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판)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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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은 제목이 왜 이러지 의야할 때도 있으나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 줄 때가 있습니다. 작품<완장>처럼 사물이 제목인 경우 사물의 쓰임새가 곧 주제를 암시해 주기도 합니다. 완장은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곧 권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소설의 배경은 전라북도의 한 마을 이곡리입니다. 주인공 임종술은 집안의 골칫거리로 나름대로 서울에서 장사도 좀 해 보고 사장님 소리도 들어 보았던 사람으로 시골 촌에서는 일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의 아내는 집을 나간지 오래되었고 딸 정옥은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홀어머니인 운암댁의 걱정이 큽니다.

 

농부로 시작해서 땅투기에 성공해 기업가로 변신한 최사장은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동네 건달 종술에게 맡깁니다. 적은 급료였지만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종술은 관리인으로 취직을 하게 되는데...

 

종술은 왜 완장에 자존심 까지 버리고 맥을 못출까요? 그는 완장에 한이 맺힘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할 때, 그가 두려워했던 사람들은 모두 완장을 차고 있었습니다. 경비나 방법대원들을 보면 꼭 완장을 차고 있었습니다. 훨씬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초등학교 때에도 완장은 그에게 멀고도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종술에게 완장은 곧 권력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 그 서푼어치의 권력을 찬 종술은 낚시질을 하는 도시의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완장의 힘에 빠진 종술은 면소재지가 있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이해의 순간이었다. 애비라는 말의 끝없는 되풀이가 그의 칠칠치 못한 두뇌로부터 감작스레 어리석음을 몰아냄과 동시에 그만큼의 지혜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완장이구나, 완장!” ---P.190

 

하지만 어머니는 오랜만에 직장을 얻은 아들이 기뻤지만 종술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헌병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완장의 위력을 일찍 체험했고 완장에 집착하다 최후를 맞이했었고, 종술의 어머니인 운암댁은 완장에 집착하는 종술을 두고 종술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피는 못 속인다고 독백하고, 종술을 보며 두려워하며 안타까워합니다. 어머니는 완장이야말로 가짜 권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완장을 차고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심부름꾼에 불과했고 언제나 진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완장을 방패삼아 안전하게 숨어 있었습니다.

 

완장 덕에 종술은 어렵지 않게 선생님 소리를 들었고 성깔을 부려 버스도 무료로 탈수있었고 걸음걸이까지 갈지자로 바뀌게 됩니다. 완장의 힘을 과신한 종술은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금지하게 되고, 결국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술은 저수지를 지키는 일에 몰두하다가 저수지 물고기들이 갑자기 연달아 떼죽음을 당하자, 가뭄 해소책으로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과도 부딪히게 됩니다. 하지만 종술이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저주시 감시원이 존재하려면 저수지가 있어야 하는데 날씨가 계속 가물면서 물이 말라가자 최사장은 최후통첩을 날립니다. 저수지에 남은 물을 근처 논밫으로 모두 흘려보내고 저수지 사업을 접기로 합니다. 열세에 몰리자 종술은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는 술집 작부 부월이의 충고를 받아들입니다. 종술이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부월이와 함께 떠난 다음날 소용돌이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에 종술이 두르고 다니던 완장이 떠다닌다. 그 완장을 종술의 어머니인 운암댁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도 알어!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 나 차는 게요!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완장 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 없이 넘들이 흘림 뿌시레기나 주워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P.391

 

 

작건 크건 권력을 쥐면 업무 외적인 부분까지 사용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속물적 근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자리에 오르는 것은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지 자리 자체를 즐기고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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