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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2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8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평점 :

루슈디는 뉴욕주의 차우타우쿠아 재단이 마련한 강연을 통해 미국이 어떻게 작가들의 피난처가 되었는지 강연을 하던 중 시아파 무슬림의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한쪽 눈의 시력을 읽고 목 부분의 상처로 팔의 신경이 마비되어 한 손의 사용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악마의 시>가 어떤 작품이길래 작가의 목숨까지 노렸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인도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 명문 사립 럭비스쿨에 입학 했지만 인종차별을 겪었고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근대 이후 많은 사회가 유럽의 모더니티를 받아들여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루슈디는 이작품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지브릴은 이블리스_바알세불_샤이탄이 심어놓은 사악한 생각을 억제했습니다. 어쩌면 믿음을 저버렸던 일 때문에 아직도 벌을 받는 중이라서 용서받을 길이 없다고 죄를 씻고 정화되어 본래의 기능을 되찾을 때까지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브릴은 꿈 속에서 대천사 지브릴의 입장에서 많은 환영을 보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묘사도 나옵니다.
자신이 사랑하던 산악인 알리 콘과 동거하다가 환상 속에서 헤매던 그를 살짝 차로 친 영화업계인에 의해 다시 영화계로 돌아오게 된다. 살라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문제의 친구가 소개해준 하숙집에서 있다가 결국은 인간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살라딘은 자신을 지브릴에게 복수하려 들지만, 지브릴은 오히려 자신을 해하려 한 살라딘을 용서해 주고 목숨을 구해 주기까지 하는데 그렇다면 결말은 해피엔딩일까요?
적은 아주 가까이 있다. 적은 자석이고, 소용돌이의 눈이고, 저항할 수 없는 블랙홀의 중심이고, 적의 중력은 사상의 지평선을 만들어내고, 지브릴은 물론이고 빛조차 벗어날 수 없다.---p.262 2권
지브릴은 작품의 초반부터 이슬람교 교인으로서의 신앙심을 잃어버린 인물이기 때문에 지브릴이 꿈 속에서 마훈드는 무력으로 자신의 종교를 타인들에게 관철시키는 비합리적인 인물이자 유일신앙을 깨고 다른 세 여신을 인정하는 등의 모순도 보입니다. 아예사는 이런 마훈드의 마지막 부인으로 소설에서는 한 도시 전체의 사람들을 파국으로 이끄는 악마와도 같이 그려집니다. 작가는 더 깊숙이 들어가 사창가의 열두 창녀가 마훈드의 열두 부인의 이름을 사칭하는 등 마훈드를 조롱했던 시인이 열두 창녀의 남편이 되는 장면 또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대목입니다. 하지만 지브릴의 꿈에 대해 이슬람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민음의 없음, 현실과 꿈, 종교 등에 대한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진 것이 아닌지 여러 논의가 필요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맡겨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악마의 시에 귀기울이는 사람들, 악마의 혀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 결국 모두 악마를 만나게 될 거예요.” ---p.292 2권
이슬람문화를 잘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중시하는 종교로 이슬람교 최고 경전인 코란에는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란 그릇된 것과 분명히 구별되었노라”고 나와 있다고 합니다. 사실 어디까지가 ‘선’이고 ‘악’인지는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하늘에서 퍼덕이며 운이 좋았다 노래를 부르던 지브릴, 운명같이 유일한 생존자였던 그 둘은 그 노래가 천사의 노래였는지 악마의 노래였는지 나중에는 알게 되었을까요? 총 9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현실에서는 사람이 초자연적인 존재로 둔갑하는 초현실적 현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고 꿈과 현실이 겹쳐지게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까닭이라고 합니다. 선과 악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악마의 시>의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