은, ‘난 우’의 아버지에게는 좋은 국가이나, 국수주의, 관료의 부패, 자본주의의 무분별 수용으로 부패해 가고 있는 흔적이 드러나 있다. 

‘난 우’는 살던 땅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새로운 토대에서 그 나라의 방식에 맞추어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돈 앞에서 평등한 미국에 온 그는 돈이 없었다. 몇년간 돈을 벌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아내와 열심히 일한다.  이민자인 ‘난 우’가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 미국에서의 삶과 비교할 수 있도록 설명한 장면이 있다. 스모그때문에 알레르기가 일어난다. 관료에게 뇌물을 바치지 못하면 무엇을 시도할 수 없다. 국가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면 쫓겨나거나 잡혀 들어간다. 이민간 사람들은 중국에 환상을 덧씌웠는데, 중국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민자들을 부러워한다. 어느 곳도 이상적인 공간은 아닌 셈이다. 이상을 쫓지 않고 현실의 삶을 살아야 했다.


책은 이민을 간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여 이민을 가지만 이민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었다. 이상적인 자유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떠나온 곳의 부조리함 보다는 다행히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돈이 최고인 미국 땅에서 부지런히 일하여 돈을 약간 모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자유가 완성된 까닭은 이민을 와서도 아니고, 미국이 중국보다 더 좋은 나라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가 시를 쓰기 때문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개념이 10년 동안이나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러한 꿈이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추구할 수만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에머슨의 “별에 수레를 매라”는 격언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임에 틀림없었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길을 가야 했다. 외로움과 고독을 견뎌야 했다. 성공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고 이민자이면서 남의 나라 알파벳을 배우는 자신의 왜소함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삶을 허비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조롱거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궁극적으로 그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각오를 하고 시를 쓰는 데 전념할 정도로 용감해져야 했다.” 435-436p 

 

시를 쓴다는 것은 그의 존재 이유중 하나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를 쓰려고 하는 ‘난 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난 우’가 시를 쓰지 못할 여러가지 이유가 나오지만, 결국 ‘난 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떤 핑계도 없이 그냥 쓰는 일이었다. 그는 앞으로 걸음을 걷고, 후퇴하고, 다시 앞으로 걷는 것을 매번 시도한다.  ‘난 우’는 단번에 성장하는 걸 꿈꾸는 것도 공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방인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는 토대 자체를 스스로 없애는 사람이다. ‘난 우’의 시는 중국으로부터 이방인이 되고자 노력한다. 상상 안에 있을 때는 유일한 고정된 실체로서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믿지만, 그는 모든 것의 실체를 확인하는 여행을 거치고 비로소 현재를 살게 된다. 지금을 살기 때문에 고정된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부유하는 이방인이 된다. 


“역사가 스스로 해결할거야.”

455p ‘안쓰러움’ 시 일부


그가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안쓰러움' 이라는 시는 그가 자기위안 하는 타인을 보며 쓴 시다. 그는 역사는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한다. 두 다리를 땅에 붙이고 하루하루를 삶을 버텨나가는 것. 흐름을 맹목적으로 쫓지 않고 꿈을 꾸며 산다는 것. 그것이 역사를 만들고, 시는 거기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특별한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그가 삶을 열심히 살았기에 정치적인 인물이 되었다. '난 우'가 살아낸 삶이, 존경스럽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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